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더러 몇 살인지 물을 때면 “‘집 나이’인지, ‘만 나이’인지” 평생 귀찮은 토를 달며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나이 많아 보이게 할 때는 ‘집 나이’로, 어려 보여야 할 때는 ‘만 나이’로 답하는 얄팍한 꼼수도 종종 부려왔다. ‘만 나이’는 태어난 날부터 헤아려서 만 1년이 돼야 한 살로 친다. 반면 우리는 전통적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곧바로 한 살 먹은 것으로 쳤다. 이게 ‘집 나이’다.

전주열린문교회 이광우 목사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고” 옛시조의 가사는 집 나이를 말한 것이다. 태어나기 전 우리는 모두 다 아버지의 허리에 있었다. 아버지의 허리에서 나와 어머니의 몸으로 들어가 배아가 되고, 어머니 배 속에서 조금씩 자라 태아가 되고, 그렇게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어머니 배 속에서 열 달을 잘 살았다. 그 덕에 이 세상 빛을 보고 오늘까지 살아온 것이다.

어머니 배 속에서 살고 있을 때는 당신도 나도 자신의 생명을 지킬 능력과 힘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부모님의 사랑 덕으로만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이런 출생 과정을 함부로 생략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오늘 내가 사람인 것은, 그 때 어머니 배 속에서 내가 사람이었기 때문이고, 말도 할 줄 모르는 어린 나를 부모님이 잘 지켜주셨기 때문이다.

‘집 나이’는 어머니 배 속에서의 열 달, 아니 거기에 덧붙여서 아버지 허리에 머물던 두 달까지를 생명으로 여겨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인정해 준 것이다. ‘만 나이’보다는 ‘집 나이’가 올바른 자기 나이라고 내가 늘 생각하는 이유다.

‘인권’을 노래하는 이들이 꽤 많다. “이 땅의 약자, 작은 자들의 인권도 중하다”는 뜻으로 읽히기에 나도 적극 지지한다. 11일 예상했던 대로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정신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나왔다. 판결을 보면서 헌재 재판관들의 ‘집 나이’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들이 어머니 배 속에서 받았을 사랑을 어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이 판결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정작 낙태당할 아이의 의견과는 아무 상관없이 어른들 마음대로 한 생명을 거침없이 죽여도 되는지, 그것이 법 정신이 가리키는 올바른 방향인지 궁금해졌다. 임신의 부담을 오직 여성만 홀로 지게 하는 것에는 나도 적극 반대한다. 하지만 임신 과정에 가담한 어른들(특히 남자)의 책임을 왜 말도 못하는 어린 생명이 다 져야 하나.

국가 사회가 함께 져야 할 무거운 책임을 왜 아무 죄 없는 어린 것이 짊어지고 세상 빛을 보기도 전에 예수님처럼 죽어야 하나. 마치 자신은 출생하기 전 어머니 배 속에서의 10개월이 전혀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왜 이리도 함부로 힘 있는 자만 살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너나없이 공리주의의 노예가 되어 가나.

그러면서도 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한 편에선 한없이 즐거워하나. 왜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위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배 속의 어린 생명이 목숨으로 다 짊어져야 하나.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는 히틀러식 사고(思考)와 무엇이 다른가.

천하보다 귀한 태아의 ‘생명’이 ‘여성의 자기결정권’만 못한 것인가. 여성 홀로 임신의 부담을 다 떠안아서는 안 된다면, 죄없는 어린 생명이 목숨으로 그 책임을 다 지는 것도 마찬가지로 안 되는 것 아닌가. 누가 뭐래도 ‘만 나이’가 아니라 ‘집 나이’가 제 본 나이임을 결코 잊지 말고, 어른들의 무거운 책임을 말 못하는 태아에게 무책임하게 다 떠넘기지 말라. 정녕 하늘에 있는 ‘진짜 헌재’의 최종 심판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것인가.

▒이광우 전주열린문교회 담임목사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졸업, 한국기독사진가협회(KCPA)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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