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갑도 을도 아닌 병과 정 아래”라고 말한다. 최첨단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라는 수식어는 화려한 외관일 뿐이다. 혹독한 야근과 비정상적인 대우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국민일보는 ‘갑을병정 그 아래, 한국 IT노동자의 한숨’ 시리즈를 통해 IT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도 용기를 냈다.





양도수(43)씨는 IT 업계에서 꽤 유명한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폐 잘라낸 IT 개발자’.

양씨는 IT 노동자로는 처음으로 산업 재해를 인정받았다. 양씨는 옛날에 다니던 회사를 나와 지금은 대기업 쇼핑몰을 관리하는 중소 시스템통합(SI)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프로젝트 매니저인 양씨의 업무 방식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오후 6시면 직원들을 퇴근시킨다. 업무의 질도 개선됐다는 게 자체 평가다. 양씨는 11일 “야근을 하지 않아도 업무엔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야근은 사라져야 한다

-지금 근무하는 곳은 어디인가.
“이전 직장에서 근무하다 병을 얻었고, 6년의 소송 끝에 산재를 인정받았죠. 회사에서 해고된 뒤 지금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하이마트 쇼핑몰 등 롯데계열사 시스템을 관리하는 SI업체죠.”
-야근을 하지 않으면 IT 산업이 후퇴한다고들 한다. 6시 퇴근이 가능한가.
“제가 하이마트 (쇼핑몰) 관리자로 오기 전에 애들 2명이 도망갔다고 들었어요. 저는 직원들에게 야근 안 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오후 6시면 퇴근시켰죠. 대신 해야 할 일을 일과시간 중에 하도록 했어요. 결과적으로 업무 성과는 훨씬 좋았어요. 소프트웨어 품질도 좋아졌고요. 오늘(11일)도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처벌 유예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어요. 과로가 기업에 만연해 있고 법에 규정된 수당을 못 받는 노동자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처벌 유예가 현실에 부합한 조치인지 묻고 싶습니다.”

IT개발자 양도수씨가 지난달 2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IT업계의 부당한 노동 관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은비 인턴기자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탄력근로제를 도입해야 한다면 야근 수당을 돈으로 지불하고, 지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세게 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하면 탄력근로제는 사라질 겁니다. 왜냐. 돈을 주기 싫으니까. 그리고 주 52시간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뭐가 바뀌어야 합니까.
“사실 야근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 원인은 원청업체가 기존에 세웠던 작업 계획을 수시로 바꾸는 겁니다. 변경을 안 하는 게 최선이지만 정말 바꿔야 한다면 협의해서 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대로 하지 않아요. 서비스 오픈일은 임박한데 갑자기 ‘사장님이 바꾸라고 했다’ ‘상무님이 마음에 안 든다더라’며 수정을 요청해요. 결국 프로그램은 걸레가 되고 해결은 우리 같은 IT 노동자들이 합니다. 원청 기업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조금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일단 작업이 시작되면 담당자에게 맡겼으면 좋겠어요.”

-그런 부분이 하이마트와 일할 때도 벌어졌습니까.
“2주짜리 시스템 통합작업(프로젝트)을 진행할 경우, 그 스케줄에 맞춰 일을 합니다. 문제는 원청업체의 요구입니다. 서비스 오픈 일을 못 맞출 정도로 자꾸 요구 사항이 생기고 수정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하이마트 A팀장에게 서비스를 오픈하고 나중에 개선하자고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어요. 무조건 맞추라고 했어요.”

A팀장이 야근을 요구할 때마다 양씨는 거절했고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결국 폭력적인 상황도 벌어졌다.

-어떤 폭력적인 상황이었는가.
“2017년 2월 직원들이 모두 있는 사무실에서 A팀장은 한참을 저에게 폭언과 욕설을 했어요. 제가 ‘당신한테 욕 들으려고 여기 있는 것 아니다’라고 대응했더니, 욕설을 퍼부으며 때리려고 다가왔어요. 직원들이 A팀장을 말렸고 B매니저는 제 멱살을 잡고 나갔어요. 명백한 폭행이었죠.”

