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욱 에레츠의 묵상일기] 암브로시우스의 '토빗 이야기'

토비트와 안나, 아브라함 드 파페, 1658, 런던 내셔널 갤러리

교회 역사가였던 유스토 곤잘레스는 암브로시우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4세기에는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났으나 그중에서도 밀란의 암브로시우스의 생애야말로 가장 극적인 것이었다.”

암브로시우스처럼 독특한 생애와 사상을 가진 교부가 없을 것입니다. 그의 생애는 <나봇 이야기>에서 자세히 언급했으니 여기서는 건너뛰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그곳에서 다루지 못했던 암브로시우스에 대한 몇 가지를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니케아 공의회(325년) 이후 즉 후기 교부에 속합니다. 대부분의 교리가 확정된 이후의 교부이기 때문에 신학적인 논쟁은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했지만 교회 안에서는 아리우스와의 권력 다툼이 심각할 정도였습니다. 아리우스파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리우스가 주장한 사상을 말합니다. 아리우스에 의하면 성자 예수는 성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성부에게 종속된 존재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독립적이면서 하나인 삼위일체 교리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입니다.

리우스파의 주장은 예수는 단지 성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며, 결코 하나님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즉 예수는 인간일 뿐 신의 속성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지금도 여호와의 증인과 유니테리언 종파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325년)는 이미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배격했으며, 삼위일체 교리를 완성했습니다. 아리우스는 공의회 결정으로는 이단이지만, 교회 안에는 그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의 전 밀라노 주교였던 아욱센티우스조차 아리우스 파였습니다. 당시 교회는 아리우스파와 정통파가 자신들의 세를 확장하고 교회를 만들기 위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가 주교로 추천받는 때도 이러한 대립 상황에서 어부지리로 된 것입니다. 정통 신앙을 따랐던 암브로시우스는 아리우스파를 따랐던 황실과 몇 번의 대립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원로원에 빅토리아 여신의 제단을 세우려 할 때 황제를 향하여 공직을 맡은 자는 공정해야 한다며 반박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어린 황제였던 발렌티니아누스 2세를 섭정했던 유스티나는 아리우스파였습니다. 유스티나는 385년 부활절 이전에 도시 밖의 포르티아나 소성당을 아리우스파에게 넘겨 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정통파였던 암브로시우스는 그녀의 청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황실은 암브로시우스가 국가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아리우스파에게 관용과 집회권을 허용하는 법령을 386년에 공포했습니다. 이것은 아리우스파가 원하면 얼마든지 교회에서 자신들만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스티나는 이 법령을 근거하여 이번에는 성 안에 있는 더 큰 교회를 넘겨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번에도 암브로시우스는 거절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거절의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아무것도 남에게 양보할 수 없다. 나는 남에게 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보호하기 위한 책임을 맡고 있다. 또한 이를 거부함으로써 나는 황제를 진정으로 보좌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약탈하는 것은 황제로서도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군인들이 밤새 에워쌌지만 신자들과 함께 그곳을 지켰고 그 모습에 감동을 받은 군인들은 포위를 풀었습니다.

세 번째 중요한 사건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전개될 암브로시우스의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일화입니다. 당시 동방의 황제였던 테오도시우스는 정통 신앙의 신자였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시민들의 폭동이 일어나 이곳 경비 사령관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황제는 폭동을 일으킨 시민들을 처벌하고자 했지만 암브로시우스의 제지로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나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성격이 난폭하고 다혈질적이어서 결국 그들을 경기장에 모이게 한 후 7천여 명의 시민들을 학살하고 맙니다. 이 소식을 들을 암브로시우스는 생명을 경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황제에게 회개의 표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군인들을 이끌고 교회에 들어오려고 하였다. 감독은 그를 문 앞에서 가로막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 자리에 멈춰라. 양손에 불의의 피가 가득한 자, 죄로 더럽혀진 너 같은 인간은 회개하기 전에는 성찬에 참여하기 위해 거룩한 성소에 들어올 수 없다.”

경호하던 군인들이 칼을 뽑아 들고 덤벼들자 황제는 그들을 제지하고 공개적으로 회개하고 교회에 다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이처럼 암브로시우스의 기개는 아무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력했습니다. 주교가 되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 구제했고, 평생을 검소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아나갔던 암브로시우스는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재물에도 관심이 없었고, 오직 교회의 정통을 수호하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볼보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토빗 이야기>에 관하여

