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장식이 달린 중세기풍 옷을 입은 이가 엄숙하게 등장해 경기장 행진을 마치면 황소가 입장한다. 이 황소는 입장 전 24시간 동안 빛이 들어오지 않는 암흑 속에 갇혀있었다. 극적 흥분감을 주기 위해서다. 붉은 천을 본 황소는 흥분해 날뛴다. 성질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흥분 상태에 이르면 인간은 작살 6개를 차례로 황소의 목과 등에 꽂는다. 고통 속에서 발버둥치며 흥분이 최고조에 이를 때 검을 깊숙이 찔러 죽인다. 인간 최소 7명이 등장해 황소 한 마리를 잡는 경기다. 경기의 주역인 마타도르, 작살을 꽂는 반데릴레로 두 명, 말을 타고 창으로 황소를 찌르는 피카도르 두 명, 여기에 조수 여러 명이 합심한다. 14세기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뒤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스페인 전통 문화 ‘투우’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13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의 한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사가 황소를 죽이기 전 눈물을 닦아준 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인간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의견과 황소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행위라는 평이 대립했다.

투우사 모란테 데 라 푸에블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세비야에 있는 마에스트란사 투우장에서 열린 경기에 최근 참여했다. 그는 이날 창 4개에 찔린 채 피를 흘리며 서있는 황소에게 다가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영상이 공개되자 실비아 바르케로 노갈레스 스페인 동물보호당 대표는 “피가 쏟아질 때까지 황소를 고문해놓고 눈물을 닦아줬다”며 “동정심조차 없는 인간”이라고 지적했다. 영상을 본 네티즌 대다수가 동물보호단체의 입장에 동의했다.

반면 투우 경기의 팬들은 황소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우 경기를 둔 동물학대 논란은 묵은 논쟁거리다. 스페인의 일부 주는 투우금지법을 제정하기도 했지만 2016년 스페인 헌법재판소에서 해당 법을 위헌이라고 봤다. 오랜기간 유지된 스페인 고유 문화 보존을 위한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스페인 17개 지자체 중 3곳이 투우를 금지한 상태다.

지난해에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UNCRC)에서 아이들의 투우 관람과 투우학교 재학 금지를 권고했다. 18세 미만 아동이 투우 경기를 관람하고 투우학교에 다닐 경우 폭력성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판단이다.

뉴시스

“한국 소싸움도 동물학대”

한국에도 민속경기인 소싸움이 있다. 뿔이 달린 소끼리 싸우는 경기다. 소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싸우다가 먼저 도망치거나 무릎을 꿇으면 경기가 종료된다. 소의 전성기는 7살로 700㎏정도 몸무게가 나갈 때다. 전성기 소들은 뿔치기, 뿔 걸이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20분가량 힘을 겨룬다. 상대 뿔에 찔려 살가죽이 찢긴 소들이 겁에 질려 대소변을 지리기도 하지만 관중석에서는 ‘찔러라’ ‘감아라’ ‘박아라’ 같은 함성이 터진다. 경기 중 사망하는 소도 있다.

매년 11곳에서 소싸움 대회가 열린다. 주최 측에 따르면 소싸움은 한국 고유 민속놀이이자 문화유산이며, 관광객을 확보할 수 있는 행사다. 현행 동물보호법이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소싸움은 예외다. 지자체장이 주관·주최하는 소싸움 대회는 합법적 민속경기다.

동물보호단체 입장은 다르다. 자연 상태의 소는 유순한 동물로 다른 소와 싸우지 않는데, 억지로 싸움을 붙이는 것 자체가 학대라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장기가 터지는 등의 상처를 입는 것 역시 동물학대로 보고 있다.

싸움소 훈련 과정도 학대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소싸움을 위해 무거운 물건을 끌거나 높은 곳에 매달려 버티는 등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한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온갖 보신용 음식을 먹이기도 한다. 풀을 먹고 되새김질을 하는 초식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동물보호단체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인간의 유희를 위해 자행되고 있어 폐지가 마땅하다고 피력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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