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을 위한 평화의 기도] 통일에 너나없이 하나되게 하소서


삼위일체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간곡히 기도하옵나이다. 남북 분단을 통일되게 하시며 남남 갈등이 치유되게 하옵소서. 작금의 상황에 가슴이 답답하여 가슴을 치며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습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출발하는 선상에서 국민의 대의민주주의로 세워진 정당이 또다시 갈라졌습니다.

현 정부는 북한의 지도자와 성공적인 정상회담과 북미 간의 중재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만큼이라도 남한에 있는 야당 지도자들과 정책을 공유하는 일에 노력하지 않았고, 북미 간의 중재하는 만큼 야당을 이끌어 들이는 중재에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현 정부는 남남 간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한 채 남북 간 문제를 출발시켰습니다. 반면 현 야당의 지도자들은 남아 있는 지지기반조차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국사에 야당의 힘을 보태는 것에 주저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놓고 이제 한반도의 평화만큼은 초당적 협력을 구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넘겨준 정부를 질책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와 야당 지도자들은 평화통일을 이루는 출발 선상에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못하였기에 대한민국 정치가들은 남북의 화해와 교류를 이루려고 하면 할수록 국민을 더 갈등하게 판을 만들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위정자들의 부족한 모습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쏟아져 나오는 남남갈등의 뉴스들에 저희들의 마음은 혼미해지고, 불안하게 출발한 2018년 9.19 평양합의는 여전히 불안감으로 덮여 있나이다. 북미 간 비핵화 문제도 안갯속에서 아직 걸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눈을 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흐르는(flowing) 서로 내주하시고 서로 교류하시는 하나 된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나이다.

그리고 그 은총이 저희들을 통해서 분단된 남북과 갈등하는 남남 사이에 간극을 메워 조화로운 균형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 은총의 강물이 여야 지도자들에게 흘러가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고쳐 끼울 수 있는 지혜가 되게 하옵소서. 이 은총의 강물 안에서 평양 합의가 선한 도구로 한반도 평화에 사용되게 하옵소서. 이 은총의 강물이 흘러 북미 간의 짚은 안개도 걷히며 정직한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교회의 머리되시는 사랑의 주님, 간곡히 기도하옵나이다. 새로운 통일 환경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적합한 반응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작금 교회에서 남북의 평화통일과 남북의 화해를 이루어 달라는 기도제목마저도 마음 놓고 부르짖을 수 없나이다.

서로 어느 편에 속한 사람인가를 서로 의심하고 있나이다. 주님,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과 아버지가 하나이셨듯이 저희들도 하나가 되게 해 주신 주님의 기도대로 주님을 믿는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교회 안에는 세대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결에 차이가 있습니다. 세대마다 신념과 이념의 차이가 있나이다.

주님, 세대별로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에 현안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주님, 교회 공동체가 나누어지면 질수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통일 환경에 그리스도의 마음에 따라 반응하는 것을 놓치게 될까 두렵습니다.

분단국가를 통일 국가로 선도하는 교회가 되지 못하고 주변화로 고착화되어 주님 영광을 가리게 되지 않을까 심히 두렵습니다. 주님, 저희들의 영혼의 눈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의 믿음을 부활하신 주님께로 이끌어 주옵소서. 그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 안에서 저희들을 하나로 모아 주옵소서.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flowing) 은총의 힘으로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옵소서. 서로 다른 이념과 신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서 새로운 통일 환경에 바르게 반응하고, 민족을 선도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충엽 목사(숭실대 대학원 기독교통일지도자학 주임교수)
통일한국세움재단


▦통일기도문 해설

본 통일기도문은 두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단락은 정치 영역이며 두 번째 단락은 교회 영역이다. 먼저 첫 단락은 최근 2018년 9.19 평양합의문이 발표된 이후 확산된 남남 갈등의 해결과제를 기도문으로 담았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인 성금요일 평화협정은 1998년 체결돼 현재까지 20년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성공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출발에서 협상할 때 남북 분단의 아일랜드 대표들뿐만 아니라 북아일랜드 안에 있는 상대 당파들이 모두 참여했다는 것이다. 사실 독일 통일 사례에서도 우리는 배울 것이 많고 보다 더 많은 것은 북아일랜드 분쟁지역이다.

그 이유는 동서독 통일은 동서독 간 전쟁을 치른 경험도 없고 독일은 식민지 경험도 없는 역사에서 동독 주민들의 투표로 서독 편입을 결정한 통일이었다.

반면 아일랜드는 영국의 고된 식민지 경험도 있었고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면서 남북 아일랜드로 분단됐고 서로 긴 세월 동안 분쟁과 갈등을 하다가 1998년 부활절에 합의로 성금요일협정(Good Friday Agreement)을 체결하고 북아일랜드 평화프로세스가 20년 동안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의 역사적 환경과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있는 환경을 볼 때에 독일의 편입통일보다는 북아일랜드 평화프로세스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북아일랜드 성금요일협정을 들여다볼 때에 평화협정 체결 논의와 체결에서 각 대립 정당들이 모두 참여하는 출발이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현재 2018년 9.19 평양합의문은 그 출발에서 주요 야당 대표들이 빠졌다. 자유민주주의의 대의정치제도를 지닌 대한민국은 국가의 평화통일을 논의하는 것에는 모든 정당 지도자들이 함께 출발하는 것의 중요성을 북아일랜드 성금요일 평화협정을 통해 지혜를 얻을 필요가 있다. 현 정부와 야당 지도자들 간에, 즉 남남 간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남북 간에 합의한 2018년 9.19 평양합의문을 실용성 있게 만들 지혜는 위로부터 필요함을 나타낸다.

