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했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 그 시를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됐다.
지난 3년여의 세월을 통해 그 섬을 이어주는 다리가 정(情)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 병원가는길. 963일간의 싸움에서 인영이는 승자가 됐다.

2018년 9월17일부로 인영이의 길고 길었던 항암치료가 종결됐다.
인영이는 마지막으로 전신마취를 하고 가슴에 삽입한 포트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지난주 사전 검사 때는 아빠가 휴가를 냈고, 오늘은 엄마가 동행했다.
오후 2시, 아내가 보낸 사진을 보니 인영이는 두려운 눈빛이었다.
아무리 마지막이어도 혼자 수술실에 들여가는 게 무서웠을 것이다.
인영이가 수술실에 들어간 뒤 아내가 일분이 하루 같다고 울면서 전화했다.

3년 전, 항암치료 시작을 위해 포트를 삽입할 때 인영이는 말 한마디 못하는 애기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든 인영이를 수술실에 들여보낸 뒤 수술 상황판을 뚫어지게 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는 참 막막했고 두려웠다.
보호자 1인만 함께 잘 수 있는 무균병동에 아내와 인영이를 두고 나올 때마다 불 꺼진 병원 기자실에 들어가 혼자 울었다.
이 끝은 언제일까. 과연 우리 가족은 이겨낼 수 있을까.
그때, 내 곁의 정 많은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인영이를 위해 헌혈을 했고, 기도를 했고, 먹을 것을 갖다 줬고, 함께 울어줬다.
의리만큼은 뒤지지 않는 기자 동료들은 3년 동안 인영이 치료비를 보탰다.
힘들라치면 인영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분들이 나타났다.
3년동안의 생명줄이었던 가슴항암관 제거 수술을 받고 깨어난 인영이. 아내는 인영이가 수술실에 들어가 있을때 1분이 1년갔다고 울면서 전화했다.

인영이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바늘에 찔리고, 울고, 토하면서도 웃음을 줬다.
자기 민머리를 만지며 “아이야 머리 없어”라고 씩 웃었고,
장난감 안 사주는 엄마는 빨리 회사가라고 등을 떠밀었고,
힘든 항암치료를 마치고 품에 안겨 나오면서 외려 축 처진 아빠 등을 토닥여줬다.

그렇게 인영이는 963일 동안을 백혈병과 싸웠다.
물론 모든 전투에서 이길 수는 없었다.
항암치료 부작용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토를 했고,
고열과 싸우다 폐렴에 걸려 입원도 했다.
골수‧척수검사의 대바늘에 허리를 잘못 찔려 걷지 못했었고,
물놀이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해 울기도 했다.
하지만 종국에는 이 길고 긴 전쟁에서 이겼다.
인영이는 위대한 승자가 됐고, 오늘은 승전보와 함께 종전을 선언하는 날이다.

퇴근 후 인영이가 좋아하는 티라미슈케익, 도가니탕, 귤을 사러 돌아다녔다.
코스트코에 가서 레고와 콩순이 스티커북도 아내 몰래 질렀다.
그렇게 2시간을 홀로 세종시를 배회하면서 설랬다.
밤 9시, 프리미엄 고속버스 1번 좌석을 차지한 승자가 만면의 웃음을 지으며 내렸다.
긴 싸움에서 승리한 인영이는 기고만장했다.
마취 때문에 하루 종일 굶더니 집에 오자마자 라면을 끓이라 명하고, 식탁에 앉아 당당하게 핸드폰을 했다.
내 곁의 정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3년동안 인영이와 우리 가족을 응원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래도 된다. 앞으로도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아빠랑 꽃길만 걷자 되뇌었다.
2년 전 인영이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처음 맞은 여름휴가를 인영이와 ‘방콕’에서 보냈었다.
바닷가 앞이라 생각하며 회를 사먹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물총 싸움을 하며 워터파크를 상상했다. 인영이만 다 나으면 진짜 방콕에 가겠다는 꿈을 꿨다.
최근 200만원의 해외여행 비용과 가족휴가를 제공하는 편집국장 포상휴가제도의 첫 대상자에 뽑혔다. 다 내가 잘나서(?) 된 줄 알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영이 때문에 받은 상 같다. 어제 11월 방콕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딸 잘 키우면 비행기 탄다는 옛 말 틀리지 않다.
그래, 앞으로는 이렇게 꽃길만 걸으련다.
아픈 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페이스북에 ‘나는 아빠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나 자신과 고마운 분들에게 약속했었다.
인영이가 다 나으면 잔치를 열겠다고.
고마운 분들을 모두 초대해 ‘나는 아빠다’ 책을 선물하며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정말 큰 힘이 됐다고,
한 분 한 분 손을 잡고 고맙다 말하겠다는 희망을 품었었다.
올 가을, 그 희망이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희망을 이룬) 아빠다.(끝)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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