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빼앗긴 교회 종을 117년 만에 돌려받다

지난 12월 11일(현지시간) 필리핀 발랑기가에 있는 산 로렌조 데 마티르 교회(가톨릭)는 100여 년 전에 미군이 빼앗아 간 종 세 개를 돌려받았다. 송환기념식에는 에네스토 두테르테 대통령까지 참석해서 기념사를 했다. 발랑기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돌아온 종을 맞아 이렇게 성대한 잔치를 벌였나?

11일(현지시간) 필리핀 파사이시티 빌라모 공군기지에서 미국이 반환한 발랑기가 종 주변에 발랑기가 주민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 뉴시스

필리핀의 근대사는 기구하기 짝이 없다. 필리핀에서 16세기부터 300년 이상 군림하던 스페인제국은 파리조약(1898)으로 쿠바를 포함한 제국의 거의 모든 식민지에서 떠나게 되었다. 이때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넘긴다. 특히 필리핀에 대해서는 미국이 스페인에 2천만 달러를 치르고 스페인과의 전쟁을 끝낸다.

스페인과 갈등 중인 쿠바에 힘을 실어준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필리핀에서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기 전에도 필리핀은 독립을 위해 스페인에 대항하여 싸워왔다. 파리조약으로 쿠바는 독립을 얻었지만, 필리핀에선 이제 세계강대국으로 우뚝 선 미국이 주인행세를 한다. 당연히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필리핀은 미국과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1899-1902)을 불사한다. 발랑기가 대학살이 이 시기에 벌어진다.

1901년 당시 발랑기가에는 미군이 74명 주둔해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원하던 발랑기가 사람들이 9월 28일 새벽 미군 영내에 위장하고 들어가 미군 48명을 죽였다. 이때 이들의 작전 개시를 알리는 신호가 교회 종이었다. 이 사건은 미군 역사에서 가장 큰 치욕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에 미군은 사마르섬 사람들을 죽이고 불을 질러 처절한 복수를 벌였다. 1990년대에 이뤄진 연구는 이때 사망자가 2500명으로 잠정집계했다. (실제로는 희생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미군은 발랑기가 교회에 있는 종 세 개를 끌어 내려 가져갔다.

이 이야기는 한국과 전혀 별개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군이 가져간 종 가운데 둘은 나중에 미 와이오밍주 샤이엔에 있는 프랜시스 E. 워런 공군기지로 옮겨졌다. 땅에 떨어진 별들(전사한 군인)을 기리는 상징으로 지난달까지도 설치되어 있었다. 나머지 하나가 실제로 발랑기가 사람들의 작전 개시 때 사용한 종으로 알려졌는데, 이 종은 필리핀-미국 전쟁 이후로는 미군의 재배치로 미 제9보병연대 소유로 주한 미군 캠프 레드 클라우드(의정부) 영내 제2보병사단 박물관에 있었다.

1950년대부터 필리핀은 수없이 많은 경로를 통해 이 종들을 돌려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다. 결국 이번 달 이 종들은 미국과 한국에서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로 옮겨져 최종 송환을 위해 다 함께 필리핀으로 향했다.

11일 필리핀 공군이 미국이 반환한 발랑기가 종을 빌라모 공군기지에 하역하고 있다. AP 뉴시스

11일 주필리핀 미국대사 성 김(한국 이름 김성용, 오른쪽에서 세 번째)을 포함한 미국과 필리핀 정부 관리들이 반환된 발랑기가 종 세 개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 뉴시스

발랑기가 종 세 개의 반환요구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책, 또는 주한 프랑스공사가 사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을 우리가 요구하는 것과는 결이 좀 다르다. 과거사를 바로잡고 국가의 긍지를 높이기 위해서 뿐일까. 디자인도 단순한 이 종들이 발랑기가 사람들에게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에게 무엇이길래 반드시 돌려받고자 했을까.

