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인공임신중절(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이 머지않았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국내 낙태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해 낙태죄 폐지를 두고 찬반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공개한 ‘2018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낙태죄 폐지 여부를 물은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75.4%가 현재 낙태를 금지하는 형법(낙태 시행 의사와 여성 처벌)을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낙태 이유에 대해서는 ‘학업, 직장 등 사회 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3.4%),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32.9%)가 전체 사유 중 66.3%로 가장 높게 나왔다.

정부가 8년 만에 내놓은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계는 “임신을 중지하고자 하는 여성의 판단을 그 누구도 심판하거나 처벌할 수 없고 낙태죄 폐지는 시대의 요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도 동조하고 있다. 낙태 건수가 연간 약 5만건으로 대폭 감소했다는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현장과 동떨어진 수치”라고 지적했다.

과거 산부인과의사회는 국내의 하루 평균 낙태 수술 건수를 약 3000건으로 추정했다. 연간으로 따지면 100만건을 넘긴다. 100만건이 안 되더라도 적어도 50만건은 넘길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음지에서 이뤄지는 데다 공개를 꺼리는 낙태 시술의 특성상 이번 조사에서도 제대로 된 결과가 도출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사회는 아울러 낙태 여성과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는’ 형법과 무뇌아 낙태도 할 수 없는 모자보건법(현재는 본인·배우자의 유전학적 정신장애, 전염성 질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강간 등에 의한 임신, 산모 건강이 위험해지는 경우 등 5가지 사유 낙태만 허용)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계 등 종교계와 생명윤리·연구학계는 무조건적 낙태죄 폐지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톨릭계는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은 산모가 원할 때 언제든지 낙태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해주자는 말로 결국 낙태 자유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성과학연구협회도 15일 성명서를 내고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 대해 매우 유감을 표명하며 이것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여성단체들이 낙태죄 폐지하라고 주장하는 근본 이유는 현행 모자보건법과 형법 269조와 270조에 낙태를 한 여성과 수술을 집도한 의사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는 아무런 처벌이 없다”면서 “이런 이유로 지속적으로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낙태죄 폐지가 답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실질적인 법적, 제도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에 따르면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많은 나라에서 여자가 임신하면 국가가 모든 책임을 지고 양육비를 충분하게 지급하고 국가가 남성한테 소송을 걸어서 그 돈을 받아내는 ‘미혼부 책임법’을 실행하고 있다.

협회는 “2018년 5월 24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허용에 대한 공개변론 원문을 보면 성관계가 임신을 유발하는 필연적 행위인 줄 알면서 자기 의지로 성관계를 하고 그 결과인 임신을 낙태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법이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면서 “임신에 대한 책임을 묻는 현명한 판결”이라고 했다.

또 “실태조사에서 처럼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어서, 또는 경제형편상 양육이 힘들다는 이유로 낙태죄 폐지를 찬성한다고 대답한 것을 보며 성관계가 마치 재밌는 놀이라는 왜곡된 가치관이 형성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성은 재밌는 놀이처럼 함부로 쓰다가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면서 “성은 생명을 만드는 행위다. 성은 즐기고 싶은데 책임은 지기 싫어하는 이런 잘못된 가치관이 소중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법을 제정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만약 ‘미혼부 책임법’이 시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낙태 합법화가 된다면 마음놓고 성을 즐기게 될 것이고, 생명에 대한 책임이 빠진 성은 문란한 성생활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들에게 돌아올 것이기에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아울러 “무엇보다 낙태가 합법화되면 외국의 사례처럼 낙태를 상업화시키려는 제약회사, 의료산업의 엄청난 홍보작전으로 낙태 광고가 수면위로 드러나게 될 것이고 태아장기판매 등 비윤리적이고 비도적인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낙태는 한 생명을 살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죄책감이라는 양심마저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리기에 인명 경시풍조가 더욱 강해질 것이고 그 결과 사회는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황폐화될 것”이라고 했다.

낙태죄 폐지가 단순히 그 법을 하나 폐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닥칠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여성단체 등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측 주장과 설문결과만 갖고 해결할 일이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협회는 “낙태죄 폐지가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 유럽이나 OECD 선진국처럼 양육비 책임법을 만들어 남성들에게도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하는 등 심도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임신 예방이 피임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릴 때부터 성은 생명과 책임이 있다는 올바른 성가치관과 성윤리관을 확립시켜 책임있는 성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의 올바른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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