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본격 착수한 지 7개월 만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서에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최종 책임자’로 적시했다.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8일 오후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위계 등 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구속영장 청구서에 기재된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점은 40개가 넘는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주요 혐의에서 단순히 지시나 보고 받는 것을 넘어 직접 범죄를 주도한 사실이 각종 증언과 물증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사태의 최종 결정권자이고 책임자로서 무거운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소송 개입, ‘블랙리스트’를 통한 법관 사찰, 헌법재판소 기밀 누설 등 주요 혐의에서 단순 공범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양 전 대법원장의 해명을 거짓 진술로 본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일본 전범기업 측 소송대리를 맡은 김앤장 측의 한상호 변호사와 최소 3차례 접촉한 정황을 포착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소송 계획을 김앤장 측에 넘겨준 물증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재임기 사법행정 방침에 반대한 법관들을 ‘물의야기법관’으로 분류해 직접 인사 불이익을 준 정황도 자필 서명이 포함된 행정처 문건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의 위상을 높일 목적으로 헌법재판소의 내부 기밀을 빼내도록 지시한 정황도 관련 진술과 물증을 통해 드러났다.

검찰이 제출한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청구서는 260여쪽에 달한다.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244쪽), 구속영장이 기각됐던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158쪽)과 고영한 전 행정처장(108쪽)의 영장 청구서보다 더 두껍다.

검찰은 이날 박 전 처장에 대해서도 지난해 12월 3일에 이어 46일만에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검찰은 박 전 처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특가법상 국고손실, 위계 등 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을 받고 있다고 적시했다. 박 전 처장에게는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 위반 혐의도 추가됐다.

박 전 처장의 구속영장 청구서는 200여쪽으로 알려졌다. 1차 구속영장 청구서에 비해 40쪽 넘게 늘어났다.

앞서 법원은 “공모관계의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박 전 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박 전 처장에 대한 2차 구속영장 청구서에 새롭게 밝혀진 혐의를 추가하고 기존 증거자료를 대폭 보강했다.

검찰은 박 전 처장이 판사 출신인 서기호 전 의원의 ‘판사 재임용 탈락 취소 소송’과 관련해 2012~2015년 재판부에 조기 선고를 요구하며 개입한 혐의 등을 영장청구서에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검찰은 고 전 처장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고 전 처장이 자신이 연루된 ‘부산 스폰서 판사’ 사건과 평택·당진항 매립지 귀속 소송 등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상당 부분 인정한 점을 감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번 구속영장 청구에 그치지 않고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이르면 21일 열릴 전망이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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