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캡처

26일 새벽, 국회에 ‘빠루’가 등장했다. 정식 명칭은 노루발못뽑이. 큰 못을 뽑을 때 쓰는 공구다. 지렛대의 원리를 활용해 굳게 닫힌 문을 열 때도 쓴다.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전, 이른바 ‘동물국회’ 시대에 회의장 문을 열기 위해 자주 쓰이던 연장이다. 동물국회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인 셈이다.

빠루가 등장한 곳은 국회 의안과 사무실인 702호. 패스트트랙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자 하는 더불어민주당과 이를 막기 위한 자유한국당이 온 종일 치열하게 맞서던 곳이다. 회의를 열어 패스트트랙을 지정하기 위해서는, 이에 앞서 관련 법안들이 국회 의안과에 제출이 돼야 한다. 이 때문에 한국당은 온 몸으로 의안과 사무실을 점거해 법안 제출 자체를 원천 차단했고, 민주당은 팩스나 우편 등 우회로를 통해 법안 제출을 시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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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빠루는 26일 아침에 다시 국회 전면에 등장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오전 8시 의원총회에 이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이 빠루를 치켜들고 “의회쿠데타이고 의회 폭거다, 저희는 그 폭거에 맞설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빠루 사용에 항의하는 차원이었다. 김정재 한국당 의원은 “나 원내대표가 들고 나온 빠루는 어제 7층 의안과의 문을 부수려는 사람들로부터 뺏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빠루를 사용한 주체가 민주당 관계자인지 국회 방호과인지는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즉각 빠루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반발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공지 문자를 통해 “국회 내 회의실 문을 열기 위해 망치 등 도구가 사용된 것은 국회의장의 경호권 발동 등 국회 절차에 따라 국회 방호과 직원들에 의해 이뤄진 일”이라면서 “민주당 당직자나 관계자는 일절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알려드린다”고 강조했다. 국회 방호과에서 사용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회 역시 장비 사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국회사무처 경호기획관실 산하에는 의회경호담당관실(경호과)와 의회방호담당관실(방호과)이 있다. 하지만 두 부서 모두 장비 사용을 공식 부인했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 경호과와 방호과 모두 빠루 등 장비 사용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국회 사무처는 이날 오후 늦게 빠루를 사용한 게 국회 경호과 소속 경위라고 시인했다. 국회 관계자는 “점거돼있는 의안과의 출입문을 열기 위해 국회사무처 경위 직원들이 해당 물품을 사용했다”며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의안과 점거 및 직원 감금상태를 해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정치적 부담 등을 고려해 오전에는 소극적으로 부인하다가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관련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보인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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