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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시중은행 23곳이 펀드 상품에 포함된 채권의 부도 위험이 있는 것을 알고도 투자자에게 펀드 판매를 계속해 결국 200억원이 넘는 고객 돈을 날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펀드 투자자들에게 ‘저금리 시대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채권펀드’라고 홍보하며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에 따르면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지난 5월 8일 중국국제에너지화공그룹(CERCG)이 보증한 해외사모사채 금정제십이차 자산담보기업어음(ABCP) 채권 1645억5000만원을 인수해 국내에서 발행했다. 이 채권은 나이스신용평가 등으로부터 안정적 등급인 A2(sf)로 평가받았고, 전문투자자(채권 딜러)를 통해 현대차투자증권·BNK투자증권·KB증권·유안타증권 등 증권사와 KTB·골든브릿지 등 자산운용사, 부산은행·하나은행 등 은행 신탁에 판매됐다. 자산운용사들은 이 채권이 포함된 펀드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문제는 ABCP 채권 발행 사흘 만에 시작됐다. ABCP의 보증기관인 CERCG는 5월 11일 기존 발행한 역외자회사 채권 3억5000만 달러(약 3950억원)의 만기 상환에 실패했다. 이로써 ABCP의 교차부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런 소식은 외신과 신용평가사 등을 통해 국내에도 전달됐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5월 17일자 기사에서 “CERCG가 보증한 3억5000만 달러 규모의 달러화 채권이 만기일인 11일까지 원금 지급이 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튿날 나이스신용평가사도 ‘CERCG 원금 지급보증 의무 지연에 대한 신용평가 견해’ 보고서를 작성해 각 증권사에 전달했다. 채권시장에서 ABCP 거래 역시 중단됐다.

하지만 증권사 등은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고 ABCP가 포함된 KTB전단채펀드와 골든브릿지스마트단기채증권투자신탁1호, 골든브릿지으뜸단기증권투자신탁1호 펀드 상품을 계속 판매했다. 결국 5월 28일 CERCG는 2주간의 지급유예기간에도 역외자회사 채권에 대한 자금 조달에 실패해 교차부도가 확정됐고, ABCP도 부도 처리되면서 ABCP가 포함된 펀드도 투자금 260억원의 80%를 손실 처리했다. 안전한 펀드라고 홍보해 놓고 고객 돈 208억원을 날린 셈이다.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만 4433명에 이른다. 증권사 등은 국내에 교차부도 위험이 본격 전달된 5월 18일 이후부터 교차부도가 발생한 같은 달 28일까지 이 펀드를 계속 팔았다.

지 의원은 4일 “채권의 부도 위험을 뻔히 알고도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은행·자산운용사 모두 사실상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친 것”이라며 “금융감독원은 즉각 해당 기관들에 대한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여야는 최근 이 사건과 관련해 오는 12일 금감원에 대한 정무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권희백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김영대 나이스신용평가 대표, 김태우 KTB자산운용 대표를 채택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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