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외교안보 참모진 간 내분설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對)이란 접근법을 두고 인식 차이가 크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한동안 밀월관계를 이어오던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볼턴 보좌관의 ‘네오콘(신보수주의)’ 사고방식이 이제서야 근본적 간극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직무대행을 만난 자리에서 “이란과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6일 보도했다. 같은 날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이란과 무력분쟁을 벌이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을 원치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는 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우엘리 마우러 스위스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회담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할 것이냐’는 마우러 대통령의 질문에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I hope not)”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은 이란을 강하게 몰아붙여야 한다는 데는 뜻을 함께하고 있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와 제재 재개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뤄진 건 이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볼턴 보좌관은 초강경 ‘네오콘’ 출신으로서 경제적 압박을 넘어서 군사적 옵션을 통한 이란 정권 교체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볼턴 보좌관 등용 이후 미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강경 일변도로 치달은 것을 두고 CNN방송은 “존 볼턴은 트럼프의 귀에 전쟁을 속삭이는 자(John Bolton is Donald Trump's war whisperer)”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까지 볼턴 보좌관이 주도하는 이란 정책에 대체적으로 만족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유럽연합(EU)과 중국, 러시아의 반발을 무릅쓰고 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 혁명수비대를 해외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등 초강경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힘을 우선시하는 볼턴 보좌관의 네오콘식 사고방식에까지 찬동하는 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방을 거세게 몰아세우는 것은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함이지 군사력까지 동원해 무력화하는 건 고려 대상이 아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미군 해외 파병에 격렬한 반감을 드러내왔다. ‘미국 우선주의’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구호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북한을 강하게 압박함으로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성과를 냈다고 믿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방법론을 이란에도 적용할 구상을 내심 갖고 있었지만 볼턴 보좌관이 군사적 옵션까지 운운하며 지나치게 앞서나가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외교안보 참모들과의 불화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장관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WP) 보도를 두고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이한 의견이 제기되지만 마지막에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바로 나다. 아주 간단한 프로세스”라며 “모든 측면과 관점, 정책이 다뤄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나는 이란이 조만간 우리와의 대화를 원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첨언하며 행정부 내 초강경파들과 어느 정도 인식차가 있음을 암시했다. NYT는 이 문장과 관련, “이란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는 인식은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장관과 공유되지 않은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이란산 금속에 금수 조치를 단행하면서 “언젠가는 이란 지도자들과 만나 합의를 이뤄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란은 미국이 JCPOA에 복귀하기 전까지는 결코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외교적 해결’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일본 방문 중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란이 중동 지역 미군 병력을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에 대한 평가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이견이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보당국은 최근 이란이 순항미사일을 선박 2척에 나눠싣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볼턴 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 사진을 이란이 미군을 공격하려는 징후로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항공모함 전단과 전략폭격기가 중동지역에 급파됐다고 NYT는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해당 선박이 중동 지역의 전통 범선인 ‘다우(dhow)’를 개조한 것으로, 선박에서 곧장 지상의 목표물을 향해 미사일을 쏘아 올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군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페르시아만에서 널리 사용되는 다우선으로 위장하고 있다가 목표물에 기습 공격을 가하려는 목적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블룸버그는 이란의 대미 위협 평가를 둘러싼 정치권과 동맹국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미 국방부가 이 사진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NYT에 따르면 이 사진만으로 이란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분석이 행정부 내부에서도 적지 않게 나왔다고 한다. 특히 이 사진을 근거로 이란에 미군 병력을 파견하는 계획을 세우고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에 부분 철수 명령을 내린 데 대해 관리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고 한다.

행정부 관리들에 따르면 최근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엉망진창 상태인 중동 정세를 뒤바꿀 의지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인사 중 일부는 볼턴 보좌관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볼턴 보좌관의 직위가 위태로워진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볼턴 보좌관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베네수엘라 정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볼턴 보좌관이 주도하던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 계획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군사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달성 가능성이 더욱 낮아진 상황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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