야근을 둘러싼 굴곡이 많았다. A팀장은 야근 문제로 양씨와 계속 이견을 빚자, 롯데정보통신에 압력을 넣어 ‘내 말을 안 듣는다’며 양씨를 내보내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롯데정보통신은 롯데그룹 계열사로 하이마트의 하청업체이자 양씨의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
양씨는 온라인에 IT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 그의 글이 알려지자, 하이마트는 조사에 들어갔고 A팀장은 지방으로, B매니저는 다른 팀으로 보냈다. 대신 양씨도 하이마트와 관련된 프로젝트에서 빠졌다. 지난 2월 A팀장과 B매니저는 서울 본사로 복직했다. 양씨는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좌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12일 “무리하게 일정에 맞추기 위해 야근 등이 있었고 이를 암묵적으로 방조했다”며 “지난해 7월부터 하청 직원들의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에서 오후 6시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하이마트는 매월 하청업체 대표들과 간담회 형식으로 만나 의견도 교환하고 있다. 주말당직은 신규 업체에 따로 맡겼다. 야근이 사라졌지만 피해는 없었다.

월 400시간 근무, 오른쪽 폐 절반이 사라졌어요

양씨는 지난달 22일 첫 인터뷰 때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여줬다.
IT개발자 양도수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며 자신의 휴대전화 속에 있는 문서 파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서엔 2006년 7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농협정보시스템에 근무하면서 근무한 시간이 정리돼 있다.

화면 속 문서의 파일명은 ‘근로복지공단제출’. 2006년 7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농협정보시스템에 근무하면서 자신이 일한 시간을 파일로 정리한 것이다. ‘정말 8770시간을 근무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걸 계산하면 주 몇 시간 근무를 한 것이죠?
“가장 많이 했을 때 월 400시간 넘게 일했어요. 2006년 11월엔 한 달 간 433시간, 12월엔 431시간 근무했네요.”
-이 데이터는 어떻게 나온 건가요?
“농협정보시스템에 들어가 근무하면서 사용한 교통카드, 신용카드 내역, 가족·지인 경조사, 하이패스 사용 기록 등을 조사했어요. 하루 18시간 일하기도 하고 휴일 포함해 한 달에 하루, 이틀 쉬기도 했어요. 퇴근은 새벽 2, 3시에 했고.”
-과로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폐를 절단했다고 들었습니다. 병원 진단명은 뭐였죠?
“건강검진에서 혈액검사를 했더니 ‘CA19-9 염증 표지자’라는 게 700 나왔어요. 정상은 30, 말기 암환자도 300~400 정도인데. 종합병원에서 검사하고 폐에 이상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바로 입원했죠. 일주일 내내 24시간 항생제를 맞았지만 상태는 악화됐죠. 의사가 ‘너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어요. 항생제를 맞았는데 차도가 없다는 건 몸의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면서.”

2009년 1월 수술 직후 촬영한 양도수씨의 폐 사진. 오른쪽 하엽이 잘려나간 폐와 정상적인 왼쪽 폐의 크기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국 양씨는 흉부외과에서 오른쪽 폐의 상·중·하엽 중 하엽을 잘라냈다. 그렇게 안 하면 균이 폐는 물론 다른 장기까지 녹일 것이라고 했다. 잘라낸 폐의 조직검사를 하고 내린 진단명은 결핵성 폐농양이었다. 두 달간의 치료를 끝내고 회사로 돌아왔지만, 책상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때부터 긴 싸움이 시작됐다.

