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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많고 많은 기인 중에 제일 잘난 기인


아프리카 프릭스 탑라이너 ‘기인’ 김기인은 데뷔한 지 채 1년이 안 돼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결승 무대를 밟았다. 여름에는 ‘탑솔의 나라’인 한국에서 경쟁을 뚫고 아시안게임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제는 그를 세계 최고의 탑라이너로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마추어 시절부터 유명세를 쌓아온 또래 유망주들과 달리, 그의 데뷔 전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2017년 서머 시즌 도중 에버8 위너스의 입단 테스트를 통과해 데뷔했다는 것 정도가 유일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이 탑라인의 황소개구리는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다가 번개처럼 나타난 걸까.

국민일보는 김기인을 직접 만나 기인(奇人)의 감춰진 이야기를 파헤치기로 했다.

-다른 또래 선수들과 달리 아마추어 시절 행적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고등학생이었던 2017년 여름, 함께 게임을 하던 지인의 권유로 아마추어팀 테스트를 봤다. 1차 테스트에 붙었지만 집이 멀어 탈락했고, 이후 에버8 위너스 입단 테스트에 지원해 합격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채팅을 하지 않았고, 프로게이머들의 친구 요청도 받지 않았다. 혼자서 게임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솔로 랭크 소환사명은 같았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에는 다른 장래희망이 있었나.

“이전까지는 딱히 꿈이 없었다.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꿈이 없어서 프로게이머가 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냥 게임을 좋아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학창 시절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였다.

LoL을 접하기 전에는 ‘겟앰프드’ 같은 게임을 했다. LoL은 시즌3부터 시작했다. 첫 배치고사에서 실버2 티어를 받았다. 그해 시즌은 플레티넘 티어로 마쳤다. 시즌4쯤부터 점수가 올라 프로게이머들을 만났다.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느꼈다.”

-다재다능한 선수의 대표 격인데, 포지션은 왜 탑라이너를 골랐나.

“아무 생각 없이 나서스를 하다가 탑라이너로 입문했다. ‘흡수의 일격(Q)’을 통해 스택을 쌓는 것과 그 스킬 모션이 재미있었다. 이후 탑라이너와 미드라이너를 두루 하다가 프로게이머로 데뷔하면서 포지션을 정했다. 탑라이너의 재미는 1대1 성향이 강하다는 점, 운영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 프로게이머가 된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반대하지 않으셨나.

“처음에는 ‘굳이 프로게이머를 해야 하느냐’고 하셨다. 하지만 2018년 아프리카에 입단하고, 스프링 시즌에 좋은 성적을 낸 뒤에 부모님께서도 많이 응원해주신다. 다른 프로게이머 형들한테도 물어봤는데 보통 처음에는 많이들 반대하시고, 나중 가서 응원을 해주신다고 하더라.”


-데뷔 당해년인 2017년 오프시즌, 아프리카 프릭스에 입단했다.

“처음 아프리카에 들어왔을 때는 아무래도 위축되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기존에 있던 선수들이 전부 경력 많은 선배였다. 처음에는 선수 생활도 오래 하고, 유명한 선수들과 함께한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그래도 함께 생활해보니 좋은 형들이었다.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제법 좋은 성적을 냈다. 2018년 스프링 시즌 준우승, 서머 시즌 3위를 기록했다.

“입단 직전 시즌에 아프리카가 5위에 올랐다. 제가 들어왔어도 5등 근처에 머무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상보다 성적이 잘 나와 기뻤다. 여기 들어온 이후 개인 기량이 올랐다기보다는 팀 게임에 대해 많이 배웠다. 배운 그대로 하다 보니 성적이 잘 나온 것 같다.”

-팀 게임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나.

“솔로 랭크에서는 상대 정글러가 안 보여도 감으로 플레이하는 경향이 있다. 팀 게임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한 번 죽으면 눈치도 보이고, 정글러가 화를 낼 수도 있다. (웃음) 솔로 랭크와는 많이 다르다. 요즘도 프로 생활하면서 팀 게임을 많이 배우고 있다.”

-그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그건 정말 운이 좋았다. 팀에서 국가대표를 뽑는 자리가 있으니 한번 나가보라고 권유했다. 당시 ‘칸’ 김동하가 우승자였고, 나는 준우승자에 신인이어서 큰 기대를 안 했다. 국가대표팀 관계자들과 면담 후에 선발됐다. 지금도 그 선택은 잘한 것 같다. 실력이 많이 늘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실력이 늘었다는 것인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아시안게임 당시에는 제 머릿속에 확 꽂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팀에 복귀한 뒤 경기를 치르다 보니 기량이 저절로 늘어있더라. 뭘 배웠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복귀 후부터 게임이 조금씩 더 잘 되기 시작했다.”