오늘 함께 나눌 <토빗 이야기>는 <엘리야와 단식> <나봇 이야기>와 더불어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책망하고 경고하는 3대 문헌 중의 하나입니다. <나봇 이야기>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가난한 자의 포도밭을 빼앗았던 부자들의 탐욕을 지적했다면, <토빗 이야기>는 돈을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부자들의 이자 놀음에 대해 경고합니다. 실제로 토빗은 개신교인들에게는 굉장히 낯선 인물입니다. 이것은 토빗이 구약 외경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가톨릭교회는 구약 성경에 ‘토비트’란 제목으로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토비서를 읽을 수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외경에 기록된 토비트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시대적 배경은 기원전 8-7세기 경입니다. 저작 시기는 기원전 200년쯤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토빗은 어린 시절부터 이웃에 대하여 선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구제했던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안나와 결혼하여 아들 토비야를 낳습니다. 어느 날 포로가 되어 앗수르 니느웨로 끌려갑니다. 그곳에서 임금의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성실한 삶은 물품 구입 담당자로 살면서 출세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메디에의 가바엘에게 은 열 달란트를 맡겨 놓습니다. 살만에셀 이후 산헤립이 앗수르 왕이 됩니다. 산헤립은 시체 매장 금지령을 내려 유대인들을 묻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토빗은 아랑곳하지 않고 죽은 이들을 묻어 주었고, 결국 들통나 도피하게 되고, 모든 재산을 몰수 당하게 됩니다. 어느 날 자는 동안 참새 똥이 눈에 떨어져 시력을 잃게 됩니다. 메디아에 사는 친족 사라는 일곱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악귀가 남편들을 죽입니다. 하나님은 사라와 토빗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라파엘을 보내십니다. 토빗은 아들 토비야에게 20년 전 메디아의 가바엘에게 맡긴 은 열 달란트를 찾아오라고 명합니다. 메디아로 가는 길에 동행자를 만났는데 그는 사람으로 위장한 천사 라파엘이었습니다. 라파엘은 토비야와 사라에게 결혼할 것을 종용하고, 그들은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식을 치르는 동안 둘은 여행 중에 잡은 물고기의 간과 염통을 향불에 태워 마귀를 물리친 뒤 기도를 올립니다. 토비야는 사라와 함께 어머니 안나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토비야는 물고기 쓸개를 아버지의 눈에 발라 시력을 되찾아 줍니다. 토빗은 가지고 온 재산의 절반을 라파엘에게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때 라파엘은 자신이 천사임을 밝히고 하나님께 올라가게 됩니다. 토빗은 시력을 되찾은 뒤에도 선행을 하다 112살에 하나님 품에 안깁니다. 죽기 전 아들 토비야를 불러 메디아로 가라는 유언을 남기자 토비야는 아내와 함께 메디아로 돌아가 처가 식구들을 모시고 살다가 117에 생명을 마칩니다.

구약 외경에 속한 토비트는 개신교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경이 공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던 초대교회 당시 토비트는 정경처럼 교회 안에서 인정되었고, 교부들은 즐겨 설교에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거스틴도 교인들을 가르치기 위해 구약에서 교훈적인 구절을 뽑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는데, 그 책 속에 토비트의 이야기가 적지 않게 실려 있습니다. 몇 구절을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네 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 날마다 네 어머니를 공경하고, 네가 배 속에 있을 때에 네 어머니가 너 때문에 겪은 그 많은 위험을 생각해 보아라.”
“언제나 현명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라. 언제든 하나님을 찬미하여라. 그리고 너의 길을 곧게 해 주십사 그분께 간청하여라.”
“단신과 함께하는 기도는 좋고,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자선이 낫다. 자선은 죽음에서 구해 주고 죄를 깨끗이 없애 주며, 영원한 삶으로 이끌어 준다.”
“내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의 말을 들어라. 주님을 진심으로 섬기고,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하도록 힘써라.”

토비트서가 왜 이렇게 초대교회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영향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 이제 <토빗 이야기>로 직접 들어가 보겠습니다.

<토빗 이야기>의 구조와 내용

토빗 이야기는 모두 24장으로 된 설교 형식의 글입니다.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고리대금업자들에 대한 경고와 책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필요한 부분을 직접 인용하고, 전체적인 내용을 몇 가지의 주제로 정리해 소개할까 합니다. 1장에서는 토빗의 삶을 간추립니다. 2장에서 15장까지는 부자들과 고리대금업자들의 악을 고발합니다. 16장부터 24장까지는 선한 삶과 가난에 대해 변증을 합니다. 구조 자체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구분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러한 주제로 흘러갑니다.

1. 토빗의 삶

이 책의 제목이고, 암브로시우스가 원래 쓰려고 했던 목적은 토빗의 경건한 삶을 추려 교인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곧 이룰 수 없게 됩니다. 토빗 이야기를 넘어 부와 돈놀이에 빠진 고리대금업자들에 대한 사회정의를 부르짖게 됩니다. 제1장은 저자가 의도한 토빗 이야기를 간추립니다.

