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비서를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간음 또는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 1심과 2심 재판부는 엇갈린 판단을 내놨다. 1심은 수행비서 김지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고, 안 전 지사가 업무상 위력을 행사했다는 점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원심 판단을 모두 뒤집고 김씨 손을 들어줬다. 같은 쟁점과 진술에 대해 1심과 2심 재판부가 어떻게 다른 시각을 가졌는지 판결문을 통해 상세히 살펴본다.

안희정 전 지사의 업무상 위력 판단

2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으로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폭행이나 협박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 권세도 포함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러한 판례를 근거로 안 전 지사의 심기를 항상 살펴야 하는 수행비서의 업무 내용과 강도에 비춰봤을 때 차기 대선주자이자 현직 도지사라는 지위와 권세는 김씨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 세력이라고 판단했다.

또 2심 재판부는 전임 수행비서 등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진술을 들어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피고인은 성격이 급한 탓에 원하는 것이 바로 되지 않는 경우 불편한 표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간혹 있었고 그때 위압감을 강하게 느꼈다’ ‘피고인은 말로 혼내는 것이 아니라 표정과 분위기로 상대에게 위압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아무래도 까탈스러운 면이 있고 자신을 챙기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판결문에 기재하고 있다.

이에 반해 1심은 안 전 지사에게 업무상 위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 위력이 ‘행사’되어서 김씨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았다고 봤다.

또 2심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참모진과 소통하는 정치인으로서의 태도를 취했다’ ‘코피를 흘리는 운전 비서를 대신해 운전하기도 했다’ ‘나이 어린 흡연자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우는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안 전 지사가 하급자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취해오지는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지은씨 진술의 신빙성 판단

안 전 지사는 총 10개의 공소사실로 기소됐다. 4회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5회의 강제추행, 1회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다. 1심은 전부 무죄로 판단했고, 2심은 강제추행 1회만 제외하고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1심은 김씨 진술에 일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봤다. 반면 2심은 김씨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정적인 부분까지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믿을만하다고 결론 내렸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에 대한 각 재판부의 판단을 본다.

◆2017년 7월 30일 첫 간음 행위

첫 간음 행위는 2017년 7월 30일 러시아 출장지에서 이뤄졌다. 앞서 러시아 요트 위에서 한 차례 추행이 이뤄진 뒤다. 2심 판결문에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김씨 진술이 상세히 기재돼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맥주를 가져다 달라고 해서 방에 들어갔더니 갑자기 저를 안았다” “바닥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아니에요, 아닌데, 아닌데요’라고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안 전 지사가) 별별 희한한 소리를 다 했다” “나한테 일어난 일이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이다.

2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진술 내용을 보더라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진술할 수 없는 매우 세부적이고 비정형(非定型)적인 사항까지 상세하게 진술하며 내용 자체로 비합리적이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며 위력에 의한 간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1심은 안 전 지사가 “나를 안게”라고 말한 뒤 김씨를 안은 행동에 대해 “그와 같은 행위가 정치·사회적 권력을 남용한 정도에 이른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고, 성인 여성의 자유의사를 제압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요트에서 불쾌한 첫 신체접촉을 당한 상태에서 ‘아닌데요, 아니에요’라고 중얼거리며 소극적으로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김씨의 진술 신빙성을 배척했다.

첫 간음 행위가 이뤄진 뒤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집을 물색한 사실, 안 전 지사가 이용하는 미용실에 찾아가 머리 손질을 받은 사실, 안 전 지사 부부와 동행해 와인바에서 와인을 마신 사실에 대해서도 두 재판부는 전혀 다른 판단을 내놨다.

2심 재판부는 “순두부집을 물색하는 것은 김씨가 수행비서로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이고, 와인바는 안 전 지사 지시로 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용실에서 김씨가 미용사에게 “수행비서 일이 너무 적성에 잘 맞고 일하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한 점을 들어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안 전 지사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팬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수행비서 일이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라는 김씨 진술을 근거로 들었다. 이어 “그러한 사정만으로 성폭력 피해자라면 도저히 보일 수 없는 행동을 김씨가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1심은 김씨가 순두부집을 찾고 와인바, 미용실에 방문한 정황을 들면서 “안 전 지사로부터 위력에 의한 간음 피해를 입었다는 김씨 진술을 믿기 어려운 정황”이라며 의문을 드러냈다.

2심은 또 ‘합의 하에 관계를 맺었다’는 안 전 지사 측 주장에 대해서도 “간음 행위 전 성관계에 관한 명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볼 자료가 없고, 이전에 김씨가 안 전 지사에게 이성적으로 호감을 가졌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다”고 일축했다. 간음 행위가 김씨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는 것이 2심 판단이다.

