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전두환(88)씨가 11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법에 출석했다. 그의 옆엔 부인 이순자(80)씨가 있었다. 전씨가 취재진을 향해 신경질을 부릴 때도 이씨는 남편의 뒤에서 취재진을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법정에서조차 부부가 나란히 앉았다. 이는 재판부가 고령에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신뢰관계인으로 남편의 곁을 지킨 이씨는 중간중간 전씨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재판부를 향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재판부가 동석 조건으로 ‘발언 금지’의 단서를 달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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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부인 이씨와 이날 오전 8시3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출발해 재판이 열리는 광주지법으로 향했다. 전씨 부부가 탄 차량은 4시간가량 달려 낮 12시30분쯤 광주에 도착했다. 수행원들과 함께 법원 입구에 들어선 전씨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을 내렸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왜, 이래”라며 신경질을 부렸다. 이때도 전씨 옆엔 이씨가 있었다. 이씨는 남편을 향해 마이크를 내민 취재진을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본 뒤 남편의 손을 잡고 법정으로 향했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전씨는 이날 오후 2시30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 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 참석했다. 이씨는 신뢰관계인 자격으로 남편과 나란히 앉았다. 전씨는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고지하는 재판장의 말에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며 헤드셋을 쓰고 들었다. 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헤드셋을 쓴 채 생년월일과 주거지 주소 등을 확인했다.

검찰은 공포 사실을 통해 국가기록원 자료와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관련 수사 및 공판 기록, 참고인 진술 등을 조사해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며 전씨가 회고록에 허위 내용을 적시해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장 부장판사가 전씨에게 검찰의 공소 사실을 인정하냐고 묻자 전씨 대신 정주교 변호사가 일어나 “광주지법에는 재판 관할권이 없다”며 끼어들었다. 이에 전씨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 내내 전씨는 공소 사실을 인정하는지 여부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정 변호사가 헬기 사격 사건을 부인했다. 정 변호사는 “조비오 신부가 주장한 5월 21일 오후 2시쯤 광주 불로교 상공에서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한 증명이 충분하지 않다”며 “허위 사실로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정 변호사는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의 기억과 국가 기관 기록,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라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또 “5‧18 헬기 사격을 인정한 2018 국방부 특조위의 결정은 조사위원으로 위촉된 분들의 다수결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실체적 진실은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씨는 재판 내내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 광주시민들을 한숨 짓게 했다. 정 변호사의 변론이 시작된 지 10분 후쯤 전씨의 고개가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졌다. 한 방청객은 “자고 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75분간 진행된 이날 재판에서 전씨는 4차례가량 꾸벅꾸벅 졸았다.

이날 오후 3시35분 재판이 끝날 무렵 이씨는 재판부에 편지를 전달했다. 편지엔 “남편이 회고록을 대통령 퇴임 뒤부터 준비했으며 5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 변호사도 형사소송법 319조를 근거로 이 사건의 범죄지 관할을 광주라고 볼 수 없다며 재판 관할 이전을 신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재판을 마친 전씨는 이씨와 함께 손을 잡고 법정을 나섰다. 전씨는 귀가 중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들러 30분간 간단한 진료를 받고 저녁 8시50분쯤 자택으로 돌아왔다. 다음 재판은 오는 4월 8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한편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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