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힐즈버러 생존자 스테파니 코닝씨가 영국 프레스턴 크라운 법원 밖에서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잉글랜드 리버풀과 첼시의 2018-2019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가 펼쳐진 15일 영국 리버풀 안필드. 경기를 앞두고 안필드에는 1분여간 쥐죽은 듯 고요한 침묵이 맴돌았다. 양 팀의 선수들이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묵념을 올렸다. 평소 창이 긴 모자를 눌러 쓰고 경기를 지켜보는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들쑥날쑥 자란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한 채 모자를 벗는 것으로 예의를 표했다. 30년 전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이었다.

1989년 4월 15일. 잉글랜드 셰필드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94명의 관중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사고 후유증으로 2명의 관중이 더 사망했다. 총 96명의 사망자를 내며 ‘힐스버러 참사’라 불리는 이 사건은 잉글랜드를 넘어 축구계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풋볼 리그 디비전 1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새롭게 프리미어리그를 출범시키는 시발점으로 작용했을 정도다.
잉글랜드 리버풀과 첼시 선수들이 15일 2018-2019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현재 셰필드 웬즈데이의 홈구장으로 사용되는 힐스버러 스타디움에는 당시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FA컵 준결승전이 열리고 있었다. 경기장은 홈 팬과 원정팀 팬이 철저히 분리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리버풀 팬들은 관중석 한쪽 구석을 할당받았다.

공교롭게도 경기장 인근 도로는 차량 충돌 사고가 발생해 정체돼 있었다. 도로 정체로 시합 직전이 돼서야 경기장에 도착한 리버풀 팬들은 킥오프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관중석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몰려든 팬들에 경기장 진행요원들은 숫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1600명 정원인 입식 관중석에 3000여명의 팬들을 유도했다.

정원의 두 배에 가까운 인원들이 들어 찼으니 리버풀 팬들이 위치한 입식 관중석은 아수라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훌리건이 필드에 난입하는 것을 막기위해 세워놨던 보호철망으로 밀려났고, 서로가 서로의 발에 깔렸다. 질식사하기 직전이던 팬들은 2층으로 기어올라가기 시작했고, 보호철망은 사람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져내렸다.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진행측은 전반 7분만에 경기를 중단시킨다.

부상자는 총 766명. 10대와 20대 사망자는 총 78명에 달했다. 자매와 형제, 부자 관계였던 이들이 동시에 사망해 온 가족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일도 생겼다. 당시 가장 어린 희생자였던 10살의 소년은 훗날 리버풀의 전설적인 선수로 남는 스티븐 제라드의 사촌형이였다.

당시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며 극성스러운 일부 훌리건들의 부주의로 사고가 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론 또한 희생자들의 시민 의식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유가족과 리버풀 사회는 이 사건이 단순 사고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결국 2016년이 돼서야 영국 법원은 해당 참사의 원인을 팬들의 잘못이 아닌 경찰의 과실치사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 전역의 축구문화는 180도 달라진다. 축구장의 입석은 모두 사라져 전 좌석 좌식화가 됐고, 축구장 내 보호철망 역시 철거됐다. 리버풀은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엠블럼의 새(리버 버드) 양 옆에 참사 기념비의 성화를 본뜬 두 개의 불꽃을 새겨 넣었다. 유니폼 뒷쪽에 새겨진 ‘96’ 또한 이 사건의 희생자 수를 의미한다.

송태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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