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암 집배원이 지난 4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우편 배달을 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집배원 강길식(49)씨는 지난달 19일 충남 당진의 한 원룸 화장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사인은 뇌출혈. 강씨의 형은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지만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해 밤 8시까지 일했다”며 “동생은 과로로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공무원 신분인 강씨의 출근시간은 오전 9시입니다. 형은 동생의 출근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강씨는 ‘주52시간제의 시대’에 정말 매일 13시간씩 일을 한 걸까요.

올해만 집배원 9명이 숨졌습니다. 최근 10년간 사망자는 348명입니다. 대다수 과로사가 의심되는 갑작스러운 죽음들이었습니다. 계속되는 희생에 전국우정노조는 인력충원을 요구하며 지난달 24일 파업을 예고했습니다. 1958년 우정노조 출범 이후 61년 만에 최초이자, 135년 우정 역사상으로도 처음입니다.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다행히 우정노조는 우정사업본부와의 막판 협상 끝에 8일 파업을 전격 철회했습니다. 걱정했던 우편대란은 피했지만, 정부 앞에는 살인적인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할 과제가 남았습니다. 국민일보는 지난 4일 집배원의 하루를 현장에서 직접 살펴봤습니다.

편지 5초, 등기 30초… 하루 12시간 근무하는 집배원들

이날 오후 2시 고양·일산우체국에서 만난 10년 차 집배원 오현암(38·전국집배노동조합 집배국장)씨는 배달 물량을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평균적으로 집배원은 하루에 1100건 정도를 할당받습니다. 이중 등기와 택배가 100개 가량 포함됩니다. 대다수는 이 물량을 하루에 처리하진 못합니다.

오씨는 주소만 보고도 위치를 알았습니다. 근접한 장소끼리 모으는 분류 작업을 10분 정도 거친 뒤 오토바이에 올랐습니다. 아직 배달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오 국장은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았습니다.

오현암 집배원이 우편물을 분류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이제부터는 분초를 다투는 속도전입니다. 편지는 개당 5초 이내, 등기와 택배는 30초 이내로 배달해야 합니다. 배송지에 도착한 오씨는 오토바이를 세운 뒤 빠른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취재진이 잘 따라오는지 뒤를 잠깐 돌아보긴 했지만 기다려줄 여유는 없는 듯 했습니다. 편지 1개를 우편함에 넣는 데는 2초가 채 안 걸렸습니다. 그가 얼마나 배달에 집중하던지 차마 말을 걸 엄두가 안 났습니다.

문제는 등기나 택배입니다. 대면 전달이 원칙이어서 수시로 시간이 지체됐습니다. 이날도 등기를 전달받은 할머니의 안부 인사에 3분 남짓 지체했습니다. 이 등기는 3일 만에 주인을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번번이 헛걸음하게 한 게 미안하다며 자꾸 말을 걸었습니다. 오 국장도 오랜만에 만나는 할머니가 반가운 모양이었지만 수다(?)를 전부 받아주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 실시된 ‘주 52시간제’ 때문입니다. 오씨에게는 절대 해당되지 않는 ‘주 52시간’ 때문에 괜시리 심리적 압박만 심해졌습니다.

“과거에 집배원들은 비단 편지만 배달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눈이 침침한 할머니에게 등기를 읽어드렸고, 통이 열리지 않아 며칠을 놔뒀다는 된장 뚜껑을 열어드리기도 했습니다. 배달 중 만난 아주머니의 장바구니를 집까지 들어다드리기도 했죠. 지금은 주민을 피해 다닙니다. 말 걸 까 봐요. 가장 두려운 것은 따뜻한 커피를 타주시는 겁니다. 호호 불어 천천히 마실 시간이 없거든요.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제 시간에 배달을 못 할 테고 그럼 전 내일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악순환입니다.”

오씨는 7월 초 뜨거운 햇볕 아래서 마치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쉴새 없이 뛰었습니다. 그를 쫓아다닌 지 2시간 만에 취재진은 녹초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아침에 눈 뜨기가 싫었습니다. 출근해야 해서요. 최근 몇 년은 아침에 일어나면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어요. 살아있다는 거잖아요. 우리는 너무 많은 동료를 잃었습니다. 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할까요.”

하루 4~5시간 집배원들의 ‘공짜노동’

배달을 마친 집배원들은 물류센터에서 다음 배달 물량을 분류합니다. 걸리는 시간은 배달 전 1~2시간, 배달 후 2~3시간 가량. 그래야만 정규 근무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배달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날 오후 4~5시 무렵 찾아간 물류센터는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이 시간 물류센터가 한적한 건 다들 배달을 못 끝냈다는 뜻이고, 이건 곧 오후 6시 퇴근 이후 추가로 분류작업을 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오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추가 작업까지 마친 건 오후 7시. 출근한 지 꼬박 11시간 뒤였습니다.

집배원이 우편물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그런데도 오씨의 일주일 근무시간은 52시간 내로 계산됩니다. 분류 작업은 업무시간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려 4~5시간이 ‘공짜노동’이자 ‘그림자 노동’인 셈입니다.

그가 이같은 현실을 참고 견디기만 한 건 아닙니다. 고발해본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오씨는 “2017년 충남 아산에서 집배원이 목숨을 잃었을 때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지만 이상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그 때라도 제대로 조사를 했다면 이렇게 많은 동료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휴가는 꿈도 못꿉니다. 오씨는 집배원들이 평균 1년에 3.5일 정도 휴가를 간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격주로 토요근무까지 한다는 걸 고려하면 가히 살인적인 노동강도입니다. 오씨는 “내가 쉬면 동료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모든 집배원이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초등학생인 자식의 운동회에 못간 적도 있답니다. “원래대로라면 1년에 며칠을 쉴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생각하다 “한 20일? 아닌가,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어차피 쉴수도 없는 휴가, 알고 있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인력충원, 우리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

집배원들이 적정 근무시간을 보장받으려면 인력 충원이 필수입니다. 파업을 주장하며 이들이 내놓은 첫째 요구조건도 인력충원이었습니다. 이들은 적어도 2000명은 증원돼야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가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우체국은 줄어들었고, 최근 5년 동안은 배달 물량도 감소했습니다. 오히려 집배인력은 늘었고요. 그럼에도 왜 이들은 인력부족을 외치며 ‘파업’이라는 강경책을 꺼내들었을까요.

