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에게 지하철 ‘여성전용칸’은 당연했다. 오래 유지해 온 제도라 익숙해진 측면도 있지만 ‘지하철 내 치한을 뿌리뽑자’는 취지에 남녀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었다.

지난 24일 일본 오사카 난바역에서 미도수지선을 타고 목적지로 향하면서 지하철 8량 중 가장 끝에 배치된 여성전용칸을 이용했다. 일본어 사이에 ‘Women Only(여성만 타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분홍색 안내판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열차를 대기하는 장소 바닥과 기둥, 심지어 열차 바깥문과 내부 창문, 의자와 손잡이에도 이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다. “몰라서 탔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도록 최대한 빽빽하게 적어놓은 듯 보였다.


남성들은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중요 시간대에도 여성전용칸 쪽으로 오지 않았다. 여성전용칸 쪽 출입구를 통해 역으로 들어선 남성들도 다른 쪽으로 가서 줄을 섰다. 지하철에 오르니 남성 한 명이 있긴 했지만 큰 여행가방을 끌고 있는 외국인이었다. 하지만 그를 쳐다본다거나 주의를 주지는 않았다. 근처에 가지 않는다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지도를 펼치며 한 여성에게 길을 묻자 친절하게 안내했다.

일본 여성들은 여성전용칸 안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 듯 보였다. 한 일본 여성은 “여성전용칸은 다른 칸에 비해 사람이 많지 않아 안심이 된다”며 “상대적으로 여자가 많기 때문에 남자가 한 두 명 있어도 괜찮다”고 전했다. 실제로 여성전용칸은 다른 칸에 비해 한산했다. 내부에 빈자리도 꽤 많았다. 하지만 원래 한산한 시간대는 아닌 듯 했다. 바로 옆 칸 좌석은 꽉 차 있었고 서서 이동하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또 다른 일본 여성은 “여성전용칸으로 지정된 곳이라 (남성에게 당하는 성 관련)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자체로도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고도 했다.


◇ 일본은 왜 ‘여성전용칸’을 도입했을까

사사키 쿠미는 12살 때부터 18살 때까지 끔찍한 시간을 겪었다. 등·하교를 위해 이용했던 지하철에서 매일 성추행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30대 중반이 돼서야 그동안의 아픔을 세상에 공개했다. 지난해 집필한 ‘치한’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그는 일상적으로 반복된 성추행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후 일본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했지만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열차에 타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쿠미는 “치한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쿠미의 이야기는 일본 여성 모두의 이야기다. ‘성진국’이라는 불명예 수식어가 따라 붙을 정도로 성범죄가 만연했던 일본에서 여성전용칸에 대한 수요는 이전부터 있어왔다. 여성들의 강력한 요구로 여성전용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12년이다. 원래는 여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된 칸이었다. 당시 도쿄와 신주쿠 쪽을 지나던 주오센의 급행열차에서 여학생을 대상으로한 성추행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관계자들은 ‘하나덴샤(꽃전차)’라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이후 여성들은 “여성전용칸을 늘려달라”는 취지의 시위를 지속했다. 마침내 2000년부터 여성만 탈 수 있는 공간이 대대적으로 생겨났다.


일본 경시청은 ‘전철 치한 퇴치를 위한 보고서’를 근거로 해당 제도를 도입·유지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범죄 가해자 절반 이상(50.7%)이 “왜 해당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나”라는 질문에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실제로 성범죄 대다수는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 여성전용칸은 사실상 ‘약자를 위한 공간’

여성전용칸은 사실상 여성과 약자를 위한 공간이다. 여기서 약자란 환자와 아이를 뜻한다. 여성전용칸을 운영하는 철도 대부분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들의 탑승을 허용하고 있다.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일본 전국 철도 32개 중 30개에는 남성 장애인이 혼자 여성전용칸에 탑승할 수 있도록 했다. 나머지 2곳은 여성 동반자가 있다면 탈 수 있다. 이들은 “겉으로는 장애가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남자가 탈 수 있는 조건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환자를 간호하는 남성도 탑승이 가능하다. 초등학생 이하의 남아 역시 여성 어른과 함께라면 이용할 수 있다.

◇ 일본인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


약 20년 동안 제도가 유지돼 온 만큼 일본인들은 여성전용칸에 익숙한 듯 보였다.

한 일본 여성은 “일부 열차는 출·퇴근 시간에만 여성전용칸을 운영한다. 시간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그냥 마음이 놓인다”며 “누군가와 몸이 닿아도 불쾌하지 않다”고 전했다.

한 일본 남성은 “출·퇴근 시간처럼 혼잡할 때는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쪽(여성전용칸)에서 열차를 탈 수 없다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다른 걸 타면 되니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여성을 치한으로부터 보호해야한다는 취지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도 열차에서 몸을 스치기만 해도 남성을 치한으로 모는 경우가 많아 긴장될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일본 교통국 2015년 자료에 따르면 일본인 대다수는 여성전용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남성 30%가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50% 이상은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여성의 경우 50%가 적극 찬성했고 30%이상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같은 해 크리에이티브 재팬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여성 45.5%는 “여성전용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지하철 내에서 성범죄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는 의견을 낸 43%는 “여성전용칸을 골라 탈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필요없다’는 의견은 11.5%에 그쳤다.

오사카(일본)=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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