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려운 성경을 러브레터로 표현한 뮤지컬 ‘요한계시록’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등 7개 도시는 우리 모습과 닮아

삶과 신앙이 분리되며 세상과 타협하는 두아디라 사람들의 모습.

지난 8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이화장길 쇳대박물관. 문화행동 아트리와 극단 광야가 제작하고 기획한 뮤지컬 ‘요한계시록’이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극장 안팎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녀의 손을 잡고 온 부모들도 꽤 있었다. 청년들은 극장 입구에 있는 ‘光野(광야)’라고 써진 간판과 표가 보이게 인증사진을 찍으며 관람을 기대했다. 뮤지컬 ‘요한계시록’은 최근 대학로에서 이례적으로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기쁜 소식이에요! 아도니아의 사랑 이야기에요. 아도나이는요, 곧 돌아올 거에요!”(에클레시아) 요한계시록은 예언서라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만 가장 어려운 성경 중 하나로 꼽힌다. 요한계시록을 예수님의 러브레터로 보면 어떨까. 이 작품은 요한계시록을 사랑 이야기로 풀어내 누구나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의 2~3장을 토대로 창작했다.

에클레시아와 파라.

여주인공 에클레시아는 아도나이 왕자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지키며 일곱 도시인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를 여행한다. 에클레시아는 교회, 아도나이 왕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에클레시아를 항상 지켜주는 ‘파라’는 성령을 의미한다.

일곱 도시의 풍경은 성경에 나온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모습이자 우리 각자와 현 교회의 모습과 흡사하다. 에베소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하고 인내하는 동안 의무감에만 사로잡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모습을 갖고 있다. 서머나는 극심한 환난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예수를 위해 기꺼이 순교하는 모습을 보인다. 버가모는 온갖 우상 숭배에 마음을 빼앗긴 모습을 풍자한다.

서머나에서 순교하는 폴리갑.

두아디라는 사업에 열중하는 사이 점차 삶과 신앙이 분리돼 세상과 타협하는 모습이다. 처음의 뜨거운 열정은 사라지고 꺼져가는 등불처럼 살았지만 죽어가는 사데, 작은 능력이지만 끝까지 예수의 이름을 지키는 빌라델비아, 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부유하다고 착각하는 라오디게아. 이들이 받는 격려와 위로, 책망은 나와 지금 교회를 향한 메시지가 아닐까.

현대인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부분들은 흥미로운 관점 포인트로 꼽힌다. 두아디라에서 주인공은 세상과 타협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버리고 만다. 오늘날 화려한 ‘패션 문화’와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은 ‘셀카 문화’로 표현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줬다.

라오디게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노래 구절은 ‘No, problem(문제없어)’이다. 당시 라오디게아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금융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풍족한 도시에서 살다 보니 영적으로도 부유하다는 착각에 빠져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들의 신앙은 우리의 민낯도 보게 해준다.

부유하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가난하기 그지 없는 라오디게아의 모습.

순교자들의 연기는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서머나에서 우상 숭배 하는 문화에 타협하지 않고 화형당하는 폴리갑, 아도나이 왕자만이 구원자라고 고집하며 순교한 안디바. 이들은 조금도 비굴하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 당당하고 의연하게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며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찬양한다. 오늘날 우리도 과연 순교의 순간에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있을지 되돌아보게 한다.

마지막 때라고 일컬어지는 이 시기에 ‘코람데오’ 신앙으로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준다. 에클레시아가 그토록 아도나이 왕자의 기쁜 소식을 전한 것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120분보다 조금 길어진 공연 시간임에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배우는 장마다 일인다역을 하며 열연을 했다. ‘불타는 금요일’에 기독교 공연 관람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예배 이상의 은혜였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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