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 뉴시스

청와대가 “인권을 무시할 때 야만의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뜻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권력 감시라는 역할을 흔들림없이 수행해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16일 청와대에 따르면 법무비서관실은 최근 인권위에 이러한 내용의 의견을 전달했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려 이명박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블랙리스트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열린 이후 2008년 경찰청 정보국, 2009년과 2010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이 작성해 관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작성된 블랙리스트는 인권위 간부들에게 전달됐다.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은 2009년 10월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인권위 전 사무총장에게 “이명박 정부와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사람”이라며 촛불집회 직권조사 담당조사관이었던 김모 사무관 등 10명이 포함된 인사기록카드를 전달했다.

인권위는 이 같은 블랙리스트 작성이 인권침해는 물론 인권위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이자 형법상 직권남용에 의한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인권위가 독립적 인권보장기구로 역할과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는 등 인권위 독립성 훼손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법무비서관실은 인권위 권고에 대한 답변서에서 “인권위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한 과오를 반성하기 위한 인권위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인권위는 독립성이 훼손될 경우 공권력 남용으로부터 기본권 침해를 감시, 예방하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인권위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2주차에 인권위의 위상강화를 지시하고, 인권위 특별보고를 재개했다. 정부 업무평가에 인권부문 평가를 반영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해 12월 2012년 이후 중단됐던 인권위 특별보고가 이뤄졌다. 지난해 상반기엔 감축됐던 인권위 조직이 일부 회복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식에서 인권위에 “약자들 편에 섰던 출범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반갑다. 국제사회에서 모범적인 국가인권기구로 인정받은 활약을 되살려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최영애 인권위원장과 정상환·최혜리·정문자 상임위원, 조영선 사무총장에게 특별업무보고를 받기도 했다. 취임 이후 2번째 특별보고였다. 인권위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노동시장 양극화 등 사회 양극화 대응의 필요성과 혁신적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혐오와 차별에 대한 대응, 스포츠 분야 폭력·성폭력의 근본적 해결 방안, 일터 환경 개선 등 기업의 인권 책무성 강화 등에 대해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정부 들어 인권위의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특히 최 위원장 부임 이후 인권위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독립기구로서의 위상과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고 격려했다.

법무비서관실은 인권위 측에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독립성을 보장받을 것”이라며 “문재인정부는 존중과 협조를 통해 이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인권위 또한 스스로 독립성이 흔들리지 않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사람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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