-늘 자신의 목표라고 밝혔던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도 진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재밌었다. 국내 말고 해외에서 개최하는 롤드컵에도 나가보고 싶다. 그동안 LCK가 세계 최고 무대라는 말이 많았다. 내가 LCK에서 뛰니 상대가 나보다 못할 거란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들이 내 예상 이상으로 잘하더라. 그때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한테 실망을 많이 했다. 지금은 해외 탑라이너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어떤 선수들이 예상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었나.

“로열 네버 기브업(RNG)의 ‘렛미’ 얀 준제가 한국에서는 ‘탱커만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붙어보니 생각보다 잘했다. 같은 팀의 미드라이너 ‘샤오후’ 리 위안하오도 라인 스와프(line swap) 과정에서 맞대결을 펼쳤는데 정말 잘하는 선수였다.”

-대회 8강에서 탈락한 건 아쉬움이 남았을 법도 하다.

“최소 목표를 4강으로 잡았는데 8강에서 떨어져 아쉬웠다. 나 자신에게 실망도 했다. 만약 두 번째 롤드컵에 나간다면 사전에 상대를 최대한 분석해야 할 것 같다.”


-요즘 어느 리그든 ‘해당 지역의 기인’이 하나씩 버티고 있다. 왜 그런 것 같나.

“아무래도 제 소환사명이나 이름이 특이해서 그런 거 아닐까. 어느 나라에든 ‘기인’이 있다는 게 재미있다. 저를 좋게 평가해주시는 거 같아서 감사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원조 기인’이 ‘어린데 잘하는 탑라이너’의 대명사여서 그런 것 아닐까. 가장 인상 깊었던 ‘기인’이 있나.

“개인적으로는 ‘중국의 기인’인 징동 게이밍(JDG) ‘줌’ 장 싱란이 인상 깊었다. (웃음) 갱플랭크를 플레이하는 영상을 봤다. 화약통을 터트리는 기술이 눈에 띄더라.”

-‘줌’의 ‘기인도르’ 수상을 축하하고, 올해 얘기를 해보자. 스프링 시즌 성적이 아쉬웠다.

“제가 작년까지는 막내였다. 그러다 보니 올해 동생들을 대하는 게 조금 불편하더라. 그래서 많이 아쉬웠다. 저도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배울 게 많았다. 부담되는 것도 있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한 것도 있었다.

‘유칼’ 손우현이 들어왔을 때 밖에서 기대가 많지 않았나. 대회에서 제 기량이 나오지 않았고, 팀을 향한 관심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자 팀원들의 자신감이 떨어졌다. 내려간 자신감이 다시 올라오지 않아 악순환이 계속됐다. 이러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다. 오프시즌 동안 ‘하나처럼 움직이자’는 피드백을 했다. 요즘은 팀워크가 많이 회복됐다.”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발전 방향을 잡고 있나.

“작년에 혼자 게임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올해는 팀적으로 많이 움직이는 스타일이 되고 싶다. 원래는 제가 조금 더 이득을 보고 싶어 했는데, 이제는 제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팀이 이득을 보는 플레이를 하고 싶다. 롤 모델을 두고 따라가는 것보다는 제가 마음 가는 대로 플레이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스프링 시즌에는 좋은 활약을 펼쳐서 ‘71인분’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팬들께서 좋게 봐주셔서 기쁘다. 팬이 있어야 프로게이머가 있다고 생각한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LoL은 혼자서 잘한다고 해서 돋보일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팀이 잘 받쳐줘야만 눈에 띌 수 있다.”

-시즌 도중 기자실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상대 정글러가 바텀에 보였다는 이유로 우리가 탑에서 이득을 봤을 때, 바텀이 슈퍼 플레이로 살아남기는 힘들다. 이러면 칭찬은 탑이 독차지하지만 사실은 양쪽이 잘한 거다. 이런 경우에는 바텀이 눈에 띄기 힘든 게 사실이다.”

-서머 시즌 아프리카와 김기인의 목표는 무엇인가.

“스프링 시즌에 부진했는데, 서머 시즌에는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롤드컵 진출을 최우선이자 최종 목표로 삼겠다. 힘든 목표겠지만 롤드컵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프로게이머 ‘기인’으로서의 목표와 인간 김기인으로서의 최종 목표는.

“제 소환사명을 들었을 때 ‘아, 저런 애도 있었구나’ ‘잘하는 선수였지’하고 기억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인간 김기인으로서의 목표는 아직 없다. 마음 가는 대로 살려고 한다. 다만 하기 싫은 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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