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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욱의 에레츠의 묵상일기] 폴리갑의 편지와 순교록


무신론자! 폴리갑이 화형을 당해야 하는 죄목입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서머나교회를 섬겨왔던 폴리갑이 로마에서 화형을 당해야 했던 이유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무신론자’, 즉 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유와 너무나 다른 폴리갑의 순교 이유입니다. 정말 폴리갑은 신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해야 했을까요? 네 맞습니다. 폴리갑이 화형을 당해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신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폴리갑은 신,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였을까요? 아니라면 폴리갑이 믿었던 하나님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은 폴리갑의 순교를 통해 초대 기독교인들의 신앙관을 살펴보겠습니다!

폴리갑의 완전한 생애를 기록한 책이나 이야기는 없습니다. 대체로 단편적인 이야기들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사도 요한의 제자였는지는 약간의 엇갈린 주장들이 있지만 대체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폴리갑의 이름과 생애가 기록된 책들은 다음 몇 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타나시우스의 <편지>, 이레니우스의 <이단 논박>, 터툴리안의 <이단자 규정론>,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서들은 폴리갑의 노년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지 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래는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근거를 알 수 없는 폴리갑의 짤막한 생애입니다.

“폴리갑(AD.80-165)은 본래 안디옥 출신이었다. 구전에 의하면, 서머나의 어느 과부가 안디옥에서 폴리갑을 노예로 샀는데, 그가 너무 똑똑해서 그녀가 죽게 될 즈음에 폴리갑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폴리갑은 젊었을 때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다. 성격은 직설적이고, 정열적이었다. 20대의 청년 나이에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 되었고, 86세에(아우렐리우스 황제) 순교했다. 이그나티우스가 순교한 후 약 반세기 후에 폴리갑이 순교했다. 폴리갑은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후대에 가르치고, 가르친 대로 삶을 증거했던 인물이다.”

그가 안디옥 출신이었고, 노예였던 그를 어떤 과부가 사들였다는 이야기 등은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받았고, 사도들에 의해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 된 것은 기록과 일치합니다. 이레니우스는 ‘폴리갑은 사도들의 제자이며, 주님을 직접 본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고 진술합니다. 영지주의에 빠진 로마의 장로 플로니누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는 복된 폴리갑이 앉았던 자리와 가르쳤던 자리, 드나들던 장소, 그의 모든 행동과 외모, 사람들 앞에서 행한 연설을 당신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가 요한과 주님을 본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교제하고 그들의 말을 어떻게 인용하였으며, 주님의 기적과 가르침에 관하여 그들에게서 무엇을 들었는지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폴리갑은 ‘로고스’(말씀)의 삶을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모든 것을 전해 들었듯이, 성서와 일치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터툴리안은 사도요한이 자신의 후계자로 폴리갑을 서머나 감독으로 세웠다고 이야기합니다. 폴리갑은 정력적이고 활동적이어서 소아시아에서 주도적 영적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매우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155년경 부활절 날짜와 금식의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소아시아 대표로 로마의 감독인 아나체토를 만났습니다. 당시 부활절은 사도요한의 전통을 따라 유대교 니산월 14일에 지키는 ‘14일 파’와 그다음 주 일요일에 지키는 로마교회 전통이 있었습니다. 둘은 아무런 합의점을 도출해 내지 못하고, 서로의 전통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이것은 14일을 지키는 동방교회와 주일을 지키는 로마교회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었습니다. 부활절 분쟁은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춘분이 지난 만월(滿月) 후 첫 일요일로 정해졌습니다. 폴리갑의 성격은 강직하고 곧은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그의 서신과 순교록에서 발견되는 성격은 철저하게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보수적 성향이 가득합니다. 그의 순교는 아직도 논란이 많으나 여러 정황 등을 살펴 추론해 보면 155년부터 160년 사이입니다. 이제 그의 ‘편지’와 그의 마지막 생애와 순교를 기록한 ‘순교록’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폴리갑의 편지

