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 바꿀 생각 없어. 돌아가!” 고개를 떨군 10대 청소년 둘을 바라보던 판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들은 이번엔 두 손까지 모아 “판사님,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라고 울먹였다. 하지만 판결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비행 청소년들을 법정에서 엄하게 꾸짖어 ‘호통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의 유튜브 동영상 일부다. 회자된 덕분에 이 동영상은 지금껏 667만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명 유튜버 못지않은 조회수다.
천 부장판사도 비행청소년들의 과오와 그들의 미래 사이에선 깊은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고 한다. 판결로 청소년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상황과 판결이 청소년의 미래에 끼칠 영향 사이의 딜레마가 그것이다. “음지의 청소년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고 싶다”는 천 부장판사를 만나봤다.
천종호 부장판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법정에서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은 어른들일지도 모른다” 며 청소년 범죄의 근본원인을 지적했다. 사진=천종호 부장판사 제공.

-소년보호재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지난 2010년 2월 창원지방법원에서 소년보호재판을 맡게 됐는데 소년보호재판이 대한민국의 수준에 걸맞지 않게 매우 후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사정을 들은 몇몇 주변인들이 소년보호재판을 두고 ‘컵라면 재판’ 또는 ‘3분 재판’이라고 부를 정도로 후진적이었다. 이런 사정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왔다.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재판을 해왔다. 덕분에 어느덧 8년이란 시간을 소년보호재판과 함께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은?
“이성교제를 하던 한 청소년이 결국 임신을 한 일이 있었다. 그 소녀는 소년원에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또 낙태를 해야 하니 집으로 보내달라고 한 것이 사건의 주된 내용이다. 저는 한 달 간 밤잠을 설칠 정도로 깊이 고민했다. 안타깝지만 아빠의 마음이 아니라 법관의 양심으로 소녀를 낙태할 수 없을 때까지 소년원에서 생활하게 했다. 출산일이 가까워졌을 때야 보호처분변경 재판을 해 임신한 소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소녀는 여자 아이를 출산했고 아이를 입양시켰다. 출산한 이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한 아이의 생명은 건졌지만, 미혼모라는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소녀의 인생은 망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제 인생에서 계속 기억하고 살아갈 것 같다.”

-청소년 범죄가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범죄원인은 환경적 영향이 매우 크다. 비행청소년들의 태반이 빈곤가정과 결손가정의 아이들이다. 가난과 결핍, 그로 인한 성적 경쟁에서의 낙오가 아이들을 비행으로 내몰고 있다.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잃고 사회에 원망을 표출하는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아닐까 하고 반성해야 한다. 아이들은 ‘법정에서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은 어른들일지도 모른다.”

-만사소년이란 단체의 의미와 활동내용이 궁금하다.
“내가 아니라 주변에 친구들이 출연해 사단법인 ‘만사소년(萬事少年)’을 운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 단체의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만사소년은 ‘모든 일을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내가 지금껏 쓴 책 3권의 판매수익이 총 1억원 정도다. 그 돈은 모두 만사소년에 기부했다. 만사소년은 책 인세와 주변에 뜻있는 분들의 후원금을 전달 받아 위기청소년들의 재범방지 및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매주 목요일 오후 6시에 부산 스포원 축구장에서 진행되는 ‘만사소년축구단’ 활동이 있다. 또 극기여행, 각종 문화체험 활동, 자립지원 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바리스타교육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무료로 바리스타교육을 실시했고, 교육을 마친 아이들에게는 자격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아이들을 교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출산으로 위기감이 팽배해져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한 명의 아이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는 당연히 비행청소년들도 포함된다. 비행청소년들도 엄연히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다. 비행청소년들을 포함한 우리 아이들은 어른으로 가는 시간 변경선상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가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그들은 앞날이 바뀐다. 이들을 회복시키고 교정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분명히 있다. 경험상 이 시기를 놓쳐버리면 성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골든타임을 지켜 그들과 소통하고 회복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 사회의 수준은 가장 낮은 곳에서 결정된다. 우리 사회가 밝고 따뜻해지려면 낮은 수준에 있는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을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야 한다. 비행청소년들에 대한 관심과 후원은 우리사회 전체의 수준을 높이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판사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 힘을 우리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홀대 받고 있는 비행청소년들을 위해 쓰려고 한다. 이것이 국민에게 받은 힘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년퇴직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비행청소년들과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이은철 기자 dldms878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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