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 접견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정부는 17일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의 방북을 허용하고,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다. 북한에 유화적 메시지를 전달, 남북 및 북·미 대화의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살리려는 의도로 관측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6월 말 방한을 앞둔 가운데 북한의 반응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개성공단에 투자한 기업인들이 지난달 30일 신청한 자산점검을 위한 방북을 승인하기로 했다”며 “정부는 우리 국민의 재산보호 차원에서 이번 기업인들의 방북을 승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또 “정부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해 나간다는 입장 하에 우선 세계식량계획(WFP),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의 북한 아동, 임산부 영양 지원 및 모자보건사업 등 국제기구 대북지원 사업에 자금 800만 달러를 공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방북 승인 및 대북 인도적 지원 결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방북과 대북 인도적 지원 결정은 지지부진한 남북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남북 및 북·미 대화는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과 이달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우리 정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해 움직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장소,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실질적 논의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4차 남북 정상회담을 공개 제안했다.

북한은 정상회담 제의엔 묵묵부답 하고, 이달 초 두 차례의 미사일 발사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로 남북 및 북·미 대화 경색 국면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우리 정부가 북한을 협상판에 복귀시킬 구체적인 카드를 빼든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이날 “남북 정상회담은 아니지만 대화채널을 열어서 북한 비핵화 문제 등에 대해 계속 대화를 하자는 확실한 초청장을 북한에 보낸 것 같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전에 북한의 입장을 듣고 남북 간 정리를 한 후, 북한 입장을 미국 측에 설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오른쪽)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10일 청와대 서별관에서 면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북한이 우리가 보낸 초청장을 받을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일각에선 남북 간 사전 교감이 충분치 않았다면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을 북한이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대화의 물꼬를 터야 된다고 절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며 “다만 남북 간 사전 교감이 충분치 않은 상태라면 북측이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방북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고, 그러면 우리 정부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변인은 “기업인들의 방북이 성사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 나갈 것”이라며 “필요한 북측과의 그런 접촉, 협의 등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유창근 부회장과 김서진 상무가 17일 서울 영등포구 개성공단기업협회에서 TV 생중계 중인 통일부 브리핑에서 9차 방북 신청 승인이 발표되자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방북 성사 여부가 북한의 대화 재개 의중을 읽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방북을 받아들인다면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가 다시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맞물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전까지 북한을 협상판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데 한·미가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변인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방북에 대해 “미국도 우리 측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9번째 신청 끝에 방북이 승인된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만시지탄이지만 크게 환영한다”며 “실질적인 점검이 가능한 방문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2014년 개성공단 전면 가동 중단 이후 입주 기업인들은 자산점검을 위한 방북을 총 9차례 신청해왔다. 정부는 우리 국민의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방북이 승인됐으며, 각종 자산에 대한 육안점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2017년 WFP와 유니세프에 남북협력기금에서 800만 달러를 공여하기로 의결했지만 대북 제재 분위기 속에서 집행은 하지 못했다. 정부는 이날 공여를 결정한 800만 달러에 대한 사용 계획안을 WFP 및 유니세프와 수립한 후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 의결을 거쳐 빠르게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