문제는 ‘무엇을 배달하느냐’였습니다. 오씨는 “우편함에 꽂기만 하면 되는 편지 물량이 감소한 건 맞다”며 “하지만 대면 업무, 즉 직접 서명을 받아야하는 등기 같은 건 최근 10년 동안 2배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오현암 집배원이 '그림자 노동'을 설명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오씨는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배원은 업무시간 내내 100m 달리기를 계속하는 것 같은 신체 상태를 유지한다고 한다”며 “그런 노동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23일 더 오래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집배노동자 산재율은 전국 노동자 평균치의 3배”라며 “노동시간은 평균 12시간으로 1년으로 따지면 전국 평균치보다 3개월 더 길게 일하는 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집배원 자체를 늘리지 않고 집배인력(집배원을 지원하는 인력)을 늘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에 우정노조와 협상을 타결지으며 우정사업본부는 “토요 업무를 대신할 위탁 택배원 750명을 포함한 900여명을 증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순수 집배원은 150명만 늘리겠다는 뜻입니다. 일각에서는 특수고용직인 위탁 택배기사를 증원하면 집배원의 업무는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그럴까요.

앞서 우정사업본부는 수익성 확대정책으로 초소형택배 배달을 활성화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현재 부피가 큰 택배는 위탁 택배기사가 배달을 합니다. 초소형택배 역시 그들에게 위탁해 여기서 얻은 수익으로 집배원 복지를 챙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초소형택배는 고스란히 집배원 몫이 됐습니다. 오씨는 “초소형택배를 위탁 택배기사에게 맡기면 수수료가 나간다. 초소형택배는 부피가 작다보니 집배원이 처리할 수 있다고 여기고 우리에게 넘긴다”며 “우리 인력은 편지나 등기를 기준으로 배치돼있다. 안 그래도 빠듯한 업무 중에 초소형택배까지 배달해야 한다. 위탁 택배기사를 증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일반 기업체를 향해서는 정규직 전환을 독려하면서 우체국에는 특수고용직을 충원하려고 한다”며 “이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2015년 실시한 집배원에 대한 조직진단 결과 집배인력이 아닌 집배원 자체를 늘려야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오씨는 “우정사업본부는 인력증원 예산이 통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력 증원 문제를 방치했다. 인력은 충분하니 재배치하라더라”며 “애초 권고된 정규인력이 아닌 위탁중심 인력고용계획만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주 5일 실시하라… 토요택배 폐지하라”

집배원들은 격주로 토요일에도 배달을 합니다. 토요택배는 2014년 7월 집배원 근로복지 증진을 위해 폐지됐다가 2015년 9월 재개됐습니다. 이후 지난해 5월 2일 토요택배 폐지에 다시 한 번 합의했으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민간택배사가 토요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배원이 토요택배를 하지 않으면 국민이 불편할 것”이라며 “토요택배 폐지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비현실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원화된 근무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는 그룹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그룹으로 나누라는 겁니다.

오씨는 “우정사업본부는 정부기관으로서 사회적 합의를 주도해야하지만 이행하지 않았다”며 “토요택배 폐지가 아닌 업무 이원화 근무를 주도해 현장 갈등만 심화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오현암 집배원이 지난 4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우편 배달을 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이에 대해 우정사업본부는 “토요택배 폐지는 이원화하는 게 맞지만 폐지해달라는 목소리가 커 가능하면 아웃소싱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집배노조는 지난 6일 청와대 사랑채에 모여 주 5일제를 보장해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이미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주 5일 근무를, 집배원은 삭발까지 해가며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날 삭발식에 참여한 집배원은 총 101명입니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과도한 업무로 숨진 집배원 숫자 101명에 맞춰 모인 것입니다.

오씨가 속한 집배노조는 총파업을 전격 철회한 우정노조에도 유감을 표했습니다. 조합원 1만5400명을 거느린 우정노조는 교섭대표로서 사측과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집배노조 조합원은 200명에 불과하다. 협상안에 불만이 있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집배노조는 8일 성명을 내고 “93%의 파업 찬성률과 국민의 파업지지 여론, 교섭 참여노조들의 공동 투쟁결의까지 모든 조건이 갖춰졌지만 우정노조 지도부만 파업준비가 없었다”며 “우정노조는 교섭대표노조로서 교섭참여노조의 요구안을 성실하게 듣고, 교섭과정과 결과를 공유할 공정 대표의무가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집배원 인력증원' 서명운동에 동참한 시민들이 적은 응원문구. 오현암 집배원 제공

오씨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국민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해야한다는 겁니다. 집배노조는 지난달 집배원 정규 인력증원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국민 3만 2692명이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서명지에는 “죽지마세요” 같은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국민들도 죽어나가는 집배원들의 사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주민을 피해 다녔는데 정작 이들은 집배원을 위한 서명이라고 하니 줄까지 서서 도와주시더라고요. 너무 죄송했습니다. 다시 주민 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건네는 커피를 두려워하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국민 여러분,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박민지 기자 신유미 인턴기자 pmj@kmib.co.kr
영상=최민석 기자 김다영 인턴기자 yulli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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