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20일 백두산 장군봉에서 손을 맞잡고 밝게 웃으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박수를 치며 웃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20일 오전 9시33분.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가 천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백두산 장군봉에 나란히 도착했다. 네 사람은 천지가 가장 잘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담소를 나눴다.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 최고지도자와 나란히 백두산에 선 것은 처음이다. 쨍하게 맑은 하늘, 체감 온도는 0도, 찬 공기가 뺨에 와 닿는 9월의 백두산에서 네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네 사람이 1시간30분 동안 어떤 대화를 나누며 보냈는지 평양공동취재단의 스케치를 토대로 그 시간을 재구성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의 대화는 그대로 옮겨 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리설주 여사 등이 20일 백두산 장군봉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오전 9시33분. 문 대통령 내외와 김 위원장 내외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장군봉에 첫발을 디뎠다. 문 대통령은 무릎까지 오는 검정색 코트, 김 여사는 위쪽은 흰색 아래쪽은 검정색으로 그라데이션된 무릎 길이의 코트에 파란색 목도리를 둘렀고, 김 위원장은 발목까지 오는 롱코트, 리 여사는 A라인으로 퍼지는 무릎 길이의 코트 차림이었다.

백두산 장군봉 정상에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북측 주요 인사들이 먼저 도착해 두 정상 내외를 맞았다. 네 사람이 편하게 앉아서 담소를 나눌 수 있게 티테이블과 의자 4개가 마련돼 있었지만 네 사람은 천천히 걸으며 백두산과 천지를 둘러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중국 사람들이 부러워 합니다. 중국 쪽에서는 천지를 못 내려갑니다.

문재인 대통령: 국경이 어딥니까?

김 위원장: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백두산에는 사계절이 다 있습니다.

리설주 여사: 7~8월이 제일 좋습니다. 만병초가 만발합니다.

문 대통령: 그 만병초가 우리집 마당에도 있습니다.

리 여사: 네

김 위원장: 꽃보다는 해돋이가 장관입니다.

천지를 내려다보며 세 사람은 백두산의 사계절, 만병초, 해돋이에 대해 짧게 이야기했다. 새파란 하늘 아래, 그보다 더 짙은 푸른 빛의 호수 천지가 반짝반짝 빛났다. 네 사람의 발걸음은 천지가 더 잘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전날 밤 대동강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과 생중계를 지켜보는 세계인들에게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말한 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백두와 한라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 한라산에도 백록담이 있는데 천지처럼 물이 밑에서 솟지 않고 그냥 내린 비, 이렇게만 돼 있어서 좀 가물 때는 마릅니다.

김 위원장: 천지 수심 깊이가 얼마나 되나?

김 위원장은 옆에 있는 보장성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답은 리 여사에게서 나왔다.

리 여사: 325m입니다.

리 여사는 백두산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 이야기부터 오늘 새로 만든 역사까지. 이번 주제는 ‘전설’이었다.

리 여사: 백두산에는 전설이 많습니다. 용이 살다가 올라갔다는 말도 있고, 하늘의 선녀가, 아흔 아홉 명의 선녀가 물이 너무 맑아서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전설도 있는데, 오늘은 또 두 분께서 오셔서 또 다른 전설이 생겼습니다.

김 위원장: 백두산 천지에 새 역사의 모습을 담가서, 백두산 천지의 물이 마르지 않도록 이 천지 물에 다 담가서 앞으로 북남 간의 새로운 역사를 또 써 나가야겠습니다.

문 대통령: 이번에 제가 오면서 새로운 역사를 좀 썼지요.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도 다 하고.

리 여사: 연설 정말 감동 깊게 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 산에 오른 20일 백두산 장군봉에서 바라본 천지 모습.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 대통령은 “백두산에 오르는 게 꿈”이라는 말을 종종 해왔었다. 백두산에 갈 기회가 있었지만 가지 않았고 오랫동안 아쉬웠었다는 문 대통령은 이날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

문 대통령 내외의 백두산 방문은 예정된 일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방북 전부터 ‘뜻밖의 일정’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내비쳤었다. 김 여사는 백두산에 오르면서 수원지가 제주도인 삼다수를 가져왔다.

