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 690개가 모여 가정폭력이 계속 발생하는 데에는 국가의 책임이 크다고 규탄했다. 이 자리에 강서구 주차장에서 전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여성의 지인이 참석해 “가해자가 세상의 빛을 더는 볼 수 없게 사형이 선고되기를 바란다”며 “(가해자가) 법의 무서움을 알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을 언급하며 국가의 강력한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25년간 가해자가 폭력을 자행하는 동안 여러 차례 경찰 신고가 있었고 국가는 분명 폭력을 중단시킬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잘 해결했다’는 가해자 말만 믿고 구조요청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라”고 소리쳤다.

앞서 22일 강서구 등촌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김모(48)씨가 전 부인 이모(47)씨를 흉기로 살해했다. 이들의 딸은 엄마가 아빠에게 심각한 가정폭력을 당했고, 이혼한 뒤에도 살해 협박을 계속 받아왔다고 폭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그동안의 고통을 호소하며 “아빠를 사형시켜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피해자 친구가 참석해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자신을 고인의 절친한 친구라고 소개한 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탄원서를 넣을 걸 그랬다. 후회된다”고 울먹였다.

그는 “결혼 당시에는 가정폭력, 이혼 후에는 살해 협박을 당하며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왔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며 “난 그저 숨어다니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가해자 악마가 세상의 빛을 더는 볼 수 없게 사법부의 사형이 선고되기를 시민 여러분이 도와달라”며 “사람을 죽이고 쉽게 나올 수 있다고 믿는 가해자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고인의 가족들은 죽기 전날에도 (피해자에게) ‘조심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큰 선물을 하겠다더니 (친구를) 무참히 살해했다”고 분노했다.

가해자 출소 이후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는 “가해자가 출소하면 고인의 가족들은 지난 4년간 겪어온 무서운 공포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며 “(그렇게 되면) 매일 조심하라고 말하는 생활이 계속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죽은 친구는 늘 가족들에게 ‘나 때문에 이렇게 살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친구가 또다시 미안해하지 않도록 친구가 한을 풀 수 있도록 도와달라. (가해자가) 법의 무서움을 알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모인 여성단체들은 가정폭력에 대한 형사처벌이 미흡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여성가족부가 2016년 발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범죄에 대한 경찰 검거율은 14%가 채 안 된다. 2017년 기준 검찰 기소율은 9.6%, 구속률은 0.8%다.

이들은 “2009~2017년 동안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여성 824명이 살해됐고 최소 602명이 살해될 위험에 처했다”며 “응급조치와 (긴급)임시조치 등 경찰이 피해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가 있지만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 역시 사건의 본질을 알리려는 유족의 노력이 없었다면 ‘부부싸움’ 정도로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철저한 수사와 가해자 엄중 처벌, 가정폭력 대응시스템의 전면적 쇄신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순임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상임대표는 “쉼터에서 보호 중인 피해자나 노출방지 안전장치를 철저히 지킨 피해자나 살아남은 피해자 자녀나 모두 안전하지 않다.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을 통해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보호를 최우선 목적으로 하는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선해주길 바랐다. 또 피해자 보호 및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꼬집었다.

김명진 여성인권 실현을 위한 전국가정폭력상담소연대 준비위원회 위원은 “가족을 유지하는 데 제정 목적을 둔 가정폭력처벌법의 허점으로 가해자가 재생산된다.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해당 법을 개정하고, 가해자가 상담이나 교육을 받는 것을 조건부로 한 기소유예를 폐지하라고 권고했다”고 전했다.

원민경 변호사도 “법원행정처는 협의이혼인 경우에는 이혼 과정에서 의무면담제도를 운영하고, 혼인을 회복하기 위한 부부상담을 적극 권유해서 이를 거절하는 피해자를 가해자가 비난하게 만든다. 현행법 목적이 가정의 회복에 치우쳐서 가정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지나쳐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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