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1898∼1958·사진)을 거론한 이후 논란은 서훈 여부를 둘러싼 여론전으로 번지고 있다. 일부 민간단체들은 오는 8월 김원봉 서훈을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을 편다는 계획을 내놓는 반면 보수야당은 반대 목소리를 한껏 키우고 있다.

김원봉 서훈에 대한 정당성 여부를 떠나 서훈이 이뤄지려면 관련 법과 보훈처 내부 공적심사기준을 변경하는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한다. 상훈법 제8조는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한 사람으로서 형을 받았거나 적대지역(敵對地域)으로 도피한 경우’를 서훈 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김원봉 서훈은 이 조항을 고치지 않고서는 이뤄지기 어렵다. 김원봉은 1948년 월북해 국가검열상에 올랐으며, 노동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정권 고위직을 지냈기 때문이다. 김원봉이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 수탈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 등에 앞장섰으며 조선의용대를 이끌며 무장투쟁을 벌인 공로는 확인됐지만, 월북한 뒤 북한 정권에 기여한 경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김원봉이 58년 북한에서 숙청된 것은 사실이지만, 숙청 사유가 ‘남침 반대’ 때문이라는 설은 증명된 바 없다. 서훈 원칙을 명시한 상훈법 제2조는 ‘훈장(勳章) 및 포장(褒章)은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한다’고 돼 있다.

현재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선정 심사기준으로도 김원봉 서훈은 불가능하다. 지난해 개정된 이 기준은 사회주의 활동 경력을 포함해 광복 후 행적 불분명자도 포상할 수 있도록 했지만 ‘북한 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9일 “현행법상 (서훈) 기준을 충족하지 않아 서훈 여부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문 대통령 발언 이후 ‘김원봉 서훈에 찬성한다’는 목소리는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이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등 민간단체로 구성된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오는 8~11월 김원봉 서훈을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추진위 측은 “김원봉은 조선의열단 단장으로 많은 공적이 있다”며 “이념논쟁에 휘말려 서훈을 받지 못한 불합리성을 알리는 범국민 홍보 및 서명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 기념식과 특별사진전, 공연 등에 24억원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 가운데 1억5000만원을 김원봉 서훈 대국민 서명운동에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만 정부 예산이 서명운동에 지원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이 단체 관계자가 보훈처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지만 보훈처 담당자가 올해 관련 예산은 이미 다 책정됐기 때문에 예산을 지원하기 어렵다고 답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원봉 서훈 문제는 정쟁으로 비화된 모양새다. 자유한국당은 김원봉 서훈 논란이 촉발된 데 대한 책임을 문 대통령에게 돌리며 맹비난했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문 대통령이 북유럽 순방을 위해 오늘 출국한다”며 “불쏘시개 지펴 집구석 부엌 아궁이 있는 대로 달궈놓고는, 천렵(川獵·냇물에서 고기를 잡는 일)질에 정신 팔린 사람마냥 나 홀로 냇가에 몸 담그러 떠난 격”이라고 했다. 민 대변인은 “대한민국 정체성 훼손, ‘역사 덧칠’ 작업으로 갈등의 파문만 일으키더니 국민 정서 비(非)공감의 태도로 나 홀로 속편한 ‘현실 도피’에 나섰다”고 말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문 대통령의 추념사는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를 위한 고도로 기획된 제2차 작전의 시작”이라며 “보수를 친일파, 독재자의 후예, 기득권층이라는 틀에 가두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자유한국당이 북유럽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에게 쌍욕보다 더한 저질 막말을 퍼부었다”며 “이걸 공당의 논평이라고 내놓다니, 토가 나올 지경”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정상 외교를 ‘천렵질’이라고 비난하는 자유한국당, 제 정신인가. 과연 집권 경험이 있는 정당 맞나. 아예 집권을 포기한 것인가”라며 민 대변인의 당직 박탈을 요구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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