문 대통령: 제가 위원장께 지난 4·27 회담 때 말씀드렸는데요. 한창 백두산 붐이 있어서 우리 사람들이 중국 쪽으로 백두산을 많이 갔습니다. 지금도 많이 가고 있지만, 그때 나는 ‘중국으로 가지 않겠다’ ‘반드시 나는 우리 땅으로 해서 오르겠다’ 그렇게 다짐했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금방 올 것 같더니 멀어졌어요. 그래서 ‘영 못 오르나’ 했었는데, 소원이 이뤄졌습니다.

김 위원장: 오늘은 적은 인원이 왔지만 앞으로는 남측 인원들, 해외동포들이 와서 백두산을 봐야지요. 분단 이후에는 남쪽에서는 그저 바라만 보는 ‘그리움의 산’이 됐으니까.

문 대통령: 이제 첫걸음이 시작됐으니 이 걸음이 되풀이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오게 되고, 남쪽 일반 국민들도 백두산으로 관광 올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것으로 믿습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던 두 정상은 ‘천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함께 찍는 이 장면은 꽤나 유쾌하다.

김 위원장: 오늘 천지에 내려가시겠습니까?

문 대통령: 예. (웃음) 천지가 나무라지만 않는다면 손이라도 담가보고 싶습니다.

김 위원장: (웃음) 내려가면 잘 안보여요. 여기가 제일 천지 보기 좋은 곳인데, 다 같이 사진 찍으면 어떻습니까?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두 정상 내외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문 대통령: 여긴 아무래도 위원장과 함께 손을 들어야겠습니다.

즐겁게 웃으며 김 위원장의 손을 잡아 드는 문 대통령과 환하게 웃는 김 위원장을 보면서 공식 수행원, 북측 고위 관계자들, 기자단이 다 같이 박수를 치며 크게 웃었다. 각자의 어깨에 짊어진 짐을 잠시 잊고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짧은 순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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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통일 강국을 일으켜 세울 결심을 표현한 겁니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김 부위원장의 말을 이어 받아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든 건 김 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 대통령님 모시고 온 남측 대표단들도 대통령 모시고 사진 찍으시죠? 제가 찍어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수행원들: 아이고 무슨 말씀을…. (곳곳에서 크게 웃음)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장면들이 생중계될 때마다 소탈한 모습을 보여왔던 김 위원장은 이번엔 ‘찍사’를 자청했다. 2박3일 힘겹게 달려온 남북 정상과 수행원들 모두에게 큰 웃음을 던져줬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양측 수행원들과 번갈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김 여사와 손을 잡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유쾌한 사진 촬영을 마치고 담소가 이어졌고, 이번 주제는 한라산이었다.

백두산에서 천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이번에 서울 답방 오시면 한라산으로 모셔야 되겠습니다. (웃음)

문 대통령: 어제, 오늘 받은 환대를 생각하면, 서울로 오신다면 답해야겠습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한라산 정상에 헬기 패드를 만들겠습니다. 우리 해병대 1개 연대를 시켜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헬기 패드를 만들겠다는 송 장관의 말에 모두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리 여사: 우리나라 옛말에 백두에서 해맞이를 하고, 한라에서 통일을 맞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정숙 여사: 한라산 물 갖고 왔어요. 천지에 가서 반은 붓고, 반은 백두산 물을 담아갈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백두산 천지를 산책하던 중 천지 물을 물병에 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백두산 천지를 산책하던 중 천지 물을 물병에 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 여사는 백두산에 오를 때 삼다수 한 병을 챙겨갔다. 삼다수는 한라산의 현무암질 천연화석층을 통과해 만들어진 화산암반수를 끌어올린 물이라고 한다. 김 여사가 손에 들고 있던 500㎖짜리 삼다수에는 물이 반만 담겨 있었다.

이들은 장군봉 근처 향도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천지로 내려갔다. 문 대통령은 소원대로 천지에 손을 담갔고, 한라산 물이 반쯤 담긴 삼다수병에 천지의 물을 채워넣었다.

이들이 천지에서 돌아온 시간은 오전 11시2분. 1시간30분의 시간 동안 네 사람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고, 유쾌한 농담도 나눴다. 편하게 농담을 하고 나란히 백두산을 거니는 남북 정상의 모습은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영구적인 평화를 예고하는 듯하다. 미래의 평화는 이미 시작됐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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