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EDG 정글러 ‘클리어러브’ 밍 카이.

위기다. 한국에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가 태동한 이래 지금처럼 불안했던 시기가 있었을까. 없었다. 한국 대표로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 참전한 아프리카 프릭스와 젠지 e스포츠가 대회 이틀 차에도 첫 승을 신고하지 못했다.

11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치러진 2018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 2일 차 일정. 아프리카는 플래시 울브즈(대만·홍콩·마카오)에게 무릎을 꿇었다. 젠지는 로열 네버 기브업(RNG, 중국)에게 패했다. 두 팀은 10일에도 각각 G2 e스포츠와 팀 바이탈리티(이상 유럽) 상대로 승점을 챙기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세간의 말처럼 LCK의 안전제일 운영 방식이 원인일까. 또는 정글러 기근 현상으로 인한 특정 포지션 경쟁력 약화 때문일까. 정말로 추격자의 나이프(녹색 강타) 아이템 삭제가 LCK식 운영의 맥을 막은 걸까. 수년간 국제무대에서 한국 팀과 칼끝을 맞댄 탓에 이제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해외 베테랑 플레이어들에게 직접 물었다.

에드워드 게이밍(EDG, 중국) 정글러 ‘클리어러브’는 “플레이 스타일의 차이”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지난 2일 서울 청진동 LCK 아레나에서 롤드컵 플레이-인 스테이지 경기 후 그를 만났다. 2012년 데뷔한 ‘클리어러브’는 롤드컵 무대만 6번 밟은 베테랑 중 베테랑. SK텔레콤 T1, 삼성 갤럭시(現 젠지) 등 여러 한국 팀과 대결해본 경험이 있다.

‘클리어러브’는 현재 메타가 한국보다 중국에 유리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LCK는 운영에 중점을 두고, 성공률이 높은 쪽을 선택한다. 반면 중국은 싸움을 좋아해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교전 유도 능력이 필요한 챔피언들이 많이 나오는 메타다. 공격적인 챔피언을 잘하는 쪽이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만 플래시 울브즈 미드라이너 ‘메이플’ 황 이탕.

‘한국 킬러’로 잘 알려진 플래시 울브즈의 미드라이너 ‘메이플’ 황 이탕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는 오랫동안 좋은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물었을 때 “대만은 한국 솔로 랭크를 플레이해도 지연 현상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할 정도로 공식·비공식 경기를 가리지 않고 LCK 선수들과 부대껴왔다.

11일 아프리카전 이후 인터뷰실에서 만난 ‘메이플’은 운영을 중시하는 LCK 팀들의 성향이 롤드컵 패치 버전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버전에서는 물론 운영도 중요하지만 초반 싸움이 더 중요하다”면서 “지금 버전에선 경기 초반에 계속 싸움을 붙어야 한다. 예전의 운영으로는 초반에 이득을 보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오는 20일 롤드컵 8강전부터 분석 데스크를 담당하는 ‘빛돌’ 하광석 해설위원은 메타 차이가 아닌 “한국이 차별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에 중점을 뒀다. 하 해설은 “한국이 갖고 있었던 운영상 강점, 밴픽 능력, 교전을 여는 능력 등을 외국이 선도하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하 해설은 “단순히 한국이 보수적이고, 수비적이고, 하던 대로만 해서 그런 게 아니다. 한국의 기존 장점을 외국 팀들이 다 따라잡았다. 오히려 한국을 뛰어넘는 플레이들이 많다. 한국만의 특별한 강점이 없는 게 제일 문제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 해설은 한국 팀이 풍부한 경험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 그룹 스테이지고 풀 리그다. 두 경기를 패배했지만 아직 네 경기씩 남아있다”며 “부진을 극복하는 노하우도 한국의 강점이다. 다전제로 넘어가거나, 다전제로 가기까지의 과정에서 빠르게 문제를 진단한다면 반등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하 해설은 자국 팬들의 신뢰와 응원을 부탁했다. 그는 “위기는 맞다. 그러나 ‘망했다’든지 이런 말을 할 단계는 아직 아니다. 한국 개최로 유리한 건 팬들의 많은 응원”이라며 “정말 실망스럽고, 화를 내시는 건 공감 가지만 대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열심히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선수들도 힘을 내서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부산=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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