김문환(54) 전 에티오피아 주재 한국대사가 부하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주영 판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대사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아울러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3년간 아동·청소년기관 취업 제한도 함께 명했다.

김 전 대사는 에티오피아 주재 한국 대사로 근무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직원 1명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고 계약직 여성 2명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외교부는 지난해 10월 범행 사실을 신고 받고 감사에 착수했다. 징계위원회를 거쳐 그를 파면한 뒤 검찰에 고발했다. 다만 유관기관 직원 한 명에 대한 성추행 혐의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범행 경위나 관계 등을 살펴보면 김 전 대사가 별다른 죄의식 없이 비교적 대범하게 성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피해 직원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큰 고통을 받고 있고, 큰 용기를 내서 피해 사실을 진술해야 했다”며 “그럼에도 김 전 대사는 범행을 부인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등 피해 직원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 안희정 사건과 다른 판결… 관건은 피해자 태도?

이날 판결은 최근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판결과 대비된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와 피해자 상하관계가 뚜렷했기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가 적용됐다. 김 전 대사와 안 전 지사 모두는 성관계가 합의 하에 이뤄졌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업무상 지위나 위세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상반된 판결을 내놨다. 김 전 대사의 ‘합의된 성관계’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안 전 지사의 경우엔 정반대의 판단이 나왔다. 안 전 지사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위력이라고 볼 만한 지위와 권세는 있었지만 이를 통해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며 무죄라고 판결했다.

각각의 재판부가 비슷한 사안에 대해 정반대의 판결을 내 놓은 결정적인 요인은 ‘피해자의 태도’다. 안희정 사건 재판부는 성폭행 사건 전과 후 피해자인 김씨가 보인 행동, 그가 보낸 문자 내용 등을 무죄 판단 근거로 들었다. 김씨가 간음 후에도 지인들에게 안 전 지사에 대한 우호적 표현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피해자는 심리적으로 얼어붙는 상황일 정도로 매우 당황해서 바닥을 보며 중얼거리는 식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면서도 “간음 이튿날 러시아에서 피고인(안 전 지사)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하는 식당을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반면 김 전 대사 사건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업무상 관계 외에 친분이 없고, 당일에도 이성적인 호감이 발생했다고 볼 만한 사정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간음 행위 이전 두 차례 신체 접촉이 있을 때 피해자가 소극적인 행동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을 뿐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평소 피고인의 지위와 피해자와의 관계 등에 비춰보면 성추행을 지적하며 단호하게 항의하기 어려웠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수긍이 간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불안과 공포로 얼어붙은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안 전 지사 사건과는 달리 김 전 대사 사건 재판부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합의된 성관계였다”는 김 전 대사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유죄 판단을 내놨다. ‘피해자 다움’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피해 내용’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다움’은 오랫동안 피해 유무를 판단하는 근거가 돼왔다. 예비 법조인인 전국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로 구성된 젠더법학회 연합 역시 이 부분을 지적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범죄의 유력 증거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한다는 명목 하에 피해자의 평소 언행, 지인과 주고 받은 메시지, 사건 발생후 피해자의 대응과 태도, 나이, 학력, 결혼 여부 등 사실상 피해자의 전 인격에 대한 광범위한 ‘품행심판’을 진행하였다”고 비판했다.

서강대학교 총학생회 역시 성명을 통해 “사법부에게 묻는다. 누가 규정한 ‘피해자다움’인가. 사법부는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언급하며 사건 당시와 이후 피해자의 행동이 충분히 ‘피해자답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다움’은 대체 누가 규정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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