본 기도문은 정치인들의 부족함을 성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채우고자 했다.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은 “하나님을 한 실체나 주체로서가 아니라 공동체로 이해한다. 이 공동체는 아버지, 아들, 성령의 교제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는 공동체이다. 그는 한 본질(ousia, substantia)로서의 하나님의 절대적 주체성을 전제하고 삼위의 가능성을 묻는 아타나시우스와 반대로, 카파도키아 교부들처럼 세 위격으로부터 시작하여 통일의 길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하나님에게는 한 행위 주체가 아니라 세 행위 주체(또는 자리, loci)가, 한 인격이 아니라 세 인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삼위일체적 통일성이란 세 위격이 공유하는 동일한 본질 또는 실체로서의 선험적인 존재론적 통일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상호성과 관계성을 통한 통합적인 통일성을 의미한다.”(윤철호, 삼위일체 하나님과 세계,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11, 88-89) 윤철호는 각주 7에서 로마서 8장 32절에서 “자신의 아들을 우리 모두를 위하여”로 아들을 내어주셨음을 언급했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는 “나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었다”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서의 “역동적인 상호성과 관계성을 통한 통일성”이 삼위일체로부터 우리들에게도 흘러오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몰트만의 제자인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그의 책에서 신적 사랑의 본성을 흐름(flowing)이라는 은유를 사용한 루터의 책 그리스도의 자유 The Freedom of Christian을 인용한다. “좋은 것들이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와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이 좋은 것들은 우리에게서 흘러나와,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로 흘러들어간다.”(미로슬라브 볼프, 김순현 역, 베풂과 용서, 복있는 사람, 2014, 74-75) 즉, 삼위일체의 “역동적인 상호성과 관계성을 통한 통일성”이라는 은총이 우리들 안으로 흘러들어 온다.

이 은총의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 같이 하나님의 은총은 은총이 필요한 곳, 은총이 부족한 곳을 향하여 흘러가야 한다. 그래서 조화로운 균형을 맞춘다. 그 은총이 필요한 곳, 부족한 곳이 현 정치권이다. 이 정치권으로 하나님의 은총이 흘러가기를 부르짖는 기도이다.

두 번째 단락이 교회인 것은 이 은총이 흐르는 도관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는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잃어버린 가슴 아픈 경험을 한 세대가 있다. 6.25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공산당의 잔혹함을 경험한 세대가 있다. 전쟁이후에 태어난 베이붐 세대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도 교회 안에 있다.

각 세대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결에 차이가 있다. 각 세대마다 신념과 이념의 차이가 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은총을 흘려보내는 도관인데, 자신의 신념과 이념만을 주장하는 이기심과 나의 주장만이 옳다는 교만이 도관을 막히게 하여 도관의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은총을 교회에 부어주고 싶어도 하시지 못하는 것을 교회가 자초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형상이 드러날 때에는 교회는 민족을 선도할 기회를 놓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주변화로 고착하게 될 것이 심히 두렵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이기심과 교만은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제거하실 수 있다. 그것은 각 성도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볼프는 그의 책 배제와 포용 책에서 다음의 원리를 제시한다. 성서적으로는 창세기4장 1-16절에 서로 형제지간인 가인이 아벨을 죽이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이었을까. 가인이 자신의 이념의 신념화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가늠자에 맞추어 가인의 정체성을 재조정했다면 가능하였을 것이다.

즉, 가인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못한 원인을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기준선에 맞추도록 본인의 생각과 방식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벨을 제거하는 것으로 대체했고 본인은 이념과 가치관을 고수했다. 이것은 인류역사에서 가족공동체를 파괴하는 첫 살인이 되었다. 이것의 해결책은 신약성경에서 요한 사도가 가인같이 하지 말고 기준선을 예수 그리스도께 맞추라고 증언한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1서3:12-16) 즉, 우리의 생각과 판단의 기준선을 예수 그리스도로 대체하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타자(other)를 포용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making space)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자기 자신을 기부(self-giving)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기준선으로 취하는 것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서로의 이념이 다를 때에 하나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될 수 있는 출발이다. 은총의 흐름이 막힌 이기심과 교만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제거된다. 그 도관이 열릴 때에 하나님의 은총이 교회를 하나 되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흘러가게 된다.

본 통일기도문은 분단국가에서 평화통일을 이루는 주축 중에 두 영역인 정치권이나 교회 영역이 먼저 평화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남북통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로부터 출발한 기도문이다. 본 기도문은 정치권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과거의 부족함을 고칠 수 있는 지혜의 영으로, 교회에는 구성원들의 이념과 신념 보다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기도문이다.

하충엽 목사(숭실대 대학원 기독교통일지도자학 주임교수)
통일한국세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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