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여사가 4일 서울 서대문구 좋은영화관 ‘필름포럼’에서 영화 ‘칠곡가시나들’을 관람한 뒤 주인공 할머니의 손주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김 여사가 칠곡 할머니들 출연진에게 보낸 편지. 뉴시스/인디플러그·더피플 제공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주인공 ‘일곱 할머니’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냈다. 영화 제작사 ‘단유필름’은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편지 원본을 공개했다.

김 여사는 “할머니들의 첫 극장 관람 영화는 자신들이 주인공인 ‘칠곡 가시나들’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너무 늦은 처음이지만 이제라도 스스로 찾아내신 ‘그 모든 처음’을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선물로 보낸 ‘책주머니’에 대해서는 “공책과 연필을 넣어 가볍게 드시라고 너무 크지 않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경북 칠곡에 사는 할머니 7명의 삶을 담았다. 80대에 들어서야 한글 공부를 시작하고, 처음 편지를 쓰고, 어릴 적 꿈을 따라 노래자랑에도 나가는, 이들의 '첫 순간'을 그려냈다. 제작사에 따르면 할머니들은 김 여사의 편지 중 자신들의 이름이 나열된 대목에서 눈물을 흘렸다.

김 여사는 지난 4일 예술영화관 ‘필름포럼’에서 영화에 출연한 할머니들의 자녀, 손주 등과 칠곡 가시나들을 관람했다. 김 여사는 이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며 “여자인 저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 여사의 '책주머니' 선물을 받은 칠곡 가시나들 출연진. 인디플러그·더피플 제공

김 여사가 보낸 편지. 인디플러그·더피플 제공

김정숙 여사 편지 전문

‘칠곡 가시나들’께

‘칠곡 가시나들께’ 라고, 애정과 존경을 담아 불러봅니다. 며칠 전에 따님이랑 손주 손녀 몇 분과 ‘칠곡 가시나들’을 보았습니다. 1930년대 태어난 ‘가시나들’에게 배움의 기회는 쉽지 않았겠지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박해와 가난 속에서 어머니의 자리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80줄에 이르러 글자를 배울 용기를 내고 ‘도라서 이자뿌고 눈뜨만 이자뿌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칠곡 가시나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처음으로 이름 석 자를 쓰고, 처음 편지를 쓰고, 처음 우체국에 가고, 아무도 ‘꿈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던 세월을 건너 가수라는 꿈을 찾아 노래자랑에도 나가고….

‘떨리고 설레는 첫 순간들’을 맞이하는 칠곡 가시나들의 얼굴을 보면서 덩달아 마음이 환했습니다.

칠곡 가시나들에게 첫 극장관람 영화는 자신들이 주인공인 ‘칠곡 가시나들’ 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늦은 처음’, 하지만 이제라도 스스로 찾아내신 ‘그 모든 처음’을 축하드립니다.

이제 ‘가시나들’이라는 말은 나이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패기, 나이에 꺾이지 않고 설렘과 기쁨의 청춘을 살아가는 지혜, 유쾌하고 호탕한 유머와 사려 깊은 통찰…. 그런 말들로 다가옵니다. 과거와 추억 속에 살지 않고, 날마다 두근두근한 기대로 오늘을 사는 칠곡 가시나들의 ‘내 나이 열일곱’이라는 선언에 박수를 보냅니다. ‘청춘은 인생의 어느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이라는 시도 있으니까요.

“나는 박금분. 할매면서 학생이다”
“나는 곽두조”, “나는 강금연”, “나는 안윤선”, “나는 박월선”, “나는 김두선”, “나는 이원순”, “나는 박복형” 당당하게 말하는 그 이름들 앞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사는 기, 배우는 기 와 이리 재밌노!” 배우는 게 마냥 즐거운 칠곡 가시나들께 조그만 책주머니를 만들어 보냅니다. 칠곡 가시나들의 그림과 함께 자랑스러운 이름들도 새겨 넣었습니다. 공책이랑 연필이랑 넣어서 가볍게 드세요. 주머니가 크면 이것저것 무겁게 넣으실 것 같아 너무 크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공부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너무 오래 구부리고 계시지는 마세요. ‘아침 점심 저녁 맛있게 먹기, 그리고 밤에 잘 자고 잘 일어나기.’ 주석희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 꼭꼭 잘하셔야 합니다.

‘글자를 아니까 사는 기 재미지다’ 라고 하셨지요. ‘칠곡 가시나들’에게는 글자를 알고 나니 사방에서 시가 반짝이는 인생의 봄이 왔나 봅니다. 더 많은 분들이 늦게나마 ‘봄’을 만나도록 해야겠습니다. ‘칠곡 가시나들’의 즐거운 감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번져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가마이 보니까 시가 참 많다/ 여기도 시 저기도 시/ 시가 천지삐까리다‐시인 박금분> 저도 오늘부터 가마이 ‘천지삐까리’인 시를 만나보겠습니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유쾌한 칠곡 가시나’들의 자리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2019년 3월 6일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
김정숙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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