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욱 에레츠의 묵상일기] 디오그네투스에게


1. 서론 : 초대 기독교의 상황과 변증

<디오그네투스에게>는 설명이 필요한 책입니다. 먼저 이 책의 저자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이 2세기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다분합니다. 이 시기는 소위 속사도들과 변증가들의 시대로 불리는 시대로 초대교회가 내외부로 혼란과 핍박을 겪는 시기였습니다. 초대교회를 나눌 때 니케아 공의회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눕니다. 이 책의 저작 시기는 니케아 공의회 이전 시대 초기에 속합니다. 마지막 성경인 요한 계시록이 AD 90(91)년쯤에 기록된 것을 감안한다면 이 책은 그 후 2-80년 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의 순교를 불러온 네로의 핍박이 초대교회 박해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핍박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다른 한편으론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는 주목할 만한 세력이 규합된 것으로 보였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한 세기가 가기 전에 기독교는 급속하게 성장한 것입니다.

급속한 성장은 몇 가지에서 문제들을 야기(惹起) 시킵니다. 하나는 제대로 된 교육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신학적인 난제들이 돌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난제들은 오히려 교회 성장에 걸림돌이 되기보다 교회가 체계를 세워가고 바른 교리를 세워 나가는 디딤돌이 됩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일어나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오해는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교부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변증하기 시작합니다. 변증은 대체로 두 주제에 대해 다룹니다. 하나는 기독교 자체에 대해 다룹니다. 당시 기독교는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비밀스러운 이교 집단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형제와 자매로 통했기 때문에 사회적 통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성만찬(아가페)이 인육을 먹는다는 등의 가당치도 않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의도적으로 악하게 평하기도 했지만 교회가 핍박을 피하고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모였기 때문에 소문은 더욱 과장되고 날조되어 퍼져 나갔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핍박의 이유로도 작용하여 적지 않은 고통은 안겨 주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해가 되는가 득이 되는가의 문제로 변증했습니다. 무명의 교부에 의해 기록된 <디오그네투스에게> 역시 변증서에 속하며,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대외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2. <디오그네투스에게>에 대한 해설

이 책의 출처는 모호합니다. 1592년 앙리 에티엔느(Henri Etienne)가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됨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출간되자마자 학자들에게 비상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초대 변증가들의 사상과 다르지 않았지만 문체는 탁월한 문학적 소양을 가진 자만이 쓸 수 있는 우아하고 매혹적인 표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기독교 신앙을 소개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최초 발견은 15세기 초, 콘스탄티노플에 공부하기 위해 갔던 프랑스의 청년이 이것을 발견하고 헐값에 구입했습니다. 이것을 도미니코회 소속의 어느 신학자에게 넘겨줌으로 출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안타깝게 이 문헌은 1870년 전쟁 때 소실되고 말았지만 다행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책을 연구한 덕분에 내용은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책의 문체나 내용은 2세기 중후반의 교부 문헌과 거의 흡사합니다. 이레니우스나 로마의 히폴리투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등과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부 문헌과 다르게 다른 교부를 인용하거나 시대를 추측할 수 있는 인명 등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난제가 이 편지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편지 서두에 ‘...에게’라는 표현은 고대 서신서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데오빌로 각하에게’라는 서두로 시작하는 누가복음도 그런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3. 책의 구조와 내용

다른 교부들의 변증서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에 비해 이 책은 감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교부 문헌 보다 덜 이성적이지만 더 감동적인 책이 된 것입니다. 그의 문체는 바울 서신 등에 깊이 천착해 있어서 바울 서신을 읽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 책의 중요성은 원시적 교회에서 체계를 갖추어가는 교회로의 과도기적 성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실제로 2~3세기는 교회가 완전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시기이며 성경이 정경으로 채택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바울 서신에 정통해 있으며, 바울의 주장인지 자신의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힘들 만큼 바울 서신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당시 초대 교회 안에 바울이 갖는 권위가 작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정확한 내용과 구조를 구분하기는 모호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책은 1장부터 12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전반은 이교도와 유대인에 관해 서술한 다음 기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후반부에서 기독교가 신앙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 나갑니다. 마지막 두 장에서는 하나님의 신비와 구속에 대한 서술을 마무리합니다. 개략적으로 아래와 같이 구분하면 됩니다.

1. 1~4장 이교도와 유대교 비판과 기독교의 우월성
2. 5~6장 그리스인들의 삶의 방식
3. 7~9장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해설
4. 10~12장 하나님의 신비와 권고

1. 1~4장 이교도와 유대교 비판과 기독교의 우월성

1장은 디오그네투스의 질문을 언급합니다. 이 책은 디오그네투스라는 어떤 인물에게 답변하기 위해 쓴 책인 것입니다. “귀하는 그리스도 신앙에 대해 알고자 하는 열성으로 다음과 같은 명백하고 정확한 질문을 해 왔습니다.”(41쪽) 질문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그리스도의 신앙이 대상으로 하는 신은 어떤 존재인가?
- 그리스도인이 바치는 예배 행위는 어떤 것인가?
- 그리스도인이 보여주는 세상의 경멸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그리스도인들은 국가 제사와 유대인들의 행위도 따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보여주는 위대한 사랑의 정체는 무엇인가?
- 기독교는 왜 갑자기(늦게) 나타났는가?

