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인생 최대위기에 몰린 이재명 경기지사가 꺼낸 반격 카드는 ‘피해자 프레임’이었다. 경찰이 트위터 계정 ‘혜경궁 김씨’(@08_hkkim)의 소유주가 이 지사의 아내 김혜경씨라고 결론 내리면서 파문이 확산되자, 이 지사는 “경찰이 진실보다 권력을 선택했다”며 자신이 ‘정치 탄압’의 희생양임을 강조했다.

19일 오전 8시50분쯤 경기도청에 나온 이 지사는 “계정 주인은 제 아내가 아니다”라며 “경찰은 제 아내가 아니라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비슷한 것들 몇 가지를 끌어모아 제 아내로 단정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차고 넘치는 증거 중에서 이미 목표를 정하고 그게 이재명의 아내다라는 데 맞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앞서 경찰은 2013년 5월 19일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에 이 지사가 전날 올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 사진이 게시됐고 비슷한 시각에 김씨의 카카오스토리에 같은 사진이 올라왔다는 점 등을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으로 제시했다. 이 지사는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카카오스토리와 트위터 계정을 갖고 있는데 트위터에 사진을 올리고 그 사진을 캡처해 카카오스토리에 올리겠느냐”고 반문했다.

눈여겨볼 것은 그동안 불공정한 경찰 수사를 비판해온 이 지사가 한 발 더 나가 자신을 ‘기득권과 권력에 의한 피해자’로 적극 규정했다는 점이다.

이 지사는 “경찰이 진실보다 권력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국가권력 행사는 공정함이 생명이다. 명백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김영환(전 의원)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한 경찰이 이재명 부부에 대해서는 왜 이리 가혹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때리려면 이재명을 때리시고 침을 뱉어도 이재명한테 뱉어라. 죄 없는 무고한 제 아내와 가족들을 이 싸움에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경기도 성남의 한 공단에 취업한 ‘소년공’ 출신인 이 지사는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정치인’ 이미지로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까지 올랐다.

‘형수 욕설 파문’이나 ‘여배우 스캔들’과 같은 정치적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기득권 세력의 이재명 죽이기’라는 프레임으로 위기를 돌파해왔다. 그는 지난 7월 성남지역 조직폭력배 세력과의 유착설이 제기됐을 당시에도 “거대 기득권 ‘그들’의 이재명 죽이기가 종북·패륜·불륜몰이에 이어 조폭몰이로 치닫는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지사는 이날 경기도청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경찰이 지금 이재명 부부에 대해 기울이는 노력의 10분의 1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이나 부정부패에 관심 갖고 집중했더라면 나라가 지금보다 10배는 더 좋아졌을 것”이라며 기득권의 대표주자로 삼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피해자를 자처하는 이 지사의 논리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직 경기지사인데다 여당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그가 ‘권력에 의한 탄압’을 언급하는 건 이번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혜경궁 김씨’ 관련 의혹의 핵심인물인 아내 김씨를 대신해 이 지사 스스로가 정치적 희생양임을 자처하면서 지지세력의 결집을 유도하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게다가 이 지사가 ‘피해자’임을 강조하면서 거론하는 ‘저들’ ‘기득권층’의 실체가 불분명하다. 이 지사는 “저들이 바라는 바, 이 저열한 정치 공세의 목표는 이재명으로 하여금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 논리대로라면 이 지사를 탄압하고 일을 못하게 하기 위해 경찰까지 동원할 수 있는 ‘저들’은 결국 문재인 정권의 핵심인사들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이 지사를 탄압하기 위해 경찰을 동원해 무리한 수사를 시켰다는 것인데, 동의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지사와 경찰 간 공방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구체적 거취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 상황에 대해서는 걱정한다”면서도 “공당으로서 구체적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사태를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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