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거대 어음 사기 사건의 주범 장영자씨가 또다시 사기 행각을 벌여 재판을 받고 있다. 1982년 이후 네 번째 구속된 것으로 수감생활만 29년이다. 12일 방송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희대의 사기범 장씨의 끝나지 않은 사기행각과 지하자금 500억원의 행방을 파헤쳤다.


골동품 수집이 취미였던 38세의 여인. 집 한 채 값을 들고 판매상을 찾을 만큼 손이 컸다. 1976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한 해저 유물을 대거 구입할 정도로 그의 골동품 사랑은 남달랐다. 그의 한 달 생활비는 3억9000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그는 왜 희대의 사기범이 됐을까.

장씨와 남편인 고(故)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은 1980년대 ‘사채 큰 손’으로 이름을 날렸다. 대학 시절부터 사채에 손을 댔다는 장씨는 두 번의 파경을 맞았지만 위자료로 재산을 불렸다. 이 전 차장은 장씨의 세 번째 남편이다. 이들 부부는 20억원을 종잣돈 삼아 자금사정이 긴박한 기업체를 대상으로 돈을 빌려줬다. 100억원을 빌려주고 어음은 200억원을 받았다. 이자가 낮은 대신 담보로 어음을 한 장 더 받은 것이다. 받은 어음은 담보로만 보유하고 있겠다고 약속했지만 모두 현금으로 바꾸어 사용했다. 이 돈을 또 다른 기업에 빌려줬다.

장씨 부부의 인맥이 사기에 큰 역할을 했다. 장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돈이었고, 남편은 육군 장교 출신으로 중앙정보부 차장을 역임했다. 당시 이 전 차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부하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들 부부의 중매도 박 전 대통령이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 역시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져 있었다. 이들 부부의 신용도는 최상이었다.


대범한 사기 수법에 당시 대기업이었던 일신제강, 공영토건 두 곳이 문을 닫았다. 기업가와 은행장 등 총 32명이 구속됐고 당시 정부 각료 11명이 해임됐다.

법원은 장씨 부부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장씨는 10년 뒤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지만 1994년 같은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1993년 금융실명제가 시작돼 사기 전과가 있는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지인과 사위 고(故) 김주승의 업체를 이용해 어음을 발행하고 유통시켰다가 부도를 낸 것이다.


이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지만 2000년 또 비슷한 혐의로 구속됐다. 화폐개혁으로 지폐 모양이 바뀌자 새로운 사기를 도모했다. 당시 장씨는 구권 화폐를 신권으로 바꿔주면 웃돈 30~50%를 주겠다며 200억원이 넘는 돈을 갈취했다. 구속 전 장씨는 “IMF가 왜 왔겠나. 돈을 축적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창고에 쌓아두는 것이 문제다. 생명을 걸고 구권의 실체를 밝힐 것”이라는 황당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15년 출소 후 지인이 촬영한 영상에서 장씨는 가게 부채가 급증한 원인은 지하자금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장씨의 남편 이 전 차장은 “지금은 돈이 다 묶여있기 때문에 내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줬다는 공작금 500억원에 대해 언급했다. 장씨의 지인 역시 “장씨가 최근까지도 500억원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남편에게 공작금으로 준 돈’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가 주장한 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 500억원은 실존할까. 은행 측은 “500억원 예금 증서는 사실상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에는 한 지점에 500억원 전부를 묶어둘 수 없었다는 의미다. 한 전문가는 “원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며 “복사를 했기 때문에 선이 뭉개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확인 결과 해당 예금의 계좌번호는 개설된 적이 없었다. 장씨가 자신의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500억원 양도성 예금증서는 가짜였다.

장씨의 위조 행각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2년 전 부산의 한 은행에서 위조 수표가 나왔다. 무려 154억원에 해당한다. 이 수표를 은행에 맡긴 한 건설사 대표 입에서 장씨의 이름이 나왔다. 그는 “장씨가 ‘154억원짜리 수표가 있는데 이걸 현금으로 바꿔 100억원은 나에게 주고 나머지는 투자금으로 사용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강원도 강릉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번엔 152억원짜리 위조수표였다.


장씨가 소유 중인 부동산 역시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씨에게 돈을 받아야 할 사람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정말 재산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까.

전문가들은 은닉 재산에 집중했다. 장씨가 한창 사기를 벌이던 시절에는 차명거래가 합법이었다. 장씨가 수집하는 골동품 역시 은닉이 가능하다. 한 전문가는 “골동품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재산이다. 재벌들이 골동품을 수집하는 이유는 부피 대비 가치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보관이 쉬워야 하고 은행 기록에는 안 남아야 한다. 재산 은닉 첫 번째는 기록이 안 남는 것이 대전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씨의 골동품 대부분은 가품인 것으로 보인다. 수사 당시 발견된 이당의 ‘미인도’ 역시 가짜였다. 장씨 지인들은 그가 수집한 골동품이 진품인지, 가품인지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장씨가 머물렀던 호텔 객실에 가득했다는 골동품은 단 37점만이 남아 있었고 측정가는 7500만원 정도였다.

아직 장씨에게 구제받지 못한 채권자들이 남아있다. 그와 함께 사기에 가담한 남편은 사망했다. 생존한 장씨에게 은닉재산이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하기 힘들다. 심지어 장씨는 현재 고액 체납자다. 그가 모았다는 1600여점에 달한다는 골동품 행방도 찾을 길 없다. 전문가들은 “장씨에게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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