이것은 기독교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치환시켜도 되겠습니다. 즉 교리상으로 기독교는 무엇인가? 와 기독교인들이 삶의 방식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습니다. 이 질문들은 앞으로 전개될 책의 전반적인 흐름과 내용을 결정합니다. 저는 이 저자의 답변을 따라 저자의 언어를 따라가면서 필자의 해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정리해 나가겠습니다.

먼저,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편견을 버려’야하고,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42쪽) 또한 신을 바라볼 때 보이는 형상뿐 아니라 ‘이성으로도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이교도의 신(神)들은 발로 밟는 돌로 되어있고, 썩는 나무와 사람들이 사용하는 은과 철 등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사람들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들입니다. 또한 사람(옹기장이 등)이 마음대로 그 물질의 형태를 바꾸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의 손으로 신들이 만들어집니다.

2. 5~6장 그리스인들의 삶의 방식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언어’나 ‘의복’도 동일합니다. 또한 같은 도시에 살고 있으며,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교리 역시 상상이나 꿈이 아닙니다. 의식주의 생활방식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 그들은 각자 자기 조국에 살면서도 마치 나그네와 같습니다.
- 시민으로서 모든 의무를 다하지만 모든 것을 참습니다.
-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지만 일반인처럼, 아이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 식탁은 모두와 공유하지만 (다른 아내와) 잠자리는 공유하지 않습니다.
-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박해합니다.
- 그들은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줍니다.
- 그들은 능욕을 받으면서도 축복하고, 모욕을 당하면서도 존경합니다.
- 그들은 착한 일을 하고 죄인처럼 벌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육신에 갇혀 있지만 ‘육신에 속하지’ 않습니다.(52쪽)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만 세상에 생명을 줍니다.’(53쪽) 박해를 당해도 계속하여 증가합니다.

3. 7~9장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해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살지만 ‘유산은 그 기원이 지상에 있지 않습니다.’(54쪽) 하나님께서 진리를 보내셔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의 설계자이며 건축가’(55쪽)이신 ‘그분’을 보냈습니다. 그분은 ‘바다의 경계’를 정하셨고, 세상의 규칙을 정하셨습니다. 그분을 보내심은 폭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보내셨습니다.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56쪽)입니다.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물이라고 하고, 불이라 하기도 합니다.(이 부분은 고대 헬라 철학을 비판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요소들의 하나를 하나님이라 떠들고 있습니다.’(57쪽) 그러나 이것은 거짓에 불과하고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스스로 나타내 보이셨습니다.’(58쪽) 성자 예수는 나타난 하나님이시며, 과거와 현재, 미래에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입니다. 선하시고, 온유하시고, 참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아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알려 주셨습니다.

악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았지만 ‘참고 견디셨습니다. ‘(60쪽) 그분은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의로움이 지배하는 현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들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우리의 죄를 당신 스스로 맡아 짊어지셨습니다.’(61쪽)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만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아아! 얼마나 감미로운 교환이며 또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까! 아아! 얼마나 예상 밖의 큰 은혜입니까! 많은 사람의 죄악이 단 한 분의 의로우심 안에 묻혀 버렸고, 단 한 분의 의로우심이 많은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어 줍니다.”(61~62쪽)

“우리는 그 은혜를 받았고, 보고 알아듣는 모든 혜택을 동시에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59쪽)

4. 10~12장 하나님의 신비와 권고

그러니 이 신앙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럼 하나님께서 ‘아버지라는 사실을 차츰 알아듣게 될 것입니다.’(63쪽) 하나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을 사람들에게 복종하게 했고,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모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심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먼저 사랑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본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괴롭히고 약자를 짓밟고 재산을 축적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웃의 짐을 자기가 대신 지는 사람, 자기의 처지가 다른 사람의 것보다 더 나은 경우에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혜택을 베푸는 사람,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이웃이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내주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역할을 하는 것이며,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본받는 이들입니다.”(64~65쪽)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안에 지식의 나무·생명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나무는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생명이 없고, 참다운 생명이 없으면 분명한 지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69쪽) 첫 사람들이 뱀에게 속은 이유는 생명을 사랑하지 않은 탓입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지식이 식별되고 그 진리가 생명이 되길 바랍니다. 아버지께 영원한 영광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4. 나가면서

<디오그네투스에게>의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은 2세기 변증서를 따르고 있지만 문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합니다. 매우 작은 소책자임에도 어떤 변증가도 담아내지 못한 기독교에 대한 변증을 해냈습니다. 다만 죄의 전가 문제에 있어서 모호하고 교리 해설이 분명치 않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호함은 삼위일체가 확립되지 않았던 2세기라는 역사적 배경이 만든 것입니다. <디다케>와 <사도전승> 등에 내려오는 신앙인의 삶이 변증서를 통해 외부에 밝혀짐으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탁월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5~6장에서 보여주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교회 밖의 사람들은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모범적인 삶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간직하고 이 시대 속에서 끊임없이 재현해 내야 할 삶의 양태가 분명합니다.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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