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로모나 다스의 그림. 그는 첫 번째 그림에서 자신을 "성폭력 생존자"라고 소개했다. 두 번째 그림에서는 "미투 운동이 시작됐을 때 괴물 같은 기억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했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습니다. 인도의 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슈로모나 다스(24)의 이야기입니다. 다스는 자신을 “어린 시절 겪은 여러 성폭력 범죄의 생존자”라고 소개합니다. 단지 ‘끔찍하다’고 표현하기에 부족한 기억들이 다스의 머릿속에 있겠지요. 십여년 만에 “나는 아프다”고 고백한 다스의 사연을 전하려 합니다.

다스가 처음으로 성폭력에 노출된 것은 일곱 살 때였습니다. 가해자는 다스를 돌봐주던 삼촌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삼촌의 나이는 30대 후반. 삼촌은 다스의 부모가 집에 없을 때를 노렸습니다. 다스를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손으로 입을 막았지요. 다른 손으로는 다스의 몸을 더듬었습니다. 다스는 “제발 놔달라고 빌었다. 주방으로 도망쳤다”고 회상했습니다.

다행히 다스가 도망치자마자 손님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다스는 삼촌이 집을 떠나기 전 고작 일곱 살 어린 아이에게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삼촌은 다스에게 “네가 만약 이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난 네가 상상도 못 할 일을 저지를 거야”라고 협박했습니다.

"내 머리가 묻는다: 그 결과를 직면할 준비가 됐어? 네 친척들은 뭐라고 말할까? 누가 널 믿어주기나 할까?"

다스가 지난 24일(이하 현지시각) 온라인 매체 ‘허프포스트 인디아’에 털어놓은 일화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사촌 언니의 남편, 즉 사촌 형부는 10대였던 다스를 성폭행하려 했습니다. 억지로 입을 맞췄고, 귀를 깨물었고, 몸을 만졌습니다. 다스는 그때를 ‘어느 여름날’이라고 기억합니다. 다스의 집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가족에게 당한 두 번째 성폭력. 다스의 내면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다스는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을 마주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를 뒤흔든 움직임이었지요. 세계 곳곳에서 고통에 시달리던 여러 성폭력 생존자가 목소리를 냈습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요. 다스는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미투 운동이 시작됐을 때 그 괴물 같은 기억들이 다시 내 악몽에 나타났다. 나를 괴롭힌 자들이 편안히 잘 동안, 내가 정말 오랜 시간 간직해온 그 기억들이.”

고통에 신음하던 다스는 펜을 들었습니다. 타들어 가다 못해 문드러진 속을 대변하듯 배경은 검은색. 그 위에 그려진 선이라고는 오직 하얀색. 흑과 백의 그림. 다스는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을 담담히 그려나갔습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들도 적었지요.

"나를 성폭행한 남자는 친구, 가족이 있다. 나를 성폭행하려 했던 남자는 내 사촌 형부다." "내가 악몽에 헐떡이며 잠에서 깰 동안 그들은 축복 속에서 평범한 삶을 산다. 성폭행 가해자들은 특정 계층, 카스트, 피부색, 젠더를 가진 게 아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우리의 친구, 가족 틈에 숨는다."

그리고 지난 21일, 페이스북 아이디가 없는 다스는 남자친구의 계정을 빌려 그림 19장을 공개했습니다. 가해자의 실명도 밝혔습니다. 다스는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며 격려해준 부모님, 처음으로 성폭력 피해를 고백했던 상담 선생님, 2명의 절친한 친구 덕분에 용기를 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곁을 든든히 지켜준 남자친구에게도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이 그림은 어느 성폭력 피해자의 외침입니다. 아직 침묵 속에 있는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이기도 하지요. 다스는 말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아프다”고.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다고.

오늘 이 사연을 본 어느 누군가가 혹시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다스처럼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그대가 겪어야 했던 무수한 사건 중 그대의 잘못은 단 하나도 없노라고. 혹여 그 상처를 평생 묻어둔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응원하겠다고.

[사연뉴스]는 국민일보 기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접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는 한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더 풍성하게 살이 붙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반전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연의 흐름도 추적해 [사연뉴스 그후]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연뉴스]는 여러분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더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