바울의 <목회서신>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를 말합니다.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로, 모두 세 편의 편지들입니다. 폴리갑의 편지는 바울의 목회서신과 너무 닮아있어 폴리갑의 저작이 아닌가 의심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니라면 바울에게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폴리갑의 편지는 바울의 목회서신과 닮아 있습니다. 먼저 이 편지는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고, 일부가 라틴어 사본으로 전해 오는 불안전한 편지입니다. 폴리갑의 편지는 고난 가운데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두 번에 걸쳐 보내졌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편지는 합본으로 되어 있으며, 그 순서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학자들은 대개 첫 번째 편지는 13-14장이고, 나머지 1-12장까지가 두 번째 편지인 것으로 추측합니다. 폴리갑 사후에 누군가가 편지를 보존하기 위해 흩어진 두 개의 편지를 하나로 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편지는 처음에 헬라어로 적었으나, 후대에 라틴어로 번역해 읽힌 것으로 보입니다. 헬라어로 된 편지는 이레니우스와 유세비우스의 문서에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편지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폴리갑과 그와 함께 있는 장로들은 빌립보에 나그네로 사는 하나님의 교회에게.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여러분에게 자비와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 서신을 읽을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투, 단어, 인사 방식까지 닮아 있습니다. 폴리갑의 편지를 연구한 학자들은 폴리갑에게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사도들의 편지, 특히 사도 바울의 편지들과 너무나 닮아있고, 바울의 편지에 능숙한 어떤 사람이 짜깁기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허리에 띠를 매고 경외하며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쓸데없는 빈말과 많은 사람의 그릇된 가르침을 물리치십시오.”(2:1)

목회서신에 익숙한 신자라면 위의 편지가 바울의 것인지 폴리갑의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눈치챌 것입니다. 또한 가장 초기 교부인 로마의 클레멘트의 편지와도 닮은 곳이 많습니다. 아마도 사도들의 사후, 즉 속사도로 불리는 초기 교부들은 새로운 신학이나 교리를 체계화 시키거나 심화 시키는 것보다 계승하고 보존한 것으로 보입니다. 폴리갑의 편지가 가지는 몇 가지 특징을 살펴봅니다.

1)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폴리갑의 신앙은 현대의 사도신경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대제사장이며, 선생이며, 대속자로 오신 구세주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에 의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절 논쟁으로 잠시 로마에 들렀을 때 예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의 향하여 ‘사탄의 맏아들’(7:1)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할 만큼 사도들의 신앙에 충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오신 것을 고백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정년 반그리스도입니다.”(7: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12:2)

2) 그리스도께서 먼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순교를 열망했던 터툴리안 정도는 아니었지만 폴리갑 역시 순교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난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셨기 때문에 순교는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신앙의 일부로 보았습니다. 폴리갑은 신앙생활을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대로 따라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고난과 순교는 제자도의 일부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참여한 그들에게는 주님 곁에 그들의 자리가 있다는 것도 확신해야 합니다.”(9:2)

“믿음 안에서 견고하고 흔들림 없이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다정하게 지내며, 진리 안에 하나가 되십시오. 주님의 온유함으로 서로 도울 준비를 하고, 어떤 사람도 경멸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10:1)

3) 교회는 나그네입니다.

편지의 첫인사는 ‘나그네로 사는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폴리갑은 교회가 완전하다거나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는 ‘낯선 나그네’로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있지만 이 땅에 속하지 않습니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동안 고난과 역경은 당연한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가신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복되다, 가난한 사람들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2:2)

나그네 된 교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탐욕과 죄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했던 조언처럼 폴리갑은 ‘돈에 대한 욕심은 모든 악의 시작’(4:1)으로 정죄합니다. 또한 ‘온갖 험담과 중상, 거짓 증언, 돈에 대한 욕심, 그리고 모든 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 땅의 성도는 천상에서 있을 신랑이신 예수를 준비하는 신부이기에 순결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성도는 마땅히 ‘주님의 진리에 따라 살면서, 험담하지 않고, 일구이언하지 않으며,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자제하며, 자비를 베풀고 (남을) 돌보아야’(5:2) 합니다.

