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의원이 지난 18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 연단에 올라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김진태. 재선 의원인 그는 요즘 가장 논쟁적이고 문제적인 정치인이다. 김 의원보다 욕을 많이 먹는 정치인도 없고, 그보다 극성 지지층을 보유한 정치인도 드물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부정, ‘5·18 폄훼’ 논란 유발 등 다수 여론과 동떨어진 처신을 고집하면서 여권, 진보진영은 물론 지역구인 춘천에서도 퇴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김 의원은 아랑곳없이 ‘마이웨이’를 외친다.

강원도 춘천 출생의 ‘조용한’ 수재였던 그가 공안검사 시절을 거쳐 국회에 입성하고, ‘태극기 세력’의 대변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봤다.

국회 데뷔 무대서 “종북 척결”
2012년 총선에서 당선돼 의원 배지를 단 김 의원은 정치 신인 때부터 ‘보수 본색’을 드러냈다. 2013년 4월 처음으로 선 대정부 질문 자리에서 “본 의원은 지금 이 자리에도 대한민국의 적(敵)이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라는 도발적 발언으로 신고식을 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고함을 지르고 야유를 보냈지만, 그는 “이제 종북세력과 결별하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은 스스로 이 땅을 떠나라”며 연설을 마쳤다.

이후 김 의원은 ‘종북 저격수’로 불리며 한국당의 돌격대이자 청와대 호위무사로 나섰다. 그는 2014년 12월 출간한 에세이집 ‘진태의 난중일기’에서 “종북 저격수보다는 ‘보수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을 좋아한다. 나는 숨어서 쏘지 않고 드러내 놓고 쏜다”고 적었다.

김 의원은 대놓고 옛 통합진보당을 적대시했다. 2013년 9월 이석기 통진당 의원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전 연설 때는 “저는 이석기 피의자를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의 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는 통진당 해산 추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자신이 뱉은 발언 때문에 수차례 구설에 휘말리고, 국회 윤리위원회의 단골 손님이 됐지만, 2015년 4월의 ‘황희 정승 폄하’ 논란 당시 후손들에게 사과한 것을 빼고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 민주당에는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 “인간이야, 인간? 나는 사람 취급 안 한 지 오래됐다”(박영선 의원) 등의 격한 비난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김 의원은 최근 한국당 당권 레이스를 벌이면서 “민주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나”라고 내세우고 있다.

'태극기 망토'를 입고 태극기 집회에서 발언하는 김진태 의원. 출처=김 의원 페이스북

그에게 정계 문 열어준 朴
김 의원은 2012년 3월 새누리당의 총선 후보로 공천을 받았다.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장을 줬다. 박 위원장은 선거운동 기간 춘천을 두 번 방문해 김 의원 지원 유세를 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책에서 “몇만 명 관중 앞에서 내 이름을 또박또박 그것도 여러 번 불러줬다. 그래서 난 박근혜 대통령을 안 좋아할 수가 없다”고 썼다. 2013년 11월 박 전 대통령을 수행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당시 유학생·교민들의 박 전 대통령 비판 시위 모습을 보고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정계 입문 때부터 ‘강성 보수와 친박의 DNA’를 장착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지난 19일 당대표 후보 방송토론회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인정할 수 없다. 국정농단을 인정하면 당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저는 탄핵 정국 이후에 친박 프레임이 씌워졌다”며 “친박이라던 사람들은 탄핵을 거치면서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빠져나가고 저만 제자리에 앉아 있더라”고 말했다.

검사 시절에도 보수 본색
그는 춘천 성수고에서 전교 1, 2위를 다투던 수재였다. 서울대 법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원주지청장을 끝으로 17년 검사 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경력의 상당 부분을 공안검사로 보냈다.