1심은 “김씨의 성적 주체성이나 성적 취향 등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이고 간음 후 김씨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사전에 아무런 교감도 형성하지 않은 채 김씨와 별다른 의사 교환 없이 간음에 이르렀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안 전 지사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2017년 8월 13일 두 번째 간음 행위

두 번째 간음 행위는 2017년 8월 1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다. 안 전 지사가 김씨에게 ‘씻고 오라’고 했고 이를 ‘짐을 풀고 오라’는 뜻으로 이해한 김씨는 샤워를 한 뒤 그의 방에 갔다가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김씨가 ‘씻고 오라’는 말을 ‘짐을 풀고 오라’는 말로 이해했고, 평소 김씨의 업무태도를 봤을 때 이러한 태도를 납득하기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이 말이 성관계를 하자는 표현이라고 해석하기도 어려우며, 수행비서로서 지시를 무시하거나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1심은 이미 한 차례 성폭력을 당했고,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면 ‘씻고 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용건 정도는 물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이 말을 단순히 ‘짐을 풀고 오라’는 뜻인 줄 알았다는 김씨 증언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2017년 9월 3일 세 번째 간음 행위

세 번째 간음행위는 2017년 9월 스위스 출장지에서 벌어졌다. 호텔방에서 안 전 지사가 간음을 시도했고 김씨는 “아니오,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아니에요”라며 최대한의 방어를 했지만 재차 시도하는 것을 보고 무기력해졌다는 게 김씨 설명이다. 또 이후 한국에 있는 지인 B씨에게 전화통화로 피해사실을 알렸다고 김씨는 주장한다.

2심 재판부는 “당시 상황에서 이뤄진 구체적 행동이나 말, 특히 이전과 달리 강하게 저항했다고 생각하는 부분, 간음 이후 김씨가 가진 생각이나 감정 등에 관해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진술할 수 없는 세부적인 사항까지 묘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전화를 받은 시점 등 B씨 진술과 김씨 진술이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런 이유로 B씨 진술 신빙성을 배척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이에 비해 1심은 간음 행위 전후 김씨의 행동에 주목했다. 김씨를 호텔 방으로 부르기 위해 안 전 지사가 두세 차례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인 “‘....’”만으로는 두려움을 느꼈다는 김씨 증언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앞서 두 차례 간음이 있었는데도 ‘아니요, 아닌 것 같아요’ 라며 대동소이한 정도로 거절 의사를 표시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음날 안 전 지사의 아침 식사를 챙긴다든가, 혼자 산책을 하고 있는 안 전 지사를 챙기려는 모습을 보인 것도 진술 신빙성을 약화시키는 정황이라고 봤다. B씨 진술도 객관적 통화내역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신빙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2018년 2월 25일 네 번째 간음 행위

마지막 간음 행위는 2018년 2월 25일 서울의 마포 오피스텔에서 일어났다. 대전에 있던 김씨를 마포로 불러 ‘미투’를 언급하면서 김씨를 간음했다는 게 검찰 측 공소사실이다. 이때 김씨는 안 전 지사를 고소하기로 마음먹고, 지인에게 피해사실을 알린 뒤 산부인과와 변호사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김씨는 수사기관과 1·2심 재판에서 ‘처음에 미투 얘기를 하시기에 오늘은 나를 안 건드리실 거라는 안도감이 있었다’ ‘미투 얘기를 하면서도 저렇게 하시는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멘붕이 왔다. 그 날만큼은 정말 모든 게 다 무너졌었다. 난 여기서 벗어날 수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2심은 김씨 진술 신빙성을 인정했다.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모순이 없고 안 전 지사를 무고할 동기도 없다는 것이다. 또 안 전 지사가 이후 ‘나 때문에 상처받고 그러지 말길’ ‘많이 힘들구나’ ‘미안’ ‘괘념치 말거라’ 등 김씨가 답장을 하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낸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정황 또한 김씨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고 봤다.

하지만 1심은 사건 직후 주고받은 텔레그램 내용을 김씨가 모두 삭제한 점, 수행비서가 아닌 정무비서로 보직이 변경된 상황에서 개인적인 수행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심야에 대전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온 점 등을 들어 “오피스텔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는 피해자 주장과 모순된다”고 봤다. 또 “미투 운동의 사회적 가치에 안 전 지사 행동이 반한다고 말하거나,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의 최소한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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