“탐욕을 멀리하고 순수하고 진실하게 사십시오. .. 탐욕을 멀리하지 않는 자는 우상숭배로 더럽혀질 것이고, 주님의 심판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처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1:1-2)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바울 서신과 다른 점을 발견하기 힘들며, 그대로 계승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폴리갑의 신앙은 바울의 신앙 고백 그대로이며, 사도들이 가르친 거룩한 삶과 부활의 소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 폴리갑의 순교록

<폴리갑의 순교록>은 폴리갑이 쓴 글이 아닌 후대의 사람들이 폴리갑의 순교를 기억하기 위하여 쓴 편지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프리기아 지방의 필로멜리움 교회의 요청에 의해 쓴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 편지가 사실을 기록한 보고서라기보다는 순교자를 본받고, 신앙을 증진시키기 위한 일종의 회람용 편집이라고 합니다. 모두 22장으로 되어있지만 분량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모두 22장으로 되어있고, 모스크바 필사본에 맺은 말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은 순교자들로서의 본보기인 폴리갑과 순교자들에 대한 칭송으로 1-4장, 19-20장입니다. 본론에 해당하는 폴리갑의 순교 기록은 5-18장까지입니다.

초반부는 순교를 본받아야 하는 이유들을 열거합니다. 순교는 ‘박해를 끝’내는 것입니다. 더 이상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어난 모든 순교는 복되고 고결합니다.’(2:1)

순교는 죽음으로 믿음을 지켰다는 것을 의미하며, 가장 복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사고나 병듦, 자연사는 평범한 죽음이지만 순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해가 시작되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순교를 장려했고, 가장 거룩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놀랍게 여기에 순교를 하는 이유를 밝힙니다. 그것은 바로 ‘무신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시민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무신론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무신론자들을 없애라! 폴리갑을 찾아라.”(3:2)

그리스도인들이 무신론자로 취급받은 이유는 보이는 신을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는 보이는 신, 즉 조각상과 황제숭배로 인해 보이는 신을 섬기는 것을 종교행위로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보이지 않는 신을 섬겼다는 이유로 ‘무신론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무신론자이며 젊은이들을 궤변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는 고소 이유와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폴리갑은 순교나 죽음을 권하거나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복음이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로 순교가 오면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제숭배를 하지 않던 폴리갑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폴리갑을 보호하기 위해 피신을 권했지만 그가 피한 곳은 도시에서 멀지 않은 농가였습니다. 그는 ‘습관대로 모든 사람과 전 세계 교회를 위해 밤낮 기도’(5:1)를 드렸습니다. 농가로 수색하던 자들이 들이닥쳤습니다. 폴리갑은 더 이상 숨어있지 않고 그들을 따라나섰습니다. 그가 있던 작은방에서 군사들을 맞이했는데, 그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고 말합니다. 군사들은 폴리갑의 연로함과 침착함에 매우 놀랐습니다. 이런 노인을 체포하러 왔다는 것에 당혹해 했습니다. 폴리갑은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잠깐 기도할 시간을 얻어 모든 사람들과 세상의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집정관은 그를 경기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폴리갑을 데리고 가기 전 집정관은 ‘황제는 주님이다’라고 말하고 풀려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폴리갑은 거부합니다. 폴리갑이 경기장에 들어설 때 하늘로부터 ‘폴리갑아 힘을 내고 용감하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9:1) 그곳에 있던 집정관은 폴리갑임을 확인하고 다시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는 황제의 신에게 맹세하고, 그리스도를 모독하면 풀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폴리갑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든여섯 해 동안 나는 그분을 섬겼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어떤 그릇된 행위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구원하신 왕은 어떻게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9:3)

집정관은 다시 황제의 수호신에게 맹세하라고 하지만 폴리갑은 끝까지 맹세를 거부합니다. 또한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리스도인들은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집정관은 짐승들과 함께 불로 태우겠다고 협박합니다. 폴리갑은 그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다가올 심판과 영원한 벌에 관한 불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응수합니다. 그 때 그곳에 와있던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기원제물을 바치지 말고 (황제의 수호신을) 숭상하지 말라고 가르친 아시아의 스승이자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이며 우리 신들에 대한 파괴자이다.”

