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고시원 화재 생존자 이모(63)씨는 10일 푸석한 얼굴로 고시원을 올려다봤다. 남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는 ‘종로1·2·3·4가동’이 적힌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신발도 없이 탈출해 동사무소에서 임시로 받은 신발이다. 이씨는 “고시원에 들어갈 때는 설마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월셋방을 전전하던 그는 6개월 전 국일고시원에 들어왔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다보니 일거리가 많고 교통이 편리한 종로에 둥지를 틀었다. 평소 오전 5시30분이면 집을 나서기 때문에 화재가 시작된 9일 오전 5시쯤에도 일어나 TV를 보고 있었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몇 초 만에 비명소리, 급박한 소리로 바뀌었어요. 문을 여니까 천장에 불이 보이더라고.”

놀란 이씨는 방문을 닫고 침대 밑에 비치된 소화기를 들었다. 다시 탈출을 시도했지만 불은 더 커져 있었다. 유독가스가 훅 들어와 잠시 정신을 잃기도 했다. 그제야 한쪽 벽에 뚫린 창문이 생각났다. 이씨는 “방충망을 뜯고 바깥 공기를 몇 번 마시니 정신이 들었다. 창문 옆 에어컨 배관을 타고 내려왔는데 내가 마지막 탈출자 같았다”고 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국일고시원은 다른 고시원보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었다. 이씨가 살던 방은 월세 32만원이다. 창문이 없는 방은 25만∼28만원이라고 했다. 사망자 7명 중 일본인 피해자와 김모(56)씨, 조모(35)씨, 조모(78)씨가 창문 없는 방에 거주했다. 경찰은 사망자들이 잠든 사이에 불이 나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도 기침을 하면 검은 가래가 섞여 나오지만 이씨는 자신의 몸 상태보다 일을 나가지 못하는 현실을 더 답답해했다. 국일고시원에 머물던 사람은 대부분 이씨와 비슷한 처지다. 2층에 살던 남성 A씨는 “거의 다 일용직 노동자나 청소노동자였다”며 “종로에선 어느 지역이든 일 나가기 편해 고시원을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생존자들은 국일고시원에서 미처 챙겨나오지 못한 짐들을 꺼내 나왔다. 검게 그을린 흔적이 선명했고 탄내가 가득했다. 4년 넘게 머물던 홍모(58)씨가 챙겨 나온 짐은 비닐봉지 두 개 분량의 옷가지가 전부였다.

고시원 앞에는 작은 테이블 위에 고인을 추모하는 과일, 음료수, 국화꽃 등이 놓였다. 사망한 장모(72)씨의 이름이 적힌 국가 제공 쌀 ‘나라미’ 한 포대도 있었다. 2층에 살았던 여성 거주자는 “내가 계란 같은 걸 나눠주니까 나한테 이 쌀을 줬다”고 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째지만 사망자 7명 중 4명은 빈소도 차리지 못했다. 가족이나 친구와 연락을 끊고 산 세월이 길어 유족이 장례를 치르지 않기로 한 경우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빈소를 마련했던 김씨와 35세 조씨는 이날 발인을 마쳤다.

경찰, 소방 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가 10일 진행한 합동감식 결과는 3주 뒤에야 나올 것으로 보인다. 종로경찰서는 30명의 수사전담팀을 구성해 건물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건축 관련법 위반 혐의가 없는지 등을 수사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낡은 고시원을 상대로 스프링클러 지원사업을 해왔지만 국일고시원 건물주는 설치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 소유주는 최근 비소가 검출된 일본산 도장형(경피용) BCG 백신 수입사인 한국백신의 하창화(78) 회장과 그의 동생 하모(68)씨다. 이들은 각각 40%, 60%의 비율로 이 건물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박상은 최예슬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