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백정 해방운동 지도자’ 사무엘 무어 선교사가 세운 동막교회







조선은 양반, 중인,상인, 천인 네 계급의 신분사회였다. 천인 계급 가운데 특히 백정은 인도 카스트계급 제도의 가장 아래 계급인 불가촉 천민과 다를 바 없었다. 이름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성리학적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는 복음이 조선 땅에 미쳤다. 남자와 여자가, 양반과 상놈이 뒤섞여 교제를 하고 다 같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한 뒤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랐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백정도 하나님 백성으로 인정하고 축복했다. ‘백정 전도의 개척자’, ‘백정 해방 운동의 지도자’로 불리는 사무엘 무어 (1846-1906) 선교사는 매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46세에 부인과 함게 입국했다. 사무엘 무어 선교사는 백성 속에 깊숙히 들어가 선교하겠다며 초가 민가에 살며 쌀밥과 김치를 먹으면서 조선말을 배워 매일 신도들과 함께 시가 전도를 하였다. 사무엘 무어 선교사는 상인및 천인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언어 습득이 빨랐다.

사무엘 무어 선교사가 입국 수주 만에 매일 평민, 천민 수십명에게 복음을 전하던중 장티프스에 걸려 사경을 해매고 있는 박가라는 백정을 에비슨 의료 선교사에게 알려 목숨을 구했다. 이름도 없던 백정 박가가 훗날 기독교 인권운동가 박성춘(1862-1933)장로이고 그의 아들 봉주리는 한국인 첫 양의 박서양(1887-1940)이다. 일반 교인들이 백정과 예배를 함께할 수 없다고 했으나 사무엘 무어 선교사는 “교회는 신분 위세 부리는 곳이 아니다.”라고 나무랐다. 1898년 10월 이상재등 독립협회 지도자 구속등에 항의해 종로에서 민중대회가 열렸다. 그들은 국정개혁을 촉구했다. 이 민중대회의 첫번째 개막 연설자가 박성춘이었다.

샤무엘 무어는 선교여행을 떠나 마포나루 부근에 1900년 초가 7칸으로 동막교회를 개척했다. 동막교회는 독을 짓는 이들이 많이 사는 독막의 변음이 동막이다. 지금의 동막교회는 1906년 서울 마포구 대흥동 운현궁 소유터에 자리했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 동막교회 곽재욱 목사는 “ 사무엘 무어 선교사의 근본을 해치지 말라는 당부를 늘 기억하고 우리끼리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균형과 조화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 같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도록 열린 예배당을 지향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강민석 선임기자 kang1960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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