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신(73) “어우, 장수(영정)사진이요? 어우, 그냥 밝게 웃고 행복해하는 그런 사진이었으면 좋겠어요.”

김해연(72) “그냥 ‘부지런하게 감사하면서 살았다’라고 기억하면. 우리 애들도 그렇게 기억을 할 거예요.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알뜰하고 그렇게 살았다라고 이야기할 거예요.”


지요신(73) “20대 그때 처음 주민등록증 만들 때였고 저는 굉장히 외향적이고 활달해가지고요. 얼마나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지 남해, 동해, 서해로 해서 16일간씩 돌아다니고…. 애들 막 선동해서 공부하기 싫으면 악기실에 들어가서 콘트라베이스 큰 데 있잖아요. 거기 들어가서 애들보고 닫으라고 그러고 그 안에서 (웃음)”

김해연(72) “옛날에 신애보육원에서 보모로 있을 때. 그럼 스물다섯. 스물다섯 11월에 결혼해서 스물여섯 살 10월에 낳았으니까 큰 애가 지금…. 나이도 모르겠네. (아버지가) 한 일곱 살 때였나 그때 돌아가셨는데 얼굴이 기억이 잘 안 나요. 우리 제일 맏오빠와 둘째 오빠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돌아가시고. 그래서 엄마가 시신 찾으러 간다고 막 헤매고 다니고 그랬었다고 그래요.”


지요신(73) “남편이 부도나서 쫓겨 다니고 그래서 우리 애들이 한창 사춘기 그렇게 할 새도 없이 그냥 워낙 막 휘몰아치고 그러니까. 그래서 지금도 애들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속상해요. 그래서 저는 좋은 엄마가 아니에요.”

김해연(72) “몇 년 있다가 우리 둘째 딸이 네 살 먹었을 때 갑자기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어요. (힘든 시절에) 애들이 말썽 안 부리고 잘 자라줬어요. 지나고 나서는 아르바이트 하느라고 힘들었다고 이야기는 하면서도 그때는 우리 마음 아플까봐 말은 안 했대요.”


지요신(73) “삶은... ‘축제’라 그래야 되나 ‘환희’라 그래야 되나 괴로운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 우리 엄마죠. 뭐. 엄마를 그렇게 많이 아프게 하고 그런 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또, 팔남매 중에서 유난히 저를 아꼈어요. 엄마가. 엄마한테 미안해서 어떡하나. 가끔 가다가도 엄마 만나면 어떻게 해야 되나. 미안해서요.”

김해연(72) “감사죠. 어려웠든지 쉬웠든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불평 없이 살아오고 감사하고 살아왔으니까. 제일 보고 싶은 건 (먼저 간) 딸이 보고 싶겠죠. 늘 제 생각에 이 땅에서 내가 진실 되게 잘 살아서 딸 앞에 섰을 때 딸은 지금도 내 모습 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딸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지. 그 마음뿐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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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제작 김평강, 강예은 pe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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