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에 지친 현대인을 위로하는 영화 ‘극한직업’

이 영화의 웃음이 고마운 이유는

영화 스틸컷

무한경쟁 시대에 사는 현대인은 일상에서 느끼는 삶의 무게를 영화에게까지 갖고 오고 싶지 않다. 머리를 식히며 잠시 쉬고 싶은 순간에조차 심각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런 이유로 코미디 장르 영화 ‘극한직업’의 관객이 올 초 1500만 명이 넘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관객들은 이 영화가 주는 유쾌함을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영화관을 향했다.

기독교영화관 필름포럼 대표 성현 목사가 최근 영화 ‘극한직업’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해석한 글 ‘그리스도인의 대중문화 읽기 영화<극한직업>: 삶이라는 극한직업에 나선 이들을 위한 응원가’가 문화선교연구원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영화 스틸컷

해체 위기에 처해있던 마약반 형사들이 범죄조직을 소탕하려고 잠복근무를 하던 치킨집을 넘겨받는다. 치킨집 흉내만 내고, 범인을 잡는 데 주력할 계획이었다.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팀원 중 마형사(진선규)가 만든 왕갈비치킨의 맛이 뛰어나면서부터다. 손님이 없어야 잠복근무를 하는 데, 손님이 줄을 서며 북적였다. 얼굴이 드러나면 안 되는데, 전국에 맛집으로 소문이 나버렸다. 그러다 보니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려 범인 추적에 나섰던 형사가 치킨집 장사시간에 자리를 비워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도 순발력 있게 이어져 웃음을 유발한다. 번번이 승진이 빠지는 남편에게 “동네 반장도 세월 지나면 통장 되더라. 나는 최불암 아저씨도 보기 싫어. 볼 때마다 수사반장이 생각나서”라고 부인이 말할 때, 딸이 문을 열고 외친다. “엄마! 나 우리 반 반장 됐어!”

성 목사는 “어른들이 현실에서 웃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현실이 고단하기 때문”이라며 “‘극한직업’ 속 상황은 2019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범행현장에 멋지게 유리창을 깨고 침투하지 못한 채 어설프게 밧줄에 매달리는 이유가 유리창이 깨지면 형사들이 배상해야하기 때문이라는 설정은 오늘도 소방관을 비롯해 각종 재난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분들의 열악한 처우를 떠올리게 한다. 어차피 조직에서 밀려나면 퇴직금으로 치킨집 차릴 일밖에 없으니 미리 당겨썼다고 생각한다며 임무완수를 위해 자신의 퇴직금으로 치킨집 인수에 나서는 고반장(류승룡)의 모습은 어떤가?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당하고도 노후가 준비되지 않아 사지처럼 보이는 자영업자의 길로 들어서는 무수한 가장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여기에 치킨집이 전국적인 프렌차이즈화가 되면서 벌어지는 촌극은 구조적인 병폐가 개인의 역량과 무관하게 벌어지며 희생자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스틸컷

성 목사는 또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과 중첩된 영화 속 상황은 차곡차곡 쌓여가 마지막 결투장면에서 ‘대한민국 소상공인들, 전부 목숨 걸고 해’라는 고반장의 외침으로 이 싸움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그래서일까? ‘극한직업’의 악인들은 도무지 무서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주인공들이 진짜로 싸우는 대상이, 우스꽝스러운 악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적자생존이라는 냉혹한 현실이라는 것을. 그깟 악인 몇 사람을 이기는 것보다 내게 주어진 현실을 제대로 감당하며 살아낸다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임을 ‘극한직업’은 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스틸컷

‘극한직업’은 한국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조폭과 경찰, 인물의 성장 서사까지 준비된 재료는 비슷했다. 그런데 이런 재료들로 흥행공식을 버무리는 대신 ‘극한직업’은 코미디라는 장르에 충실하며 끝까지 웃음으로 일관한다. ‘이쯤에서 대중들은 이런 걸 원해!’라며 다른 영화에서도 통했던 법칙들이 흘러들어올 여지를 ‘극한직업’은 허락하지 않는다.

성 목사는 “실제 상황이었으면 울며 포기했을 상황들, 남 탓하며 제 살길 찾아가는 게 상책일 순간들에 어김없이 웃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라며 “그래서 뭘 먹었는지도 모르지만, 포만감만 가득한 뷔페가 아니라 코미디라는 단품 요리를 제대로 먹은 느낌을 준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스틸컷

이어 “이 영화는 그렇게 무한경쟁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생존과 생의 의미를 찾아 애쓰는 이들에게 당신의 자리가 극한 곳이 맞다며 위로해 준다”라며 “열심히 살았지만,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능하다며 타박하는 대신 우리의 내일이 괜찮을 수도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준다”라고 밝혔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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