지난해 7월 발랑기가 산 로렌조 교회 세라핀 B. 티바코 주니어 주임신부가 미 워런 공군기지의 스테이시 J. 휴서 대령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이 종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 편지에 따르면, 1854년에 세워진 이 교회를 위해 교인들이 희생과 정성을 모아 30년 만에 종 세 개를 마련했다. 하지만 독립을 위해 싸운 필리핀 사람들과 당시 이 섬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사이에 벌어진 그 험악한 일로 1901년 이 소중한 종들을 빼앗겼다.

2013년 11월 타클로반을 중심으로 73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초강력 태풍 하이얀(욜란다)이 강타했을 때 산 로렌조 교회 건물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 뒤 2016년 4월 교회는 건물을 새로 지었다. 가진 것이 많지도 않은데 태풍피해로 그나마도 다 잃은 교인들이 다시 정성을 모아 드디어 종 두개를 걸었다. 그만큼 교인과 마을 사람들에게 종이 중요했다. 그리고 교인들은 새 종들이 1901년 빼앗긴 그 종들은 아님을 기억했다.

편지에서 티바코 주임신부는 영국 성공회 신부이자 시인 존 던(John Donne, 1572~1631)이 쓴 ‘위험에 처할 때 드리는 기도’(1624) 가운데 ‘묵상 17’을 인용했다. 전통적으로 교회가 마을의 중심이었으므로 교회는 결혼, 죽음, 중요한 알림이나 긴급한 상황, 또는 기도 시간, 예배 모임을 알리기 위해 종을 쳤다. 당시 병마와 싸우며 죽음을 마주했던 존 던은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가 어쩌면 다가올 자기 죽음과 무관하지 않음에 대해 명상했다. 그리고 인류가 서로 연관되어있음에 대해 기도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을 다룬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1940)의 제목을 따온 바로 그 부분이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있는 섬이 아니다. 누구나 대륙의 한 조각이며 중요한 것의 한 부분이다.
흙 한 덩어리가 바닷물에 씻겨나가면 유럽은 땅끝 곶과 마찬가지로 작아진다.
그대 친구나 그대의 커다란 집도 마찬가지일 터다.
누구의 죽음이라도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나는 인류와 엮여있으니까. 그러니
저 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고 하지 말게.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까닭에.”

편지는 2016년 미국이 같은 역사를 가진 산 페드로 종을 115년 만에 필리핀에 돌려준 것을 언급한다. 또한, 비슷한 배경을 가진 또 다른 종들도 미국이 러시아, 일본으로 돌려준 일화들도 담고 있다. 발랑기가 종들도 그 종들처럼 어서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미국과 필리핀 두 나라가 더 튼튼하게 연결되도록, 우리 모두를 위해 울리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편지가 마무리됐다.

발랑기가 종 세 개가 117년 만에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싸움보다 화해가 어렵다. 미국으로선 자국 군인을 48명이나 죽인 전쟁상대국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고 마을에서 가져간, 그나마 쓸모있는 쇠붙이였을 것이다. 필리핀으로선 독립투쟁 과정에서 처참하게 당하고 빼앗긴 마을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10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서로 앙금은 가라앉았을지언정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 대해 막말을 쏟아내던 대통령 두테르테의 정치적 아젠다가 무엇이든, 교회 종을 돌려준 미국이 너그럽다며 칭찬했다. 그리고 돌아온 종을 일곱 번 울렸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이 필리핀을 지배한 기간(1565~1898)에 비해 필리핀이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것(1898~1946)은 상대적으로 짧다. 스페인이 떠난 후에도 물론 그 영향이 남아있긴 했지만 1900년 전후하면서부터 필리핀은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개신교를 접하게 되었다. 현재 전체 인구의 77%가 가톨릭 신자이고 16%가 개신교 신자다. 스페인어는 필리핀 사람 모두의 언어가 되지는 않았기에 현재 필리핀 공식 언어는 필리피노(따갈로그)와 영어다. 미국의 화해 몸짓으로 미국과 필리핀 사이가 좋아지면, 필리핀 개신교에 어떤 변화가 마련될까.

박여라 기자 ya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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