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거침없는 청년 친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본인도 ‘흙수저’였지만 굴하지 않고 꿈을 이뤘다면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 세대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데요. 당내에서는 ‘외연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행보라는 호평이 나오지만 실제 청년들이 하는 이야기는 좀 다릅니다. 황 대표의 ‘흙수저’ 언급이 불편하다는 겁니다. 황 대표의 ‘흙수저 희망론’이 뭐가 문제라는 걸까요?

◆황교안 ‘흙수저 롤모델’ 자처했지만 반응은?

황 대표는 12일 부천대학교 대학일자리센터를 방문해 취업준비생 신분의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 대학생은 황 대표에게 “흙수저란 말에 청년들이 상처받기도 한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떳떳하고 인정받고 성공하는 사회를 바란다”면서 한국당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황 대표는 “나도 흙수저 중의 흙수저였다. 가난해서 도시락도 못 싸갔고, 등록금이 없어 명문고도 못 갔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렇지만 국무총리를 했고, 지금은 자유한국당의 대표가 됐다. 젊은이들이 ‘삼포 세대’, ‘오포 세대’다 얘기하는데 포기하면 안 된다”며 “해보겠다는 열정을 갖고 도전하면 길이 뚫릴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황 대표는 취임 100일을 기념에 열었던 ‘황교안×2040 미래찾기’ 토크콘서트에서도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언급하며 “환경보다 더 큰 힘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황 대표의 자서전인 ‘황교안의 답-황교안, 청년을 만나다’에도 이 같은 ‘흙수저’ 경험은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청년 세대와 정치인 황교안의 접점에는 언제나 ‘흙수저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청년 세대는 이런 메시지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수도권 4년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박정제(28)씨는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수저계급론으로 분출됐는데 여기에 나도 ‘흙수저’였으니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청년 세대에 뿌리박혀 있는 정서를 파악하지 못한 말”이라고 혹평했습니다. 한국당의 한 청년당원도 “황 대표의 태생이 ‘흙수저’였더라도, 청년들은 황 대표의 과거가 아닌 성공한 현재를 바라본다”며 “결국 황 대표의 아들딸도 금수저 아니냐. 흙수저 청년들의 경쟁 상대는 황 대표가 아니라 그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흙수저 황교안’과 ‘흙수저’ 청년들은 달라

경기고 재학 시절의 황교안 대표(왼쪽)


사실 기성세대가 ‘흙수저’였다는 것과 오늘날 청년 세대가 ‘흙수저’라는 것은 시대적, 사회적 맥락이 전혀 다릅니다. 황 대표는 한국전쟁 종전 4년 후인 1957년에 태어난 ‘전후 세대’입니다. 전쟁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인구의 절반에 달했던, 즉 국민 대다수가 ‘흙수저’였던 시대입니다. 온 국토가 폐허가 된 탓에 대물림될 부나 학력, 지위도 없었습니다.

황 대표가 도시락도 못 싸가며 어려운 학업 생활을 이어갔다는 1970~80년대는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던 산업화 시기로 계층 간 이동이 활발히 일어났던 때입니다. 해방 이후 교육의 기회가 균등하게 확대된 덕에 전국의 수많은 ‘개천’에서 ‘용’이 나왔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황 대표와 비슷한 흙수저 성공 신화를 이뤄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1957년 출생), 고 노무현 전 대통령(1946년 출생) 등도 이 당시에는 신세대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유경준 전 공주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임금 소득 지니계수는 1976년 0.394에서 1993년 0.289로 24%나 감소했습니다. ‘흙수저’로 태어났어도 자신의 힘으로 ‘계층의 사다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반면 요즘 20·30세대들에게는 ‘개천에는 피라미와 미꾸라지만 가득하다’는 좌절감이 팽배합니다. 아버지 세대의 부와 학력, 사회적 지위가 자식 세대로 대물림되고 있다는 실증적 자료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이우진 고려대 교수는 학력과 소득 불평등의 절반 이상이 개인의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도 경제적으로 하위 계층에 속한 학생들의 국제 학업성취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통계를 내놓았습니다. 흙수저 학생들이 공부를 잘해서 성공할 확률이 줄었다는 의미입니다.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재학생의 70%가 국가장학금 혜택이 필요 없을 정도의 ‘있는 집’ 자식들이라는 한국장학재단의 자료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전문가들은 ‘계층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교육의 기회가 불평등해졌다고 분석합니다. 사교육의 격차가 학벌의 격차로 이어지고 학벌이 곧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면서 계층 사이에 공고한 ‘벽’이 생기게 됐다는 겁니다. 게다가 불로 소득 상승률이 임금 소득 상승률을 뛰어넘으면서 노력으로 자본의 격차를 극복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황 대표와 청년 세대 모두 ‘흙수저’라는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쪽은 오늘날의 이야기를, 다른 한편은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말이 가리키는 시대가 다르니, 소통이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할 수 있다. 나도 어려웠다"는 말의 공허함…한국당 청년들과 눈높이 맞춰야


한국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꼰대 탈출 프로젝트’를 가동 중입니다. 젊어지겠다며 당색(黨色)을 빨간색에서 ‘밀레니얼 핑크’로 바꾸고 각종 위원회와 조직을 만들고 있지만, 2·30세대의 반응은 시원치 않습니다. 여론조사 업체인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당의 10~20대 지지율은 6%, 30대 지지율은 9%에 불과했습니다.

당 안팎에선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부터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노력을 강조하는 기성세대가 ‘노오오력’을 강요하는 꼰대로 조롱받는 시대, ‘흙수저 롤모델’을 자처하는 황 대표의 접근 방식이 지나치게 올드하다는 겁니다. 당 관계자는 “의지만 갖는다고 청년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당의 전반적인 시스템과 사고관을 젊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청년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무작정 나도 어려웠다는 식의 추상적인 말들은 청년들의 상처와 정치 불신만 더 키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 20대 청년은 ‘그때 그 시절’을 얘기하는 황 대표를 향해 “청년들의 불안은 이미 성취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성취해야만 하는 것으로부터 온다. 나무로 비유하자면 가지를 어떻게 뻗어 나갈가에 관한 것”이라며 “‘가지’를 얘기하는 청년들에게 ‘뿌리’를 말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흙수저’라서 힘들다”는 청년 세대의 고민에 황 대표가 앞으로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

심우삼 김용현 기자 s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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