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초강경 이민정책이 결국 인권침해 논란으로 비화됐다. 불법 이민을 시도하다 구금된 아동들이 비위생적 환경에서 장시간 방치되고 있다는 폭로가 제기됐다. 아동들이 열악한 수용시설에서 몇 주째 씻지도 못한 채 악취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이민자들이 탈레반이나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포로보다도 못한 처우를 받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텍사스주 클린트에 위치한 국경순찰대 구금시설의 열악한 실태를 연일 조명하고 있다. 월경 도중에 가족과 헤어지거나 홀로 이민을 시도한 아동 수백 명을 수용하는 시설이다. 최근 이곳을 방문한 변호사에 따르면 아동들은 한 달 가까이 제대로 씻지 못해 악취가 났다. 이들에게는 치약과 칫솔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옷은 음식과 때로 얼룩져 있었다. 젖먹이를 안은 10대 소녀가 모유 묻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민 당국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 관리가 “아동들이 안전하고 위생적인 시설에 머물고 있다”는 해명을 내놓으면서 시민들을 격분케 했다. 2012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던 언론인 마이클 스콧 무어는 트위터에 “소말리아 사람들도 치약과 비누는 줬다”고 비꼬았다. 이어 2008년 탈레반에 붙잡혀 7개월 동안 포로생활을 한 데이비드 로드 전 뉴욕타임스(NYT) 기자도 “탈레반도 치약과 비누는 줬다”고 적었다.

미국의 적성국인 이란조차 재소자들에게 이런 대우는 하지 않는 지적도 나왔다. 이란에서 1년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한 제이슨 레자이언 워싱턴포스트(WP) 기자는 트위터에 “이란도 구금 첫날에 치약과 칫솔을 지급했다”며 “나는 아무 것도 없는 독방에서 지냈지만 며칠에 한 번씩 샤워는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이민자들을 그저 통계수치나 외부인으로 취급하며 기본 인권조차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국토안보부 세관국경보호국(CBP)은 클린트 시설에 머무는 아동 중 일부를 앨패소 인근의 텐트촌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조차 침대 등 설비가 부족해 100여명이 클린트로 되돌아와야 했다.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은 “시설이 완전히 가득 찬 상태”라며 “부모를 동반하지 않은 어린이들을 수용할 공간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미 하원은 25일(현지시간) 이민자 가족과 아동의 여건 개선을 위해 긴급 예산 45억 달러를 가결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정책 실무부서인 CBP를 이끄는 존 샌더스 국장대행이 다음달 5일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샌더스 대행은 사임 배경을 밝히지 않았으나 그가 더욱 공격적인 이민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는 불만이 백악관 내부에서 제기돼왔다고 NYT가 전했다. 이에 따라 백악관이 케빈 매컬리넌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샌더스 대행의 교체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교체를 주도한 건 트럼프 행정부의 초강경 이민정책을 설계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알려졌다.

후임자로는 마크 모건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대행이 거론된다. 모건 대행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억류된 이주아동을 ‘예비 폭력조직원’이라고 지칭하는 등 초강경 성향으로 평가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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