김 의원이 변호사로 있던 2011년 11월 낸 책 ‘법대로 살까? 멋대로 살까?’에는 그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검사와 부부장으로 근무했던 1996년과 2002년 두 차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한 것으로 나온다. 2003년 대선 당선자 신분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할 때는 기소를 주장하는 자신과 법 위반이 아니라는 부장검사가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김 의원은 2007년 과거사 정리를 위한 진실화해위원회에 파견 근무를 하기도 했다. 그는 이 인사에 대해 “허탈하고 분통이 터졌다”고 본인 책에서 회고했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에 대한 전원위원회 회의 때 김 의원은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한 것이 맞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다가 외부 위원들과 충돌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진실화해위에 근무하면서 기록을 뒤져봤는데, 조봉암은 간첩이 맞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승만정부 시절 간첩죄로 사형된 진보당 당수 조봉암은 2011년 1월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김 의원은 그 뒤로도 간첩이란 주장을 고수한 것이다.

대전현충원 부친의 묘소를 참배하는 김진태 의원. 출처=김 의원 페이스북

김 의원의 부친(2013년 작고)은 6·25 전쟁 때 북한에 침투하는 특수부대에서 근무했고, 지리산 빨치산 토벌에 참여해 화랑무공훈장 2개를 받은 육군 장교였다. 김 의원은 당대표 선거운동 기간 첫날인 지난 14일 부친이 안장된 국립대전현충원을 참배했다. 김 의원의 친할머니는 고(故) 육영수 여사와 본관이 같은 옥천 육씨다. 이런 환경이 그의 뿌리 깊은 보수·반공 의식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의외로 샤이한 김진태?
‘선동가’ 이미지가 강한 김 의원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에 대해 “사석에서 만나면 샤이한 면도 있고, 나름 합리적”이란 평가가 많다. 검사 시절 함께 근무했던 한 변호사는 “개인 김진태는 의외로 점잖고, 말도 조곤조곤하게 하는데, 집회 연설을 할 때면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있어 놀라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 한국당 의원은 “잔머리를 쓰지 않고,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잘 바꾸지 않는다”며 “그러다 보니 후폭풍에도 종종 휘말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형환 전 의원은 2013년 방송에 나와 “김 의원은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고 굉장히 조용한 스타일”이라며 “저한테 ‘당에서 자꾸 나보고 나서라고 하는데 고민이다, 내가 총대를 멘 경우가 많다’는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 본인은 자신에 대해 ‘승부욕의 화신’ ‘내기의 달인’ ‘괴짜’ 등으로 본인 책에서 표현했다.

한편 다른 중진 의원은 “김진태는 자기 과시형인데다 기회주의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치인이다 보니 주목받고 싶고, 발언 수위도 계속 액셀레이터를 밟지 않았나 싶다”며 “지금 지역구에서 승산이 없으니 태극기 부대에 손을 내민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2013년 새누리당 춘천시당협 송년의 밤에서 마술쇼를 선보이는 김진태 의원. 출처=김 의원 페이스북

‘정치인 김진태’의 생명력은?
여러 정치 전문가들은 ‘태극기 부대의 기수’로 걸어온 정치 행보가 결국 김 의원에게도 한계이자 독이 될 것으로 봤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공안검사 경력 등에서 만들어진 반북 정서, 민주화 세력에 대한 거부감이 결합되면 극우주의자로 갈 수 있는데, 김 의원이 딱 그런 경우”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김 의원의 정치적 기반은 확실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지형에서는 2~3% 정도 될 것으로 본다”며 “시간이 갈수록 지지층을 재생산할 가능성도 줄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확대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좋게 말하면 적극적 당원, 나쁘게 말하면 극성 당원들로 인해 김 의원의 정치가 유지되고 있다”며 “전당대회 이후에도 김 의원이 힘을 쓸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5·18 망언 등으로 전반적인 여론이 우경화는 막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며 “그렇게 되면 김 의원 정치 미래도 곧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김 의원은 “지금 한국은 이념의 전쟁터”라며 “계산하거나 눈치 보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이념을 갖고 국민을 설득해 가겠다”고 말했다.

지호일 이형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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