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야(53·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나는 지금 집도 잃어버리고 부모도 잃어버리고 다 잃어 버렸어. 그때부터 난 모든 것을 잃어버렸어. 지금까지…. 내 어릴 적 인생을 누가 책임져줄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고 싶어 진짜.”


국회 정문 앞 작은 천막에서 400일 넘게 노숙농성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외치고 있는데요.


형제복지원 사건.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민들을 복지원에 가두고 때리고 심지어는 암매장했던 사건입니다. 사망자가 551명에 달해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으로 꼽힙니다.


부랑인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부랑인만 이곳에 있었던 건 아닙니다. 장애인, 가족이 있는 일반인 심지어는 어린아이들도 끌려갔습니다. 납치와 인신매매를 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종선(42·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 “1984년도 때 초등학교 2학년 다니고 있었고, 작은 누나가 12살 초등학교 4학년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동네 구경시켜주고 ‘파출소에 잠깐 있어라’ 하고 나가고 나서 형제복지원 차량이 와서 들어가게 됐죠. 아버지는 국가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쳐준다고 하니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강호야(53·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용두산 공원을 내가 올라갔는데 거기 관리하는 사람이 나를 부르더라고 ‘이리와 봐라’ 그쪽에서 시청으로 보내진 거 같아. 그냥 형제유아원이지 그때 가. 거기로 보내 버리더라고.”


형제복지원은 입소자들에게 감옥과 다름없었습니다. 입소자들은 100명 안팎으로 구성된 소대로 편제됐고,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렸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죠.

한종선(42·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 “새벽 4시에 기상하자마자 이불 대충 개고 세면장 앞으로 쪼그려 가서 4열종대로 앉은 다음에 굵은 소금을 받아서 손가락으로 양치를 해요. 물 세 바가지로 세면을 끝내고 새벽 5시쯤에 중대장이 문을 따고 인원 점검을 하고 그래요. 그럼 점호 받고 새벽 6시에 조식 아침. 밥 먹는 시간은 5분 안짝밖에 안돼요. 그래 제대로 먹질 못해. 맞으니까. 아침 8시경에 공부하러 가는 애들이 있어요. 걔네들 추려내고 나서 남은 소대원이 작업을 하면서 두들겨 맞는거죠.”

폭행과 가혹행위는 일상이었습니다. 폭행으로 사망한 사람도 발생했습니다. 시신은 암매장되거나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종선(42·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 “간질 걸렸던 원생이 있는데 두들겨 맞는 도중에 얘가 발작을 일으켰고 근데 조장이 ‘이 새끼 또 꾀병 부린다’고 막 자근자근 밟는거라. 맞다 보니까 애가 정신이 번쩍 들어버린 거예요. 살려달라고 막 앵겼을거 아니에요. 무릎잡고 그러니까 이 조장이 더 짜증나니까 몽둥이로 막 패기 시작한 거예요. (머리에서)골수 같은 게 하얀 거랑 빨간 거랑 섞여 나왔단 말이죠. 소대장이 와서 보고 ‘야 이거 의무과로 데리고 가’ 하는거죠. 현황판에 의무과 1이라고 적혀요. 치료를 받고 장애가 생긴 애는 복귀한 다음에 장애 소대로 옮겨가면서 (숫자 1이) 지워져요. 근데 어느 순간 지워지고 애는 안 돌아왔어. 그러니까 병원에서 죽은거지.”

강호야(53·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그냥 몽둥이로 막 때리더라고. 엎드려뻗쳐 해서. 이렇게 하라고 해서 손위를 주먹으로 막 때리더라고.”

저희는 취재과정에서 지속적인 폭행으로 정신장애를 얻게 된 피해 생존자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쪽방촌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박종호(54·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마디로 노예지. 북한보다 더하는데…, 딱 깨놓고. 빨리 안 가면 때리고. 사람들은 안 맞으려고 X나 뛰는거지. 도망가다 걸리면 반 죽는거고.”

음식으론 맹물에 선지나 소금만 넣은 국이 나왔고, 쓰레기 채소로 담근 김치, 썩은 생선구이 등이 반찬이었다고 했습니다.

강호야(53·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밥도 뭐 그때는 막 진짜 주먹밥 그냥. 글자 그대로 주먹밥. 요만큼 주더라고. 반찬이 없어. 소금을 조금 구해가지고 빻아 가루를 내서 밥 나오면 밥하고 막 비벼 먹는거죠.”

박종호(54·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구더기까지 잡아먹는 것도 봤어요. 못 먹으니까 그런 것까지 먹고 살아야지.”

형제복지원은 1987년 한 검사가 감금된 입소자들을 목격하고 수사를 진행하면서 폐쇄됐습니다. 하지만 입소자들의 지옥은 계속됐습니다. 갈 곳도 없었고, 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종선(42·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 “다행히 난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어요. 아버지랑 누나랑. 근데 난 다른 고아원으로 전원조치가 돼 버렸잖아요. 아버지랑 누나는 정신이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 한푼 없이 사회로 그냥 내버려 진거죠. 진짜 거지를 만든 거예요. 국가가 그래놓고 89년도에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아버지랑 누나를 행려 환자로 정신병원에 가둬 놓은 거예요.”

강호야(53·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뭐 배운 게 있어 뭐가 있어. 껌팔이도 하고, 신문팔이도 하고 하다가. 그러다가 조금 나이 먹고 노가다(공사장)에서 계속 하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화물차 운전하다가 지금은 몸이 아파서 모든 걸 손 놓고 이렇게 있는거죠.”


형제복지원은 폐쇄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피해 생존자와 유족들은 어떠한 배상과 지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건에 대한 진상조차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죠.

강호야(53·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나는 지금 집도 잃어버리고 부모도 잃어버리고 다 잃어 버렸어. 그때부터 난 모든 것을 잃어버렸어. 지금까지…. 내 어릴 적에 내 어린 인생을 누가 책임져줄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고 싶어 진짜.”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달 20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대법원에 ‘비상상고’ 했습니다. 1989년 대법원이 형제복지원의 보조금 횡령혐의만 인정하고 특수감금에 대한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는데 이를 바로 잡아달라는 겁니다. 하지만 피해생존자들은 비상상고보다 특별법을 제정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한종선(42·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 “특별법 제정은 말 그대로 우리가 왜 잡혀갔었는지 이야기를 해달라는 거예요.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 수용소에 감금된 거죠. 그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내 잘못이 무엇인지 이야기 좀 하고. 그 잘못이 나한테 있지 않고 국가한테 있다하면 우리한테 사과 좀 해달라는 거예요. 30년 동안 이렇게 억울하게 살아 왔다는 것도 열 받는데 거기서 내 인생이 망가진 것에 대해서 원인도 모른다면 죽어서도 한이 될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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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구 기자, 제작=김평강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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