우리는 토빗이라는 제목이 붙은 예언서를 봉독했고, 성경은 거룩한 예언자의 덕행을 우리에게 충분히 알려 주었지만, 그분의 덕행과 행적을 간추린 이야기로 살펴보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토빗은 의롭고, 자비롭고, 환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삶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묻지 말라는 반포령에도 목숨을 걸고 장사를 치렀습니다. 토빗은 성경이 말하는 의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토빗의 삶은 초대교회에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입니다.

2. 고리대금업자들의 악

2장부터 15장까지는 고리대금업자들의 악을 폭로합니다. 성경에서는 고리대금업을 금지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이웃에게 꾸어주되 이자를 받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토빗은 이러한 일에 모범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빌려주었지만 돈놀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의 의무를 지켰습니다. 이자 대출은 죄악입니다.”(79쪽)

부자들의 악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왜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고 착취할까요? 그것은 ‘떼일까 겁나기 때문입니다.’(83쪽) 부자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재산이며, 재산을 불리는 것이 유일한 기쁨입니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증식합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의 고통과 눈물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재산을 증식할까요? 그 증식의 방법이 바로 이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굶지 않기 위해 돈을 빌립니다. 부자는 공짜로 빌려주지 않고 놓은 이자를 부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금에 이자가 붙고, 이자가 다시 원금이 되어 빌린 돈은 눈덩이처럼 커집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부자는 돈을 갚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녀들과 재산을 몰수해 버립니다. 그들은 사냥감을 찾는 ‘개’와 같고, 먹잇감을 찾는 ‘사자’와 같습니다.

부자들은 합법적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돈 때문에 산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경매에 부치는 것을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오직 돈을 늘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15장에서는 ‘돈놀이는 우상숭배’라고 규정짓습니다. 성경에도 형제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고 이방인에게만 이자를 받도록 했습니다.(신 23:20) 그러나 부자들은 형제들에게 이자를 받습니다. 그것도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높은 이자를 받습니다. 이것은 형제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자를 요구하는 것은 목을 조르는 것’이고, 고리대금은 ‘사람을 죽이는 것’(139쪽)입니다.

암브로시우스는 부자들만 경고하지 않고 돈을 빌리는 사람들도 경고합니다. 그들이 돈을 빌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돈을 빌립니다. 가난은 게으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흉작 등 불가피한 사정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더 나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탐욕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좋은 것을 누리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더 아름다운 옷을 입기 위해서 돈을 빌리기도 합니다. 속이는 자들은 가진 자의 돈을 빼앗기 위해 갖은 좋은 것을 보여주며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탐욕을 부채질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신의 한도를 넘는 소비를 시작합니다. 결국 빚을 지고 채무자가 되어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대가 이런 자산, 곧 신약성경과 구약성경 가운데서 잠을 잤더라면, 돈 욕심으로 사악한 대출의 구렁텅이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성경의 한 가지 증언만 받아들이고 그 사치스러운 잔치를 거절했더라면, 분명 그 사람도 천상 말씀에 애착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95쪽)

암브로시우스는 이자 놀이꾼을 ‘악마’(117쪽)라고 표현합니다. 마치 하와가 악마에게서 죄를 빌린 것처럼, 가난한 사람이 고리대금업자의 돈을 빌려 결국 자신의 몸과 영혼을 팔리고 맙니다. 바다가 모든 강줄기의 물을 삼키듯 이자 놀이꾼은 채무자의 모든 것을 집어삼킵니다. 저자의 말대로 ‘바다는 많은 사람의 편의를 위해 있지만, 돈놀이꾼은 모든 이의 파선을 위해 있습니다.’(135쪽)

3.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적용이자 결론을 내려 봅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채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환경에 맞게 빚을 지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빚을 져야 한다면 온갖 힘을 다해 빚을 갚고 그 올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돌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구제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확실하게 상급을 쌓는 방법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입니다.

“지상에서 주면, 천상에서 그것을 여러분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자를 포기하면, 큰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돈놀이를 그만두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하신 아버지의 상속자들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153쪽)

저자는 구제를 ‘악한 대출에서 선한 대출’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자는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빚을 갚기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천국에서 부유해지려면 가난해져야 합니다. 또한 빌려줄 때 되돌려 받기를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가난한 자나 과부의 그 어떤 것도 담보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돈을 꾸어주면 ‘동전이 아니라 왕국을 차지할’ 것이고,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173쪽)

우리는 모두 사랑의 채무자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빚을 갚는 방법은 이웃에게, 형제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품삯을 후하게 주고, 가난한 자들의 도움을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영혼이 굶주린 자들에게 말씀의 떡을 주어야 합니다. 저자가 마지막 부분에서 빚을 복음과 연결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사랑의 채무자이기 때문입니다. <토빗 이야기>는 외경이라는 낯선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는 토빗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가져야 할 삶의 태도와 방식을 알려 줍니다. 그것은 이타적 삶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경건한 삶입니다.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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