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김혜원 WNC 대표의 목소리는 다부졌다. 그는 스물세 살이고,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휴학생이다. 구독자 70만명을 보유한 스타 유튜버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에는 소속사와 협력해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비영리단체 WNC를 설립했다. 모두 그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이뤄낸 것들이다.

김 대표를 최근 서울 강남구 ‘레페리 뷰티 엔터테인먼트(레페리)’ 사무실에서 만났다. WNC 협력사인 레페리는 김 대표가 소속된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 회사로, 뷰티·패션 전문 1인 크리에이터를 육성한다. 김 대표는 “레페리 측의 기부금과 자체 제작한 휴대폰 케이스 등의 ‘굿즈’ 판매 수익을 통해 WNC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원래 예명 ‘에바(EVA)’로 활동하는 뷰티 유튜버였다. 첫 영상을 올린 2015년 7월 이후 화장법과 일상 영상을 주로 찍어왔다. 그런 그의 영상에 페미니즘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17년쯤. 그즈음 대학 교양수업으로 여성학을 들었다고 한다.

‘대체 뭐길래’라는 호기심에 선택했던 강의가 그를 사로잡았다. 학급회장과 부회장을 각각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구분해 뽑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었다. 직업 군인을 꿈꾸던 그에게 “여자는 그런 일을 하기 힘들어”라고 말한 고교 선생님과 친구도 생각났다. 결국 영화예술학과에 진학했다. 전 남자친구의 지나친 사생활 간섭이 불편했지만 말하지 못했던 까닭도 그제야 알 것만 같았다.

김 대표는 “조금씩 쌓인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제가 당시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불쾌함의 이유를 여성학 강의를 통해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정리해 지난해 1월 페미니즘과 여성 혐오를 주제로 한 영상을 올렸다. 그때부터 여성 인권 이슈는 에바 채널을 대표하는 여러 색깔 중 하나가 됐다.


수많은 댓글이 쏟아졌다.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만큼이나 격려와 지지도 많았다. 김 대표는 “이 주제에 대해 댓글보다 더 폭넓게 소통할 방법을 최인석 레페리 대표와 고민했다”며 “‘세상을 바꿀 뭔가를 해보자’는 결심으로 WNC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WNC는 ‘와이 낫, 와이 캔트(Why not, Why can't)’라는 문구의 첫 글자를 조합해 만들었다. 여성이라서 안 되는 것은 없다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이런 신념을 담아 기획한 첫 프로젝트가 ‘윌 엑셀러레이터’. 여성이 창립자 또는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면서 누적 투자유치금액 1억원 이하, 연간 매출액 5억원 이하의 3년차 이내 스타트업에 경영 자문을 제공한다.

김 대표는 “선발된 기업의 사업모델 적합성을 진단하고, 마케팅 전략을 조언하는 등 경영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교육을 6개월 동안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레페리의 최 대표와 이동후 전무, 손영건 GS홈쇼핑 벤처투자팀 심사역, 이혜린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심사역이 멘토로 참여한다. 경제적 지원은 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사무공간조차 마련하지 못한 기업에 한해 일정 수준의 자본금 지급을 고려하고 있다. 유명 유튜버와 연계해 홍보 기회도 마련한다.

김 대표는 심사를 통해 총 세 기업이 선정됐다고 전했다. 여성용 드로즈 제작·판매 브랜드, 빅데이터 분석 업체 등 분야는 다양하다. 김 대표는 그중 하나가 블록체인 스타트업이라며 “이곳 여성 대표님이 말한 고충이 기억에 남는다. 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남성 직원과 다른 업체 미팅에 가면 그쪽 담당자가 대표인 자신보다 주로 남성 직원에게 업무 관련 질문을 한다는 얘기였다”고 했다.

김 대표는 “WNC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여성 권익 증진”이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일하는 여성은 많지만 창업가나 임원 비율은 아직 낮은 것 같다”면서 “고위직에 진출하는 여성이 많을수록 다른 여성에게도 다양한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기획은 다른 방향으로 구상할 계획이다. 기업이 아닌 일반 대중도 함께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누군가는 ‘역차별’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희는 여성을 약자로 규정하는 게 아닌, 여자라서 할 수 없는 일은 존재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잖아요. 이런 좋은 사례가 축적돼 자연스레 편견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거죠. ‘기업 운영은 여성의 몫이 아니야’와 같은 편견이요.”

여전히 유리천장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단호히 “네”라고 답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쉽게 말해 ‘사람답게 살자’라며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단지 성별 때문에 차별받거나 혜택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어요.” 김 대표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그는 대학생이고, 유튜버고, 한 단체의 대표다. 모두 ‘김혜원’을 정의하는 말들이다. 김 대표는 “이 세 가지가 시너지를 내면 좋겠다”며 “더 많이 배우고, 더 좋은 영상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WNC 일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영상=최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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