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알선과 성관계 영상 불법촬영, 경찰유착 등 클럽 ‘버닝썬’ 사건 이후 줄줄이 터지는 사건들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승리·정준영 단톡방’ 사건이 고 장자연씨 피해 사건을 덮기 위한 ‘물타기’가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거대한 권력형 사건을 덮기 위해 덜 중요하지만 자극적인 사건에 일부러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계는 “정준영 사건은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니다”라며 “두 사건이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도구화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으로, 공통점을 연결시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뽕, 성폭행·성관계 영상 불법촬영 및 유포, 경찰 유착

최근 그룹 ‘빅뱅’ 승리와 가수 정준영 등이 속한 단체채팅방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승리는 성매매 알선 혐의를, 정준영의 성관계 영상 불법촬영 및 유포 혐의를 받는다. 승리의 사업파트너로 알려진 유인석 유리홀딩스 대표는 경찰과 연예인을 이어줘 유착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실이 알려진 시점은 고 장자연씨의 지인인 배우 윤지오(본명 윤애영·32)씨가 장씨의 성상납 강요·자살 사건 재조사와 관련해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한 시기와 겹친다. 그러자 일각에선 정준영 사건이 고 장자연씨 사건을 덮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준영의 입국 당시 취재진이 몰린 사진과 윤씨가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클로즈업 사진을 비교하며 언론의 관심이 정준영 사건에 더 몰려있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에 “고 장자연 사건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식의 댓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같은 주장의 기저에는 거대 권력이 연루된 ‘고 장자연 사건’을 덮기 위해 비교적 가벼운 사안인 승리·정준영 단톡방과 성관계 불법촬영 및 유포 사건에 이목이 쏠리게 한다는 의심이 깔려 있다.


하지만 여성계에서는 정준영 사건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면서도 두 사건을 별개의 사건으로 보는 것은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겪는 고통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두 사건 모두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도구화한다는 점을 연결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이 사건이 저 사건을 덮는다는 식의 시각이 아니라 고 장자연씨 피해사건과 정준영의 불법촬영, 승리 버닝썬의 약물강간 사건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남성연대’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순히 이 사건들을 단편적이고 자극적으로만 보도하는 것은 문제”라면서도 “지난해 혜화역 시위와 더불어 수십년간 여성들이 낸 목소리는 여성이 어떻게 성적착취를 당하고 도구로서 이용되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승리·정준영 사건과 장자연씨 피해사건은 이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성적대상화하고 남성들 간 전리품으로 바쳐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본질이 맞닿아있다”며 “여성혐오 사회에서 승리·정준영이 남성 포획자라면, 장자연씨는 피해자로서 두 사건은 동전의 양면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건의 경중을 따져 정준영 카톡방 사건은 연예인 개인 가십거리로 보고, 고 장자연씨 피해사건은 거대 권력 카르텔이라 구분해서 보는 것은 문제”라며 “정준영씨 사건에서도 유명 남성 연예인들이 불법촬영 영상을 돌려보고 이를 고위급 경찰과의 유착관계 등으로 은폐되는 과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신실규명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여성단체는 정말 고 장자연씨 사건에 침묵했나?

한편 이와 관련해 여성단체들은 ‘왜 고 장자연씨 사건에서는 침묵하냐’는 근거 없는 주장에 시달리곤 했다. 지난해부터 한국 사회를 휩쓴 미투운동, 불법촬영과 관련해 여성단체들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면 “장자연 사건에는 조용히 있더니 왜 이런 사건에만 목소리 높이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실제 여성단체들은 하지만 꾸준히 고 장자연씨 사건이 불거진 뒤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 7일 ‘남성권력 카르텔에 맞서 싸운 장자연들의 10년, 그리고 110년’ 성명을 내고 그간 여성단체들의 움직임을 ‘2009년부터 2019년까지. 고 장자연님 사건 연대기’라는 부록으로 싣기도 했다.

연도
일자
내용
2009년
3월 18일
故장자연씨 죽음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다
3월 30일
경찰은 故장자연씨 죽음에 대한 늑장 수사와 뒷북 수사를 중단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라
4월 3일
강희락 경찰청장은 불법성매매알선 행위를 했다는 자신의 발언에 책임지고 즉각 사퇴하라!!
4월 8일
故 장자연씨 죽음에 대한 경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다
4월 20일
故 장자연씨 사건 관련 적반하장식 고소남발 조선일보 규탄 기자회견
4월 24일
故 장자연씨 죽음의 진실을 밝히지 못한 경기도경찰청은 책임을 져라!
5월~
故 장자연 씨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할말많은 UCC행동단>
5월 22일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서포터즈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 토론회 및 선언식
6월 25일
경찰은 고 장자연 씨 죽음에 대해 전면적인 재수사에 착수하여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7월 17일
6회 밤길되찾기 시위 _ 고 장자연씨 사건 규탄발언과 공연, 행진
8월 21일
故 장자연 씨 죽음의 진실을 은폐, 축소한 검찰을 규탄한다
11월 4일
고 장자연씨의 추모굿
2010년
4월 21일
성상납과 뇌물로 점철된 대한민국 검찰? 부끄럽다! 국민 앞에 사죄하라!
4월
22~23, 29일
‘검사의 뇌물.성매매 비리’ 진상조사 및 성매매 근절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국회여성가족위원장, 여성가족부 장관, 법무부 장관 긴급 면담
4월 27일
여성단체, 박기준 부산지검장 등 성매매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검사들에 대해
성매매 알선 등 행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
5월 26일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개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운영)
6월 9일
검찰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사건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 채 솜방망이 처벌을 권고
2011년
3월 8일
故 장자연씨 사건을 재수사 하여 진실을 밝혀라!
3월 16일
[故장자연씨 친필편지 관련 국과수의 발표에 대한 논평] 장자연은 살아있다
6월 8일
‘故 장자연 사건’ 시민법정 <분노의 목소리>
2017년
12월 27일
“진실은 더 이상 은폐될 수 없다. 억울한 죽음 너머의 진실을 밝히길 촉구한다”
-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하며
2018년
1월 27일
“검찰은 ‘장자연 리스트’를 철저히 재수사하여 진실을 밝혀라!” 검찰 재수사 촉구 기자회견
12월 7일
“검찰 과거사위원회 남은 활동 기간 25일, 여성인권사안에 대한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대해 의혹 없이 진실을 규명하라!”
<자료: 한국여성단체연합>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에 “고 장자연씨 사건이 나자마자 이른 봄부터 여성단체들이 조직한 성명서·집회·시위·토론회를 생생히 기억한다”며 “아무도 관심 없고 책임지지 않을 때 목 터져라 외치던 동지들을 기억한다. 그때부터 끈질기게 문제제기하고 이번 검찰 재조사 리스트에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한 활동가들을 기억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땐 입 다물거나 뒷짐 지고 있다가 기사화만 되면 ‘여성단체 뭐 하냐’ 비난하는 이들이 여전히 너무 많다”며 “반(反)페미니즘을 기치로 여성비하 표현을 입에 달고 살거나 ‘미투’를 음모론으로 조롱하거나, 포르노나 뒤지고 성매매를 문화라 생각하거나 남성의 성적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남자 분들이 장자연 사건에만 유독 관심을 가지는 이 기이한 현상은 뭘까”라고 꼬집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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