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위 0.1% ‘슈퍼리치’들이 자신들에게 부유세를 부과하라고 대선 주자들을 향해 전격 제안한 데 이어 상위 1% 부자 중에서도 동참 의사가 나왔다. 대선을 1년4개월 앞둔 미국에서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억만장자 엘리 브로드(85)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나는 상위 1%다. 제발 내 세금을 올려달라”고 촉구했다.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인 브로드는 건축업체 KB홈, 금융사 썬아메리카를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에 올린 자수성가형 사업가다. 경제잡지 포브스의 집계에 따르면 브로드의 재산은 67억 달러(약 7조 7500억원)다. 미국에서 78번째, 세계에서 233번째 부자다.

브로드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대표되는 미국 자본주의의 신화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미국 사회가 건국 신화처럼 받아들이는 자수성가 이야기가 몇몇 운이 좋은 사례를 제외하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브로드는 아메리칸 드림을 사라지게 만드는 원인을 사회·경제적 계층 이동을 막는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한 경제 구조에서 찾았다. 그는 “내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의 임금 상승이 정체되고 빈곤율이 증가하는 동안 연방정부의 감세정책 덕분에 내 재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지켜봤다”며 “이제는 부유세를 심각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무너진 계층 사다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부자 증세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미국 상위 0.1%에 해당하는 부자 19명은 지난 24일 대권 주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자신들에게 부유세를 부과하라고 촉구했다. 편지에 서명한 슈퍼리치 명단에는 투자 전문가인 조지 소로스와 그의 아들 알렉산더 소로스, 페이스북 공동 설립자인 크리스 휴즈 등 거물급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억만장자들은 서한에서 “미국의 새로운 세수는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이 아닌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부터 나와야 한다”며 “부유세는 공정하고 애국적이며,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부유세로 확보된 세수가 기후변화 해결과 보편적 보육 시스템, 보건 의료 개선,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경감, 저소득층 대상 세제 혜택 등에 우선 투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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