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경찰이 ‘고유정 사건’을 통해 수사의 총체적 부실과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경찰이 제주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고유정(36)에 대해 구체적인 범행동기도 밝혀내지 못한 채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게 된 것이다.

특히 고씨를 지난 1일 긴급체포한 후 12일 동안 수사를 진행하며 범죄혐의를 입증해야 할 직접증거인 피해자의 시신도 아직 찾지 못한 상태다.

제주동부경찰서는 11일 ‘고유정 사건’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고씨를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 등의 혐의로 12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를 통해 피해자인 전 남편 A씨(36)는 지난달 25일 오후 8시부터 9시16분 사이에 고씨에게 흉기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펜션 안에 흩어진 피해자 혈흔의 형태를 분석한 결과 살해 당시 최소 3회 이상 공격을 받은 흔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키 180cm, 몸무게 80kg의 건장한 체구의 A씨에게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을 먹인 뒤 흉기로 찌르자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도망가는 A씨를 쫓아다니며 살해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고씨가 지난달 17일 충북 청주에 있는 한 병원과 약국에서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는 졸피뎀을 처방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특히 고씨가 공범 없이 단독으로 저지른 계획범죄에 의한 살인으로 결론지었다. 고씨는 지난달 18일 배편으로 본인의 차를 갖고 제주에 들어오면서 시신훼손을 위한 흉기를 미리 준비했다.

범행 사흘 전인 지난달 22일에는 제주시 한 마트에서 칼과 표백제, 베이킹파우더, 고무장갑, 세제, 세숫대야, 청소용 솔, 먼지 제거 테이프 등을 구입했다. 범행 전부터 살해와 시신 훼손, 흔적을 지우기 위한 세정작업까지 준비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고씨는 또 지난달 28일 전남 완도행 여객선을 타고 제주를 빠져나가는 도중 배 위에서 유기하지 못한 남은 시신을 2차로 훼손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도구를 주문해 경기도 김포시 소재 가족의 아파트로 배송한 것도 확인됐다.

경찰은 고씨가 여객선 위에서 1차로 크기가 작은 시신을 바다에 유기하고, 김포시 소재 아파트에서 남은 시신을 2차로 훼손한 뒤 쓰레기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고씨가 이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시신 일부를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 종량제봉투를 버리는 모습을 CCTV 영상으로 확인했다. 이어 쓰레기 운반경로를 추적한 경찰은 인천 서구의 재활용업체에서 3㎝ 미만의 뼛조각을 다량 발견했다. 하지만 뼛조각의 훼손 정도가 심하고 섭씨 500~600도 이상의 고열에서 소각된 상태여서 정확한 신원 확인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 고씨의 휴대전화 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확인결과 고씨가 피해자를 만나기 전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과 살인 도구의 종류, 시신 훼손·유기 방법 등을 다수 검색한 것도 확인했다.

고씨의 구체적 범행동기를 밝히지 못한 경찰은 다만 고씨가 A씨와 자녀의 면접교섭권으로 인해 재혼한 현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깨질 수도 있다는 극심한 불안감으로 인해 A씨를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고씨의 조사과정에서 별다른 정신적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고, 병원 기록도 확인한 결과 특별한 정신질환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번 수사 과정에서 범죄수사의 기본인 현장보존을 하지 않아 증거물이 훼손되고, 범행이 이뤄진 펜션 인근의 CCTV 영상은 피해자 유족이 찾아 경찰에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난을 받아왔다.

범행이 이뤄진 펜션의 주인이 강하게 반발한다는 이유로 현장검증도 하지 못하고, 범죄현장도 보존하지 않은 탓에 펜션 내 혈흔 등 증거물을 제대로 수집하지 못했다.

경찰은 사건 초기 고씨의 수상한 모습이 찍힌 인근 단독주택의 CCTV는 확인하지 못한 채 모형 CCTV만 발견하고 돌아섰다. 이로 인해 고씨는 살해한 남편의 시신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 두 개를 차량 트렁크에 싣고 28일 전남 완도행 배편으로 제주를 빠져나왔다.

적극적인 수사를 회피한 경찰로 인해 사건 발생 3일 후 고씨가 제주~완도행 여객선 안에서 시신 일부를 바다로 유기하고 경기도 김포까지 이동한 뒤 2차로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당시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더라면 경찰은 고씨가 유기하려던 시신을 찾아 범행전모를 사전에 밝힐 수 있었다. 결국 경찰의 초동수사에 의문을 가진 A씨의 남동생이 실종신고 나흘 뒤인 지난달 31일 펜션 인근 단독주택의 CCTV 영상을 확보해 경찰에 넘기면서 다음날 충북 청주에서 고씨가 긴급체포됐다.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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