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가 12일 전남 순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여순사건 재심 재판의 쟁점’에 대한 시민 설명회를 갖고 여순사건 무고 희생자들에 관한 기록을 공개했다. 김영균 기자

법원의 ‘여순사건재심’을 앞두고 여순사건 당시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이 있었는지 여부를 가리는 기록들이 줄줄이 공개되고 있다.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공동집행위원장 주철희)는 12일 전남 순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여순사건 재심 재판의 쟁점’에 대한 시민 설명회를 가졌다.

여순사건재심대책위는 이날 당시 재판이 존재했던 점을 알 수 있는 명령서와 이를 기사화한 신문기사 등 다양한 기록을 공개했다.

대책위는 이 사건에 대해 그동안 9차례의 군법 회의와 이를 기록한 신문기록, 미국 국방부 문서, 사형인수를 기록한 미군 자료, 판결 명령서인 명령 3호와 명령 5호 존재, 외신기자의 보도사진과 사진 설명의 일치 여부, 외신기자의 회고록 등 기록들을 제시했다.

주 위원장은 “당시 기사 기록에서 희생자가 사형을 당하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거나 애국가를 부르면서 숨을 거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이를 보고 어떻게 국가에 반역을 저지른 죄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미군 자료도 총 군법회의 수와 1700명의 군법회의 회부 및 사형 등의 기록을 남겼으며, 민간인을 재판하는 호남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 등 군사재판이 실제 존재했음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 위원장은 이와 함께 “민간인 재판은 판결 언도를 받고 확인 장관의 승인을 거치며 여기에서 감형이 이뤄진다”면서 “28명의 사형 선고 중 실질 사형은 12명이 받았고 나머지는 감형됐던 사실이 자료로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민간인을 군법회의 회부때 기소장을 반드시 가족에게 송부해줘야 하는데 누구도 받은 적이 없다”며 “그래서 유족들은 군사재판이 있었던 사실을 몰랐고 지금껏 알 수 없어서 항변을 못했지만, 한 유족이 명령3호를 발굴해 군사재판이 있었음이 알려지게 됐다”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또 “당시 군사재판이 있었다는 사실은 4차 군법회의 판결언도까지 언론에 보도됐으나 이후 9차 군법회의까지 보도되지 않는 것을 봤을 때 계엄령에 의한 언론통제가 있었음이 확인 된다”며 관련 자료를 제시했다.

주철희 위원장은 “명령 3호, 명령 5호만 보더라도 재판이 있었던 사실이 설명되고, 희생자가 범죄사실과 죄과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는 사실로도 재판의 근거가 된다”면서 “사법절차의 오류나 판결서의 보관 등 모든 사법적 작용의 책임은 국가에 있고, 국가의 잘못을 국민에게 전가할 수 는 없기 때문에 ‘공소기각’이 아닌 올바른 재심재판을 바란다”고 부연했다.

최경필 재심대책위 집행위원은 “제주 4·3재심처럼 여순사건 재심도 근거자료가 없어서 ‘공소기각’이 결정되지 않도록 70여년 전 군사재판 기록을 확보하는 데 노력했으며 정부 창고, 미군 자료, 언론보도 등 자료를 정부 창고 등지에서 찾은 자료를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은 “여순사건 재심 재판의 쟁점은 실재 군사재판이 있었는지와 민간인 체포·구금이 절차법에 따라 정당했는지 여부 등인데 사실로 인정할 만한 자료로 확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제주 4·3 재심 재판의 경우 재판을 이끌어갈 수 있는 과거 근거자료가 없어서 ‘공소기각’ 결정 난 바 있다. 공소 기각 결정은 유무죄를 따지는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희생자의 명예회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 때문에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들과 이를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는 법원의 재심을 통해 국가공권력에 희생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으로 사실에 근거한 기록들을 수집해 재심 앞에 공개한 것이다.

한편 여순사건 재심은 오는 24일 오후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린다. 재심대책위원회는 재판 전 발굴하거나 수집한 근거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순천=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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