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경찰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 경찰관이 동료들의 2차 가해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피해를 입은 여성 경찰관에게 휴직을 요구하거나, 합의금을 노린 ‘꽃뱀’ 사기라며 수군거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 경찰관은 직접 전화를 걸어 심한 욕설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성범죄 피해자인 여성 경찰관 A씨는 2차 가해자들을 모욕·명예훼손죄로 서울동부지검에 고소했다.

지난해 10월 경찰관들의 회식 자리가 있었다. 이 중 여성은 A씨 혼자였다. 술에 취한 A씨를 남성 경찰관들이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이모(28)씨만 집에 남겨두고 집을 나오면서 사건이 터졌다. A씨는 이 자리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정신을 차린 뒤 몸에서 성폭행 흔적을 발견하고 곧장 성폭력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A씨는 사건 발생 다음날 이씨를 고소했다.

이씨는 “합의된 성관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CCTV를 확인한 뒤 이씨에 대해 준강간치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영상 속 A씨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수사관들은 A씨가 정상적인 인지능력이 없는 상태였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 무렵부터 A씨에 대한 괴소문이 퍼졌다. 사건 발생 한 달 뒤 A씨는 동료에게 “소문이 너무 좋지 않은데 휴직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의 소문은 ‘A씨가 이씨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4000만원을 요구했고, 이씨가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고소를 했다’는 식이었다. A씨에 따르면 먼저 합의를 요구한 사람은 이씨였다.

그를 둘러싼 악성 소문은 점점 커졌다. A씨가 작성한 진정서에 따르면, 사건 이후 A씨의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고, 집안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다는 말이 돌았다. 이를 A씨에게 직접 묻는 동료도 있었다. 특히 한 경찰관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동네 걸레 같이 군다” “씨XX아” “경찰 자격도 없으니 때려쳐라” 같은 말을 하며 수치심을 줬다.

사건 발생 4개월 후 재판 결과가 나왔다. 법은 이 사건을 성폭행으로 판단했다. 지난 22일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부장판사 정문성)는 이씨에게 준강간혐의를 물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경찰 당국은 이씨를 파면했다. 이씨는 법정에서 뒤늦게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이씨가 술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간음하고 상해를 입혀 죄질이 좋지 않다”며 “특히 경찰공무원인 피고인이 동료인 피해자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단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누명을 벗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A씨의 착각이었다. 이씨가 혐의를 모두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A씨에게는 ‘꽃뱀’ 꼬리표가 붙었다. 이 여파로 그는 2차 가해로 인한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A씨는 결국 2차 가해자들을 서울동부지검에 고소했다. 현행법상 2차 가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공연성’에 기반한 모욕죄와 명예훼손죄으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앞서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간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폭언을 퍼부은 경찰관을 파면해주십시오’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본 사건은 경찰이 동료 여경을 성폭행하고, 다른 동료 경찰관들은 강간 피해자에게 심각한 2차 가해를 가한 사건”이라며 “경찰이 이렇다면, 국민은 누구를 믿을 수 있나. 동료 경찰관들의 2차 가해를 모욕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경우라면, 경찰 내부 징계를 통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여성은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올해 12월 25일 시행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근거해서다. 이 법안은 여성폭력을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등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여성폭력인 스토킹, 데이트폭력 등의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특히 2차 피해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적시한 최초의 법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겪는 사후 피해, 집단 따돌림, 사용자로부터의 불이익 조치 등으로 규정했다.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젠더를 기반으로 여성폭력의 정의와 2차 피해를 법으로 규정하고 피해자나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담아냈다는 것은 굉장한 진전”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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