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는 부실했고, 처벌은 미비했다. 수술 등 병원 안에서 이뤄지는 의료행위는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수술실 커튼 뒤 가려졌던 추악한 민낯은 단란했던 가정을 하루 아침에 박살내고 나서야 드러났다. 수십 년 동안 굳게 잠겨 있던 수술실 문틈을 비집고 나온 의료계 불법 관행인 ‘영업사원 대리수술’이 실체를 드러냈다.

◇ “간단한 수술이야 걱정마”… 하지만 아빠는 세상을 떠났다

올해 5월 부산 영도구 한 정형외과에서 “간단한 수술 받고 오겠다”며 제 발로 씩씩하게 병원으로 걸어들어간 40대 건강한 가장(家長) 강씨가 수술 후 돌연 사망했다. 잦은 어깨 통증으로 지역에서는 꽤나 유명하던 의사에게 수술을 받기로 했지만,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 한 채 뇌사선고를 받고 투병 끝에 숨진 것이다.


강씨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였다. 전신마취를 하는 수술이긴 했으나, 1시간도 안걸리는 간단한 수술이었기 때문이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검찰은 병원 CCTV와 내시경 카메라에 저장된 영상을 확보했다. 영상을 살펴보던 검찰은 수상한 남성을 목격했다. 정장을 차려 입은 남성이 수술이 시작되고 9분 경과 후 수술실로 들어선 뒤 10여 분간 수술실에 머무르다가 나간 것이다.

병원 직원들은 그를 마취전문의라고 했지만 그 날 수술실에 들어온 건 의사가 아니었다. 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의료기기 영업사원이었다. 병원 측은 뒤늦게야 대리수술을 시인했다. 면허도 없는 일반인이 통제구역인 수술실에 들어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수술을 대리로 했다는 것이다.


◇ 의료기기 영업사원 “하루에 세 번, 의사 대신 수술한다”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는 6일 수술실의 민낯을 파헤쳤다. 강씨 사망 사건 이후 전·현직 영업사원들은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의료계 관계자들 역시 그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퍼져 있던 무자격자 의료행위가 수면으로 드러난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에 응한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은 “(대리수술은) 이쪽 업계에서 공공연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 제보자는 “하루에 세 건 정도 (의사 대신) 수술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도하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놨다. 할 줄 아는 수술이 많아질수록 받는 돈 역시 많아진다고 했다. 이들은 “유튜브 등 인터넷에 올라온 수술 영상을 보며 연습한다”고 밝혔다. 한 간호사는 “의사는 수술실에서 환자에게 말을 걸어 안심시키고 실제 수술은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집도한다”고 말했다.

취재 도중 뜻밖의 자백(?)도 이어졌다. 취재진이 병원관계자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자 그는 병원 홍보팀에 문의를 해야 한다며 시간을 벌었다. 이후 이들 대화가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병원관계자가 “영업사원 대리수술 관련해서 방송국에서 취재요청이 들어왔다”고 말하자 홍보관계자는 “솔직히 우리 병원에서 대리수술하는 것 맞지 않느냐. A교수도 그렇고 B교수도 마찬가지다”라고 답했다. 이어 “당연히 방송에 나가면 안 된다”고 인터뷰 거절의 뜻을 전했다. 녹화 중인지 몰랐던 홍보관계자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상황은 척추관절전문 병원과 대학병원도 마찬가지였다. 한 대학병원의 경우 영업사원이 따로 다닐 수 있는 통로도 구비해놨다고 했다.

목적은 돈이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장비 사용법에 대해서 (영업사원이) 의사에게 설명할 수는 있으나 수술실에서 할 필요는 없다”며 “대리수술의 이점은 오직 금전적인 이득이다”라고 지적했다. 장비 사용법이 서툴다면 자신보다 더 전문적인 의사를 고용해야 하지만,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영업사원에게 대리수술을 맡긴다는 것이다.

또, 영업사원이 집도하는 시간에 자신은 다른 환자를 보면서 수술 횟수를 늘리는 행태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 면허 정지·취소되더라도 복직 어렵지 않아

처벌은 미비하다. 대리수술로 고발이 된다 해도 집행유예나 벌금형 수준에 그친다. 의사 면허가 정지된다고 해도 그 기간이 매우 짧아 얼마 후 병원에 다시 복직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전 같은 혐의로 면허가 정지됐던 의사들은 현재 병원을 확장해 진료를 정상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면허가 ‘취소’된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주요 요건은 매우 까다롭다. ▲정신질환자·마약중독자·금치산자 ▲자격 정지 처분 기간 중 의료행위를 하거나, 3회 이상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경우 ▲의사 면허증을 빌려준 경우 ▲일회용 주사 의료용품을 재사용해 사람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케 한 경우 등이다. 형법 위반에 따라 의사 면허취소가 가능한 경우는 ‘허위진단서 작성, 위조사문서행사, 낙태, 허위진료비청구 사기 등 의료 관련 법률 위반으로 금고형 이상을 선고 받았을 때’로 매우 제한적이다. 변호사 등 같은 다른 전문직군이 횡령·업무상과실치사상 등 일반 형사범죄로 금고형 이상을 선고 받으면 관련 자격이 취소되는 것과는 다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설령 면허가 취소됐다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재발부 받을 수 있다. 의료법에 따르면 복지부 장관은 면허 취소의 원인이 된 사유가 없어졌거나 잘못을 뉘우쳐 개선여지가 있을 때에는 면허를 재교부할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부터 현재까지 접수된 재교부 신청은 총 41건이다. 이들 중 40명이 면허를 재발부 받았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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