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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의 위로] 실패 위에 임한 위로


하나님의 위로는 실패 위에 임한다. 실패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실패하면 부끄럽다. 실패하면 주위에서 도움을 준 분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다. 한국은 성공지향적인 사회다. 성공에 집착하는 사회다. 요즈음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에 집착한다. 실패자에게 박수를 잘 보내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과 따지 못하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든다.

우리 민족은 성공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또한 시기하고 질투한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 일단 정상에 올라서면 끌어내린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 성공은 위험하다. 성공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실패 또한 성공만큼이나 위험하다. 왜냐하면 실패자를 무시하고, 실패자라고 낙인을 찍는 경향 때문이다.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것이 쉽지 않은 구조다. 그래서 실패의 충격은 아주 크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길은 실패한 사람에게 머문다.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 같으신 분은 없다.

나는 이민 목회자로 살면서 실패를 처절하게 경험했다. 이전에 섬기던 교회는 이민교회 가운데 대표적인 교회다. 그런 교회를 섬기다가 무참하게 실패하고 내려 왔다. 충격이 컸다. 이층에서 떨어지는 충격보다 십층에서 떨어지는 충격은 더 크다.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사람들이 올라가다가 죽기보다 내려오다 훨씬 많이 죽는다. 올라가는 것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내려오는 것도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다가 추락한다. 그래서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내려 올 때 조심해야 한다. 추락하면 다시 올라가지 못한다. 잘 내려와야 다시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민 목회는 어렵다. 이민자들을 섬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민자들은 난민과 같다. 이민자들의 삶은 처절하다. 언어 충격과 문화 충격이 엄청나다. 소외감은 말할 수가 없다.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몇 번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심한 상처를 받게 된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다. 실패의 경험은 이민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경험이다.

실패해 본 사람은 실패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를 안다. 실패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떠난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간다. 반면에 실패한 사람 곁을 떠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목회 실패를 경험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났다. 내가 무너져 내리길 원하는 사람들의 공격과 비난은 거셌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다. 나는 실패를 통해 내 책을 사랑하며 읽어준 독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나를 믿고 따라 와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목회자인 나의 실패는 큰 교회에서 나오게 되었다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데 있었다. 그것은 나를 반대하고, 미워하고, 무너뜨리려고 했던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품지 못한 것이었다. 나를 지지해 준 사람들보다 그분들을 더욱 사랑하지 못하고, 관용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를 비참하게 만든 분들의 숨은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을 품기보다 그들을 나의 목회 현장에서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들을 강단에서 은근히 공격했던 것이었다. 목회자는 목회자다워야 하는데 그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실패한 나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위로는 컸다.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인간의 본성을 배우게 하셨다. 실패를 통해 성장케 하셨다. 실패를 스승으로 삼게 하셨다. 실패는 경험을 낳는다. 실패를 경험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우느냐에 있다. 경험이 사람을 훌륭하게 만들지 않는다.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을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다. 경험을 성경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실패 경험을 통해 배우려면 실패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실패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실패를 통해 변질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좋은 쪽으로 변화되고 성숙해야 한다. 실패하기 전보다 실패한 후에 더욱 겸손해지고, 지혜로워져야 한다. 실패를 통해 배우지 못하면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하나님은 실패를 선용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통해 우리를 더욱 지혜롭고, 더욱 신중하고, 더욱 겸손하게 만드신다. 더욱 온유하게 만드신다. 실패 없이 늘 성공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인간은 성공이 지속되면 술에 취하듯이, 성공에 취하게 된다. 성공에 취하게 되면 눈이 어두워진다. 성공에 취하게 되면 마치 자신이 전능자가 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게 된다. 그 때 교만하게 된다. 방심하게 된다. 그때 어리석게 행동하게 된다. 성공에 도취되면 실패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을 통해서 보다 실패를 통해 더욱 큰일을 이루신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베드로는 실패를 경험했다. 바다 위를 걷다가 풍랑을 보고 두려워함으로 바다에 빠졌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을 막다가 책망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함으로 실패의 아픈 경험을 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에 통곡하며 울었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을 후회했지만 그 실패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실패한 베드로는 움츠렸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숨었다. 사명을 포기했다. 옛 생활로 돌아갔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셨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시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첫 번째 배려는, 예수님은 부활의 현장에 찾아온 여인들에게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막 16:7). 그 사실을 기록한 마가는 베드로의 제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베드로는 예수님이 다른 제자들과 특별히 자신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고 했다는 그 사실을 잊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배려는, 예수님이 고기 잡는 현장에 찾아오셔서 베드로를 만나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실패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지나간 기억을 끌어내셨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부르신 현장은 그가 고기를 잡았던 곳이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사건을 상기시키기 위해 그가 고기를 잡는 현장에 찾아가셨다.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날 용기가 없는 것을 아셨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이다.

세 번째 배려는, 숯불 위에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신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때 숯불 앞에서 부인했다. 예수님은 숯불과 세 번이란 숫자를 통해 그의 상처를 조용히 드러내심으로 치유하셨다. 또한 실패한 베드로를 식탁에 초청하신 것도 베드로를 치유하시는 따뜻한 예수님의 손길이다.

네 번째 배려는, 예수님이 그를 책망하시기보다 세 번의 사랑의 고백을 들으신 것이다.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한 그에게 세 번 사랑의 고백을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가 얼마나 연약해 있는지를 잘 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직접 그를 책망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와의 사랑을 회복하심으로 그의 실패를 치유하셨다.

다섯 번째 배려는, 예수님이 그에게 다시 사명을 맡기신 것이다.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맡기셨다(요 21:15). 또한 “나를 따르라”(요 21:19)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으로 그를 위로하셨다.

베드로는 실패를 통해 더욱 겸손해졌다. 실패를 통해 더욱 실패한 사람들을 품게 되었다. 베드로는 실패를 딛고 일어섬으로 더욱 훌륭한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실패 이전보다 실패 이후에 그는 더욱 성숙한 지도자가 되었다. 실패한 사람만이 실패한 사람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다. 베드로는 한 때 바울이 포기했던 마가 요한을 데려다가 제자로 삼았다. 마가 요한은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선교 여행을 떠났다가 중도에 포기했던 제자다. 바로 그 제자를 베드로가 데려다가 양육해서 훌륭한 제자로 키웠다. 마가는 베드로의 제자로 성장해서 마가복음을 기록했다. 마가가 아름답게 성장했을 때 바울은 마가와 다시 동역하길 원했다.

부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실패와 실패를 이어주는 선을 통해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자. 윈스턴 처칠의 말이 떠오른다. “성공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에서 다른 실패로 건너가는 것이다.”

강준민 (L.A. 새생명비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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