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57)씨의 남편은 지난해 1월 사망했다. 그는 한 주에 70시간 넘게 일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난 날에도 회사에서 일을 하다 쓰러졌다. 김씨는 5일 “진작 일 좀 덜 했으면, 아휴… 지금 내 옆에 있을 텐데”라고 말했다. 시행 100일을 앞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회한이었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주52시간 근무제가 8일로 시행 100일이 됐다.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의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지난 2월 말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52시간으로 제한됐다.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에 시달린 데 따른 조치였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4시간이다. 37개 가입국 중 멕시코(2257시간)와 코스타리카(2179시간)에 이어 세 번째다. OECD 평균(1759시간)보다 265시간, 최하위인 독일(1356)시간보다 668시간 더 일했다.

과로사·과로자살 유족은 과로사회의 또 다른 피해자였다. 과도한 근로를 방지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었다면 가족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도 그랬다.

김씨의 남편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주말인 토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일요일 낮에 퇴근할 때도 잦았다고 했다. “얼굴이 해골처럼 변해 퇴근했다”고 김씨는 말했다. 남편은 해골 같은 얼굴을 하고서도 “오늘 기계를 고쳐야 내일 일하지”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런 남편이 안쓰럽고 답답해 “당신이 호구”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했다.

김씨는 “관리직이던 남편은 부하직원들이 산재를 당하면 앞장서서 도와줬다. 남편이 사망했을 때도 당연히 회사에서 알아서 처리해줄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는 정보도 제대로 주지 않고, 유품을 찾으러 가도 접근을 막았다. 김씨는 “‘남편이 죽었는데 누굴 위해 산재를 받으려고 하느냐’는 비아냥도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지금도 약을 먹어야만 잠을 잘 때가 있다고 했다.


김씨는 ‘주52시간 근무가 경제를 악화시킨다’는 비판에 대해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월급이 줄어서 어려움을 겪는 것보다 가장이 죽고 가정파탄이 일어나서 생기는 고통이 더 크지 않겠나”라면서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부분은 다른 방법으로 보완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형부를 잃은 배모(31)씨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배씨의 형부 이모씨는 주 64~68시간 일했다. 업무 목표 스트레스, 과다 업무의 정신적 부담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씨는 “제도가 훨씬 더 일찍 정착됐다면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덜 했을 텐데 당연히 아쉽다”며 “한국사회는 자살률도 높고 근무시간도 OECD국가 최상위권인데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게 좀 아쉽다”고 말했다.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도 “사실 주52시간으로 부르는 것도 조심스럽다.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인데 연장근로를 통째로 모든 산업에 열어주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최대 68시간까지 열어주던 것을 이제 52시간으로 줄인 것인데, 이를 철회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이 지난 9월 서울 동작구의 한 사무실에서 노무법인 원 김우탁 노무사의 ‘주52시간과 산업재해’ 강의를 듣고 있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제공

물론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박모(52)씨는 “지금은 큰 회사들만 주52시간이 적용되는데 남편은 영세한 업체에서 일했기 때문에 제도가 있었어도 계속 일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남편을 과로사로 잃었고, 올해 5월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박씨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알겠는데 사각지대에도 빨리 정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배씨도 “저만 해도 실제 근로시간은 더 많지만 주52시간에 맞춰 전산에 올릴지 매번 고민한다”며 “이런 제도가 마련돼서 한편으로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지키는 곳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고 정착도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정착을 위해 정부와 기업 등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기대온 탓에 주52시간 근무가 확대되면 일시적인 혼란이 있을 수 있다. 기업들에서 노동 강도를 심하게 올리거나 실제 근로시간을 속이는 꼼수도 쓸 수 있다”면서도 “사회적으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함께 부담을 짊어지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에 자문을 담당하는 노무법인 원 김우탁 노무사는 “과거 주6일 근로를 주5일로 바꿀 때도 굉장히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나름 잘 정착됐다”며 “기존에 익숙한 것 때문에 저항은 언제든 있고 순차적으로 법이 적용되고 문화가 바뀌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정 산업이나 노동자들에게는 업무적·경제적으로 실제 부담이 생길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국가에서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보완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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