이곳 말고도 몇 곳에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고 모함하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분위기와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AD 71년 디토 장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완전히 멸망시킨 이후임에도 유대인들은 전국에 디아스포라가 되어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폴리갑은 화형 당합니다. 그러나 불은 폴리갑을 피하여 달아났고 태우지 못했습니다. 화형이 실패하자 결국 칼로 찌르게 하여 죽게 됩니다. 그러자 “(비둘기 한 마리와)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와 불을 꺼버렸습니다.” 백부장은 유대인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폴리갑의 시신을 ‘그들의 관습에 따라 화장’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화장이 최근에 편리에 의해 만들어진 이방인의 습관이 아니라, 초대교회에서도 흔하게 일어났던 기독교인의 장례방식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폴리갑의 순교록>의 기록 목적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일어난 그의 순교를 본받기를 열망’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19:1) 순교록에 나온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기적과 신비로운 체험들은 폴리갑의 순교를 좀 더 극적이고 고귀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스크바 필사본의 맺은 말에는 몇 가지가 첨부됩니다. 이레니우스는 폴리갑의 제자이며, 많은 작품들을 적었으며, 폴리갑을 자신의 작품 속에 썼다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가필(加筆)들은 <폴리갑의 순교록>이 허황되거나 꾸며진 것이 아님을 보증하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모스크바 필사본에는 부활절 논쟁으로 로마에 방문했을 당시로 보이는 말시온과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시온이 폴리갑을 만났습니다.

“폴리갑이여 우리를 아십니까?”

“예, 나는 당신을 압니다. 나는 당신이 사탄의 맏아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3. 나가면서

이상으로 폴리갑의 편지들과 순교록을 살펴보았습니다. 폴리갑의 문헌들은 한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훈을 그대로 계승하고 전승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폴리갑의 편지들은 사도바울의 서신서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편지의 구성이나 사용되는 단어나 표현 방법 등도 비슷합니다. 그리스도와 사도들, 그리고 폴리갑은 서로 다른 관점이나 신앙관을 가진 존재들이 아니라, 동일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같은 신앙, 같은 삶을 살았던 한 하나님을 섬기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순교자들을 ‘복음에 따른’ 것이라는 수식어를 종종 발견합니다. 폴리갑을 ‘복음을 따라’ 순교하고 정통 신앙을 지킨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몬타누스와 말시온 등의 이단들을 배격하고, 교회의 전통성을 세우기 위한 방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은 복음에 더하거나(몬타누스) 빼지(말시온과 영지주의)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폴리갑의 편지와 순교록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은 신앙과 삶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그리스도인이라면 신앙 고백에 걸맞은 거룩한 삶이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초대교회의 거룩함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경건한 모습’ 아니라 투박하고 실천적인 이웃사랑이었습니다. 폴리갑은 자신을 붙잡기 위해 찾아온 군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축복의 기도를 해줍니다. 편지에서는 거룩한 사슬(순회전도자)에 묶인 이들을 대접하고, 욕심과 악을 버리고, 거짓말과 험담 등을 하지 말도록 권고합니다. 분노와 차별, 부당한 판단에 대해서는 주의를 줍니다. 폴리갑의 순교 이유는 그가 보이는 신을 섬기지 않았다는 ‘무신론자’였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당시의 사람들이 보기에 삶은 있지만 신을 섬기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보이는 것들에 연연하지 않았고, 한 가족처럼 자신들의 소유와 고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형이상학적 신학과 성경의 지식을 머리에 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삶이며, 개인이 아닌 믿음의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믿음입니다.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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