-책상이 없다는 걸 알고 어땠는지?
“충격이었죠. 직장 동료들에게 물었더니 본사 대기팀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습니다. 병가 두 달 냈다고…”

대기팀에서 그는 홀로 밥을 먹었다. 결국 6개월 휴직에 들어갔다. 집으로 온 회사 우편물에는 연봉이 깎인 연봉계약서가 있었다.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다. 6개월 뒤 휴직을 다시 신청하자 회사는 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휴직을 연장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문서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회사에 문서를 보여줬나요?
“보여줬죠. 금전적 이득을 취하겠다는 게 아니라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것을 회사가 인정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런데 회사는 ‘너는 그렇게 근무한 적이 없다’ ‘회사에서 시킨 게 아니라 네가 원해서 (야근)한 거다’라고 했어요.”
-회사의 대응에 화가 났을 것 같아요.
“그때부터 산재 신청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고용보험에서 ‘신분 변동 통지서’라는 게 날아왔어요.”
-같은 회사에서 두 번의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했는데. 이게 첫 번째 해고였나요?
“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서를 냈어요. 지노위는 ‘절차상 하자로 부당해고’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회사에 출근한 상태에서 해고 통보를 받아야 했지만 전 휴직 중이었거든요.”
-그럼 두 번째 해고는?
“지노위 결론이 나오면 중앙노동위원회에 2주 안에 이의제기를 해야 합니다. 2주째인 2010년 추석 연휴 첫 날, 회사에서 특급 배송이 왔어요. 복직 통지와 함께 해고 통지였어요. 절차상 하자로 해고무효가 되지 않도록 복직을 시킨 뒤 해고 통지를 한 것이죠.”

힘든 싸움이었지만 결실을 맺었다. 양씨는 IT 노동자로는 처음으로 과도한 야근에 의한 면역력 저하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받지 못한 야근 수당도 전액은 아니지만 받았다. 농협정보시스템에서 2년6개월간 고생한 데 따른 것이다.

-없는 길을 만들었어요. 그만큼 고달팠을 것 같아요.
“노무사는 근무 시간을 보고 살아있는 게 용하다고 했어요. 문제는 산재를 신청해도 승인된 케이스가 없다는 거였어요. ‘(산재는) 죽어야 되는 건데…’ 라면서. 제가 살아 있어 산재 승인 받기 어렵다는 것이었죠.”
-가장 먼저 무엇을 했나요?
“2009년 노동부에 과도한 업무에 대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진정을 냈고 이후 변호사와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죠. 진정을 취소한 뒤 검찰청에 소장을 접수했고 검찰은 노동부(고용노동부)로 내렸어요.”

그러나 노동부는 1년이 넘도록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조사를 하지 않으니 진전된 것도 없었다. 다시 검찰로 넘어갔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민사로 넘어가 소송을 이어갔다. 회사는 야근수당의 85%를 지급하라는 판사의 조정안을 거부했다. 결국 25%만 인정한다는 선고가 내려졌다. 대신 재판부는 양씨에게 ‘항소하라’고 했다. 항소 재판부는 선고보다 조정을 권유했다.

-2014년 조정을 통해 야근의 75%만 받기로 합의했어요.
“대신 판결문에 들어간 문장 하나를 삭제했어요. ‘앞으로 절대 소송 안 하겠다’는 문항이었어요. 해고무효 소송도 해야 하고 산재도 신청해야 했거든요.”

2006년 1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26개월간 야근한 것에 대해 수당 중 75%를 받기로 했다. 이걸 받기까지 6년이 걸렸다. 양씨는 조정안을 앞세워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과로에 의한 면역력 저하로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IT개발자 양도수씨가 지난달 2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IT업계의 부당한 노동 관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은비 인턴기자

양씨는 인터뷰를 진행한 뒤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달 초 롯데 계열사와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끝난 뒤 양씨를 더 이상 신규 프로젝트에 투입시키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들렸기 때문이다. 양씨에게는 이런 얘기들이 압박으로 작용했다. 하이마트 측은 “압박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양씨와의 첫 인터뷰는 지난달 2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사무실을 빌려 진행됐다. 당시 양씨는 기자에게 “다 써 주실 건가”를 여러 차례 물었다.

<글 싣는 순서>
1회/“52시간 근무해도 IT기업은 망하지 않아요”
2회/“피해자는 있었지만 가해자는 없었다”
3회/“과로사와 과로 자살은 뭐가 다른가요”
4회/몰랐고 모른 척 했다
5회/미국의 실리콘밸리엔 야근이 없다
6회/기준이 필요하다, 표준계약서·야근 수당’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박태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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